2001-Volkswagen_New_Beetle-1

[2002년 8월 자동차생활에 실린 글입니다]

되돌아볼 수 있는 과거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과거가 영화로운 것이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폭스바겐 뉴 비틀은 그런 영화로운 과거를 오늘에 되살린 차다. 오리지널 비틀만큼 뉴 비틀도 컬트카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옛 비틀은 평범한 차가 대중에 의해 컬트카가 되었다면 뉴 비틀은 대중을 위한 컬트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실물의 덩치는 훨씬 더 크다. 옛 비틀 모양의 풍선에 입김을 많이 불어넣으면 이런 모양이 나올까. 단아하고 클래식한 비틀이 골프의 뼈대 덕분에 훨씬 빵빵해졌다. 사실 뉴 비틀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비틀일 뿐 알맹이는 골프와 같다. 섀시는 물론 2.0리터 115마력 엔진 역시 골프와 나누어 쓴다.

밖에서 보는 뉴 비틀은 온통 원과 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선이 사용된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두세 곳뿐이다. 기가 막힌 조형미다. 앞뒤로 바퀴를 동그랗게 감싸는 귀여운 펜더는 놀랍게도 플라스틱이다. 스틸 패널보다 교환하기 간편할 뿐 아니라 비용도 싸서 미국에서는 저속충돌 테스트에서 수리비가 가장 적게 드는 모델로 꼽혔다.

리어 해치를 열면 아담한 크기의 트렁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벼운 쇼핑에나 어울릴 만한 크기다. 곰곰이 살펴보면 그다지 실용적인 구조는 아니다. 어차피 퍼스트카로 쓸 차는 아니기에 ‘이 정도야 봐줄 수 있지’하고 곱게 봐 주며 넘어갔다.

그러나 실내는 얘기가 다르다. 운전석 창문 위에 선글라스 보관함이 마련되어 있는 덕분에 룸미러 위에는 적당한 크기의 작은 사물함을 놓을 수 있다. 글로브 박스도 낮기는 하지만 2단으로 되어 있어 차에 관련된 서류는 거의 다 집어넣을 수 있다. 도어 밑의 맵포켓도 그물망으로 되어 웬만한 크기의 물건들은 구겨 넣으면 다 들어갈 정도고, 컵 홀더도 예쁘장하게 4개가 마련되어 있다. 룸미러 밑에 숨어 있는 실내등도 불편하지만 독특하게 느껴진다.

밝은 베이지톤의 실내는 화사한 분위기다. 빛 반사를 막기 위해 대시보드는 무광 검정으로 되어 있지만 밝은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는다. 은빛 스포크로 포인트를 준 스티어링 휠 너머로는 옛 비틀을 연상케 하는 계기판이 얌전히 자리잡고 있다. 큼지막한 속도계 밑으로 연료계와 타코미터가 나란히 놓여 있다. 평범한 다른 차라면 타코미터 대신 수온계가 놓여져 있을 것이다.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멕시코에서 조립되는 뉴 비틀은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 부분도 간혹 눈에 띈다. 그러나 기본기가 튼튼한 차인 만큼 신경쓰일 만큼은 아니다. 밉게 볼 구석보다 예쁘게 볼 구석이 더 많으니 덮어둘 만도 하다. ‘4,000만 원짜리 차가 왜 이래’라고 투덜거리기 전에 이 차가 패션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는 자그마한 꽃병이 놓여 있다. 비틀의 꽃병 전통은 얼핏 가식적이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든다. 실제로 꽃을 꽂고 다닐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정말 꽃으로 차 안을 장식할 정도의 센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차를 탈 자격이 충분하다.

외부의 라인을 살리려다 보니 실내의 레이아웃이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든다. 운전석과 조수석 헤드룸은 고깔모자를 써도 좋을 정도지만 뒷좌석은 고깔모자는커녕 빵모자를 쓰고도 고개를 숙여야 할 형편이다. 뒷좌석 헤드레스트라는 배려가 오히려 민망하다. 게다가 앞으로 멀찍이 달아난 유리 때문에 대시보드 윗부분은 꽃밭을 만들어도 좋을 만큼 넓다.

운전석에 앉아보니 넓은 시야가 후련하다. 차 양쪽에 볼록 튀어나온 백미러의 높이도 제법 높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눈동자만 오른쪽, 왼쪽으로 옮기면 바로 백미러에 시선이 닿는다. 무릎이 좀 불편하지만 가능한 한 시트를 높여 앉는 것이 이 차를 즐기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한껏 시트를 높여 앉고 천천히 출발해 보았다. 파킹 브레이크나 시프트 레버의 버튼도 큼지막해 다루기 쉽다. 왠지 엔진 소리도 귀여울 것 같은 상상에 점점 입모양이 둥글어졌다.

2001-Volkswagen_New_Beetle-2

골프로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을 즐겼던 길을 비틀로 거슬러 달렸다. 키가 크고 서스펜션 세팅이 부드러운 탓에 쏠림은 있지만 기본 뼈대가 같은 만큼 큰 부담은 없다.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것이 귀엽기만 하다. 고갯길을 내려가니 산 아래의 푸른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금방 자연이 가까이 다가왔다. 캔버스톱을 달거나 카브리오 버전을 탔다면 아마도 두 팔을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의 주행은 3년 전 벤토를 몰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4단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은 약간 더디게 반응하지만 거세게 몰아부칠 차도 아닐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은 차다. 그래도 느긋하다 싶게 가속한 것이 어느새 시속 160km를 넘어선다.

이 차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허허실실’이다. 물론 골프 GTI의 심장을 얹은 1.8리터 터보 모델은 얘기가 다를 것이다. 해외에서의 평가도 GTI 모델은 ‘이거야 이거~’였다. 동글동글 귀여운 녀석이 시속 200km가 넘는 속력을 낸다면 그 또한 기가 막힌 컬트적 발상이다. ‘풍요로운 2.0리터 엔진, 그리고 강력한 1.8리터 터보 엔진. 어떤 선택도 행복합니다’라는 카피 문구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의외로 가볍게 느껴지는 엔진 소리는 차에서 느껴지는 얌전함과는 거리가 있다. 귀여운 차라고 해서 귀여운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거칠지는 않아도 방음처리만 조금 잘 되어 있다면 보다 흐뭇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국한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풍요로운 시대는 컬트카도 팔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실패한 플리머스 프라울러도 있기는 하지만 비틀뿐 아니라 크라이슬러 PT 크루저 같은 차는 없어서 못 파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적 풍요가 앞서야 하기에 척박한 우리나라의 자동차 문화가 아쉽기 그지없다.

뉴 비틀을 타고 있는 내내 웃음이 입가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안에서 보면 세상이 다 밝아 보이고, 밖에서 보면 어디에 있어도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차다. 차로 인해 사람이 행복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