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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 한성자동차 웹진 with Hansung 2011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자본주의의 발전과 성장, 풍요로움이 끝 모르고 커져만 갈 거라고 기대하던 시대는 이제 끝난 듯하다. 무역의 발전, 자본의 세계화는 나라와 지역의 경제를 단순히 그들만의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제는 어느 정도 회복기로 접어든 듯하지만, 미국의 경기침체로 시작된 세계 경제의 빙하기는 사람들의 자동차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이 새 차를 살 때 작고, 저렴하고, 효율이 뛰어난 것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라는 화두는 배기가스를 내놓는다는 원죄를 안고 있는 자동차를 산다는 행위에 도덕성을 개입시켰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원하는 차를 살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선택에 앞서 한 번쯤 양심에 손을 얹어 봐야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다운사이징, 하이브리드 같은 단어들이 온통 자동차 세상을 뒤덮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들도 소심해지고 있다.

지나친 개성이 사치 취급을 받다 보니, 자동차도 지나치게 튀는 차들은 철퇴를 맞고 있다. 개성 아니면 내세울 것이 없는 고성능 차들은 특히 그렇다. 특히 고성능을 상징하는 V8 엔진을 얹은 차들이 이런 흐름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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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고성능, 그리고 남성미

V8 엔진은 전통적으로 고급스러움과 고성능의 상징이었다. 호화로움의 극치를 달리지만 평범한 자동차 메이커들은 만들기도 벅찬 V10이나 V12 엔진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보통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엔진의 한계점은 늘 8개의 실린더를 V자 모양으로 배치한 V8 엔진이었다.

여기에 남성적인 이미지가 담길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의 시기를 풍미했던 아메리칸 머슬 카의 영향이 컸다. 머슬 카는 대부분 날렵하게 생겼지만 큰 차를 선호하던 당시 미국인들의 취향 때문에 우람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덩치가 컸다. 이런 차들이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배기량이 크고 힘 좋은 엔진이 필요했다.

머슬 카와 V8 엔진의 결합은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물론 V8 엔진이 머슬 카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지만, V8 엔진의 남성적 이미지를 굳히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유럽 메이커들 가운데에서도 미국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이커들은 반드시 V8 엔진을 갖췄다.

그리고 V8 엔진이 가진 고유한 특성은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의 경주차 엔진으로 애용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인 F1을 비롯해 미국의 NASCAR, 독일의 DTM 경주에 투입되는 경주차들의 심장은 모두 V8이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V8 엔진은 그 엔진을 얹은 차가 특별함과 고성능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리고 평범한 승용차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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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서 비롯되는 V8 엔진의 매력

그렇다면 단순히 힘만이 V8 엔진의 유일한 매력일까? 그렇지는 않다. V8 엔진의 매력은 기계로서의 구조적 특징에서 비롯되지만, 기계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표현들이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을 빠져들게 된다. V8 엔진은 간단히 생각하면 4기통 엔진 두 개를 엇갈려 V자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4기통 엔진의 거친 면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 거친 느낌을 상쇄시켜 부드러움으로 변화시킨다.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균형감을 V8 엔진은 갖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V8 엔진이 내는 소리는 다른 어떤 형태의 엔진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리듬이 담겨 있다. 서로 엇갈려 폭발이 일어나는 실린더의 거리 차이 때문에 생기는 리듬의 연속.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을수록 이 리듬은 하모니로 바뀌고, 회전수가 올라갈수록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천둥소리를 만들어 낸다. 톤을 높여도 우렁찬 힘을 잃지 않는 풍부한 성량은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릴 만큼 통쾌하다. 어느 메이커의 어떤 V8 엔진이라도 이 멋진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엔진의 시대가 막을 내리지 않는 한 V8 엔진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멋진 경험을 안겨주는 V8 엔진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V8 엔진의 존재가치가 더 돋보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남자의 차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힘과 박력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기계 예술의 절정인 V8 엔진을 얹은 녀석을 차고에 들여 놓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