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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ABB 포뮬러 E(이하 포뮬러 E)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2019/20 시즌 공식 일정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발표된 일정에 온라인에서 국내 자동차 및 모터스포츠 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열리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포뮬러 E는 현재 세계적 규모의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벤트 중 하나이고, 국제 규모의 모터스포츠 이벤트를 관장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의 승인을 받아 세계 각지의 주요 도시에서 선수권 형태로 열리고 있다. 이런 성격의 모터스포츠 이벤트가 국내에서 열리면, 사전에 관련된 인물이나 단체 또는 업체의 움직임이 국내 모터스포츠 매체나 소식통을 통해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포뮬러 E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그와 관련한 정보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공식 일정에 서울이 포함된 것에 국내 팬들이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7월 2일, 포뮬러 E 서울 대회(E-프리)를 주관하는 포뮬러 E 코리아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간담회에는 포뮬러 E를 주관하는 알레한드로 아각(Alejandro Agag) 포뮬러 E 회장 및 대표이사, 알베르토 룽고(Alberto Longo) 포뮬러 E 공동회장 및 부대표와 함께 이희범 Seoul E-Prix 2020 대회운영위원장, 윤은기 포뮬러 E 코리아 대표이사, 타이틀 스폰서 ABB의 시셍 리(Sweeseng Lee) ABB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아각 회장과 룽고 공동회장은 포뮬러 E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겠으나, 포뮬러 E 코리아와 대회운영위원장을 비롯해 서울 E-프리를 주관하는 포뮬러 E 코리아 등 국내 운영조직에 관한 내용은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희범 대회운영위원장은 산업자원부 장관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등을 역임하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바 있고, 윤은기 대표이사는 경영 컨설턴트로 방송활동을 통해 유명세를 얻어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국내 운영조직의 전면에 나선 인물들은 모터스포츠와의 연관성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굳이 포뮬러 E와 이들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한다면, 이희범 위원장은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의 조직위원장 경험이 있고, 윤은기 대표이사는 전기차와 관련 있는 ‘기후변화 리더십’을 주제로 여러 활동을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나라에 유치한 주체들이 포뮬러 E를 어떤 관점으로 보고 접근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공식 행사가 시작되고 이어진 이희범 위원장의 설명을 들으며 막연했던 의심은 확증으로 굳어졌다. 배경에서부터 현황, 목표에 이르기까지 무척 폭넓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큰 틀에서 보면 핵심은 세 가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기후변화 대응’, ‘전기차 관련 고용창출 및 경쟁력 강화’, ‘한류문화와 연계한 관광산업 확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역시 모터스포츠라는 행사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에 있었던 질의문답 시간에 윤은기 대표이사는 ‘한류문화와 결합한 한국형 포뮬러 E’라는 표현까지 썼다. 

물론 포뮬러 E가 ‘지속가능한 모터스포츠’로서 친환경이라는 주제를 모터스포츠의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상급 모터스포츠에 전기 경주차를 투입하는 것을 중심으로, 자동차 동력원의 패러다임 변화에도 모터스포츠를 지속가능성을 입증하고 높이는 것이 포뮬러 E의 취지라 할 수 있다. 즉 경쟁을 통해 기술발전을 꾀하고 흥행을 도모하는 모터스포츠의 본질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경주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핵심 요소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작 포뮬러 E 국내 유치 주체의 설명에서는 그런 인식을 읽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포뮬러 원(F1) 코리아 그랑프리 등 시작부터 끝까지 깔끔하지 못했던 선례들을 놓고 고민한 듯한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을 중심으로 구성한 코스나 일정 결정 배경, 부대행사 연계 등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위험요소를 최소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세계적 규모의 행사를 유치했으니 실패는 하지 않겠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접근이라면 굳이 포뮬러 E 같은 모터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어떤 종류의 행사여도 상관이 없다. 정부 정책방향과 맞아 떨어지거나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주제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포뮬러 E가 설득력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좁은 국내 모터스포츠 저변, 과거 사례가 남긴 부정적 이미지 등은 행사 유치와 추진 배경에서 ‘주’라고 할 수 있는 모터스포츠보다 고용, 산업, 관광과 같은 ‘객’을 적극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자동차로 뭔가를 즐기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일반 정서를 생각하면 내용보다는 포장에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도 모터스포츠 팬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10개월이라는 준비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내년 5월 개최 예정인 행사에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준비된 것이 별로 없기는 하다. 질의문답에서는 비용조달 및 수익창출 방법에 관해 ‘확실하게 잡힌 것은 없고, 앞으로 하겠다’라는 답변이 나왔고, 당일 저녁 가망 스폰서 업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여는 갈라 디너를 시작으로 투자업체를 유치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어떻게든 행사는 열릴 것이다. 어쨌든 개최 일정이 정해져 포뮬러 E 2019/20 공식 캘린더에 서울이 포함되었음은 이미 전세계에 알려졌고, 코스도 결정되었고, 포뮬러 E 본사와 국내 유치 주체 사이에 계약도 맺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며 뒷마무리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도 어쨌든 열렸지 않은가.

포뮬러 E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보고 나니, 새롭게 알게 된 것보다 새롭게 더 궁금해진 것이 더 많았다. 포뮬러 E라는 국제적 모터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해 개최하는 것도 충분히 좋은 일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뭐가 남느냐는 것이다. 정말 포뮬러 E가 국내 전기차 관련산업 경쟁력 강화와 고용창출, 관광수입 증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나아가 모터스포츠 관점에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도움이 될까. 내년 5월이 되기 전에 설득력 있는 해답이 포뮬러 E 코리아로부터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