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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선보인 1세대 이보크는 레인지로버의 스타일 아이콘. 브랜드를 상징하는 모델은 여전히 레인지로버지만, 브랜드의 성격을 재정의하는 데에는 이보크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시간 간격이 넓어 효과가 반감되기는 했지만, 벨라 역시 이보크가 아니었다면 자리를 잡기 어려웠을 모델이다. 아울러 레인지로버가 이보크를 차종 다양화를 위한 여러 시도를 했던 것은 이보크의 성공이 뒷받침된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 데뷔했을 때만 해도 경쟁상대가 많지 않았던 이보크는 시장에 수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2세대 이보크는 안팎으로 완전히 달라진 환경 속에서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자매 브랜드들이 만들고 있는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재규어 E-페이스도 있고, 어느새 비슷한 소비자층을 겨냥해 나온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차들과도 맞서야 한다. 이런 여건 속에서 이보크는 어떤 메시지로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국내에 갓 출시된 D180 퍼스트 에디션을 시승하며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보크의 모델 구분은 비교적 단순하다. 인제니엄(Ingenium) 직렬 4기통 2.0리터에 디젤과 가솔린이 있고, 출력 설정을 달리해 몇 가지 버전으로 나누어 놓고 있다. 국내에는 150마력과 180마력 디젤, 250마력 가솔린 모델이 판매된다. 랜드로버 계열 브랜드의 트림 구성은 기본형이 S, 중간급이 SE, 최상급이 HSE다. 국내 판매 모델은 대부분 SE로, 150마력 디젤 모델만 S 트림에 해당한다.

주력 모델은 180마력 디젤 엔진을 얹은 D180으로, 이번에 시승한 퍼스트 에디션에는 8,200만 원(개별소비세 인하분 반영 시 8,090만 원)의 가격표가 붙는다. 이는 D180 최하위 모델인 SE보다 520만 원 높고, 최상위 모델인 R-다이내믹 SE보다 30만 원 낮은 가격이다. 퍼스트 에디션은 출시 기념으로 1년 동안 한정 판매되는 것으로, SE 트림을 바탕으로 실내외 치장 및 장비를 특별하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새로 개발한 플랫폼으로 만든 차체 크기는 1세대와 거의 비슷한데, 변화의 폭이 큰 부분을 꼽자면 높이와 휠베이스를 들 수 있다. 물론 언뜻 보아서는 알 수 없을 정도의 변화다. 겉모습은 1세대의 형태 위에 벨라의 디자인을 씌운 느낌이다. 전체적 분위기는 1세대와 비슷한데, 은은해진 면 처리와 더불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한 인상이다. 앞모습은 가늘어진 그릴이 헤드램프와 이어진 레인지로버 모델 전반의 디자인 흐름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특히 벨라처럼 좌우 램프를 길게 이어놓은 테일램프는 뒷모습에 넓고 안정된 분위기를 불어 넣는다. 전반적으로 오프로더 분위기가 남아 있던 이전 세대보다 부드러운 느낌이다.

실내는 벨라의 축소판이다. 특히 부드러운 면이 가로로 길게 뻗은 대시보드와 2단 구성의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센터 페시아에서 센터 콘솔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터치 스크린 등은 벨라를 쏙 빼어 닮았다. 센터 콘솔 위에 솟아 있는 기어 선택 스틱 정도가 다를 뿐이다.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는 부분의 플라스틱을 제외하면, 내장재는 전반적으로 고급스럽다. 좌석의 가죽 질감도 좋은 편이다. 1세대가 레인지로버 브랜드 디자인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면, 2세대는 역으로 다른 모델에서 선보인 특징들을 종합해 놓은 셈이다.

벨라를 닮은 인테리어가 차를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만들기는 하지만 단점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피드백이 없는 터치스크린과 조작감이 불분명한 다기능 다이얼, 조작 후 반응이 더딘 인터페이스 등은 이보크에서도 똑같이 아쉬운 점이다. 스티어링 휠 좌우의 다기능 스위치도 마찬가지여서, 전반적인 UX 업그레이드가 필요해 보인다. 부분적으로 조립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곳들이 눈에 뜨이는 것도 아쉽다.

실내 공간은 앞좌석 주변은 이전 세대와 별 차이가 없어 적당히 여유가 있는 편이고, 뒷좌석은 이전 세대보다는 좀 더 넉넉해졌지만 여전히 바로 윗급인 벨라와의 차이가 큰 편이다. 물론 지상고에 비해 높아진 천장, 높이와 등받이 각도의 적당한 조합 덕분에 여유가 크지는 않아도 답답할 정도는 아니다. 수납공간은 센터 페시아 아래에 있는 빈 공간을 빼면 특징적이거나 넓다고 할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앞좌석 사이 암레스트가 좌우로 나뉘어 있어 슬라이딩되는 것은 편하지만 센터 콘솔 수납공간의 절대적 크기는 작다. 트렁크 공간은 바닥이 높고 바퀴 주변이 좁은 편이어서 넉넉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붕 전체를 덮는 파노라마 글라스는 한 덩어리로 고정되어 있다.

충분히 숙성된 인제니엄 엔진은 이보크에서 제 실력을 발휘한다. 가속은 전반적으로 무척 매끄럽고, 숫자로 예상했던 것보다는 좀 더 힘에 여유가 있다. 회전 질감도 차분해서, 4기통 디젤 엔진으로서는 감성적인 만족도가 꽤 높다. 9단 자동변속기도 마찬가지다. 오프로드 주행을 고려하면서도 따로 저속 기어를 두지 않은 대부분 SUV가 그렇듯, 낮은 단 기어비를 키우고 회전수를 한껏 끌어올린 뒤 변속하도록 설정한 변속기 때문에 체감 초반 가속이 조금 느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어가 3단, 4단으로 넘어가고 나면 가속감은 훨씬 더 시원해진다. 

동력계통 자체도 숙성되었지만, 48V 전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해 성능과 연비를 함께 개선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벨트 구동식 스타터 제너레이터는 가속할 때 순간적으로 구동력을 더하고, 감속할 때에는 정지하기 전에 미리 엔진 시동을 끄면서도 미리 충전해 둔 별도의 리튬이온 배터리로 전기 장치를 비교적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주행 중 엔진 시동이 꺼졌다가 완전히 정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동이 다시 걸릴 때에는 차가 약간 움찔한다.

몇몇 다른 브랜드 차들에 쓰인 것과 달리, 이보크의 9단 자동변속기는 일반 주행 모드에서는 최고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평지에서 정속주행할 때에는 시속 80km에서도 9단이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속 100km 주행 때에는 엔진 회전수를 1,300rpm 정도로 억제해 연료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승차감과 핸들링은 달라진 외모와 비슷한 흐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승차감이 조금 단단하면서 운전자의 조작에 비교적 솔직하게 반응했던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양쪽 모두 조금씩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이 더해졌다. 그렇다고 해도 느슨해지기보다는 거친 부분을 기분 좋게 다듬은 쪽이고, 20인치 휠을 끼웠는데도 차 크기에 비하면 제법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커브에서 차체가 기우는 것은 느낄 수 있지만 타이어 접지력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제동 특성은 차의 무게와 성능을 감당하기에 딱 알맞은 수준이다.

시승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소음이다.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는데, 하나는 실내가 전반적으로 아주 조용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때문에 의외의 소음들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우선 차체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소음은 아주 잘 차단했다. 심지어 포장도로를 벗어나 모래밭을 달릴 때에도 차체 바닥을 때리는 모래의 소음이 날카롭지 않고 둔탁한 수준에 머문다. 도어 아래쪽을 차체 바닥쪽으로 파고들도록 만든 것을 보면 그처럼 조용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풍절음이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하는 속도 영역은 여느 동급 SUV와 비슷하지만 바람이 가볍게 스쳐가는 듯한 소리가 거슬리지 않을 만큼만 은근히 들어올 뿐이다.

엔진 소음은 편차가 크다. 공회전 때와 낮은 회전수로 천천히 달릴 때에는 거슬리는 소리가 어느 정도 걸러질 뿐, 디젤 엔진 특유의 굵직한 엔진 소리가 제법 작지 않게 실내로 들어온다. 그러나 엔진 회전수와 더불어 속도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면 금세 나긋해진다. 서 있을 때와 달릴 때의 엔진 소음 차이가 이렇게 큰 차도 흔치 않고, 심지어 급가속할 때에도 정지해 있을 때만큼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즉 바퀴가 구르는 동안에는 달리기와 관련된 부분에서 비롯되는 소음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의 세련된 소리를 즐기기에는 무척 좋은 환경이다. 다만 누적 주행거리가 길지 않은데도 주행 중 내장재 마찰음이 수시로 들린다. 차체가 주는 견고한 느낌과 비교적 너그러운 승차감을 고려하면 조금 이상하다.

험로 주행에 대비한 터레인 레스폰스 2 시스템, 내리막 속도 제어 시스템, 로우 트랙션 출발 시스템 등은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통해 비교적 쉽게 찾아 선택할 수 있다. 시승차에는 포장도로용 타이어가 끼워져 있었지만, 다양한 험로 주행 지원 기능 덕분에 살짝 다져진 모래밭과 비포장 도로에서 달리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시스템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개입하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아울러 험로에서 승차감이 비교적 차분하다는 점은 이보크의 차별화된 장점 중 하나다. 다만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으로 차체 아래쪽을 확인할 수 있는 클리어사이트 시스템과 360도 서라운드 카메라는 적용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레인지로버라는 브랜드의 성격이 고급스러운 쪽으로 자리를 잡은 이상, 이보크도 세대 변화와 함께 이전보다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담는 것이 자연스럽다. 스타일, 꾸밈새, 달리는 느낌 면에서 모두 그와 같은 변화를 잘 담아낸 것은 분명하다. 성격이 비슷한 디스커버리 스포츠와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목표도 어느 정도 이룬 듯하다. 

그러나 경쟁 브랜드의 동급 모델과 비교한다면 절대적 우위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똑부러지게 이야기하기가 조금 미묘하다. 랜드로버 또는 레인지로버 브랜드의 전통적 장점이 두드러지기 가장 어려운 차급이기도 하고, 스타일 아이콘으로서의 의미도 많이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급 오프로더로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전보다 나아진 면도 엿보이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화끈한 한 방이 부족하다. 이런 결과물로 이전 세대의 인기를 이어나가려면 브랜드 이미지와 같은 후광이 이전보다 더 탄탄해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