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국의 가을과 겨울은 사냥의 계절이었다. 사냥 중에서도 특히 여우사냥은 영국의 국기라고도 불릴 만큼 오랜 전통과 더불어 큰 인기를 끈 스포츠였다. 여우사냥이 시작된 것은 중세 무렵의 일이다. 우리나라 겨울철 산간지방에서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짐승이 농가에 피해를 입히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날이 추워지면서 자연에서 먹이를 찾기 어려워진 여우가 농가에서 키우는 닭과 같은 가축에 피해를 입혔고, 한창 피해가 심한 가을과 겨울 사이에 양계장 등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나선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에 찰스 2세가 즉위한 후 귀족들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 일정한 규칙과 문화를 만들어낼 만큼 발전해 최근까지 이어졌다.
귀족들이 즐기는 여우사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냥과는 차원이 달라, 헌팅 파티(hunting party)라고 부르는 사냥단이 조직되어 움직이는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헌팅 파티는 사냥을 이끄는 폭스하운드 마스터(Master of Foxhounds)가 초대한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데, 참가자들은 말을 타고 움직이며 사냥에 필요한 여러 역할을 나누어 수행했다. 역할은 폭스하운드 마스터를 포함해 직접 총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냥개(폭스하운드)를 관리하는 사람과 보조자, 사냥하는 사람들이 타는 말을 관리하는 사람에서 참가자들로부터 참가비를 걷어 관리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분업 형태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팀 스포츠였던 셈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여러 마리의 말과 사냥개가 동원되는 만큼 경제적인 부담이 큰 스포츠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우사냥은 자연스럽게 상류 귀족이 사교와 친목 차원에서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다.

물론 2004년에 영국에서 금지법안이 영국 의회를 통과하면서 지금은 여우사냥이 불법이 되었다. 그러나 사냥 애호가로 알려진 찰스 왕세자가 ‘법안이 통과되면 이민을 갈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반발의 목소리가 거셌다. 반대는 귀족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원에서도 심했지만, 여우 때문에 피해를 입는 농민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사냥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라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여우사냥으로 목숨을 잃는 여우의 수가 연간 2만 5,000마리나 되었다고 하니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사냥 과정에서 여우가 사냥개에게 잔인하게 물어뜯기는 것은 물론, 사냥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들이 마치 전리품처럼 여우의 신체 일부를 나누어 갖는 풍습도 있었다. 동물학대 논란이 불거진 것은 당연했고, 그런 관점에서 300년 넘는 전통이지만 금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여우사냥이 금지되기는 했어도, 오랫동안 이어져 오면서 영국 사회와 문화 곳곳에 미친 영향은 컸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어서, 20세기 들어 영국에서 자동차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사냥 애호가들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진 차들이 나오기 시작해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다. 이른바 슈팅 브레이크(shooting brake)라는 종류의 차가 바로 그것이다.

전통 있는 여러 자동차 용어가 그렇듯, 슈팅 브레이크도 마차 시대로부터 이어진 이름이다. 브레이크(brake 또는 break)는 어린 말을 키워 단련시키는 데 썼던 소형 4륜 마차를 가리키는 것으로, 헌팅 파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총과 포수, 사냥감 등과 함께 움직이기에 편리하도록 특별히 만든 것을 슈팅 브레이크 또는 헌팅 브레이크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자동차 시대가 되면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몇몇 슈팅 브레이크는 차체 옆을 목재로 치장하기도 했다. 이는 마차 시대 슈팅 브레이크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다.
슈팅 브레이크에서 중요한 요소는 실용성이다. 사냥과 관련한 도구나 물건을 편리하게 싣고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908년에 나온 영국 잡지 ‘커머셜 모터(Commercial Motor)’에서는 슈팅 브레이크를 ‘운전자를 포함해 여덟 명이 탈 수 있으며, 네 자루의 총과 넉넉한 탄환, 음식 바구니, 좋은 가방을 실을 수 있는 차’로 정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슈팅 브레이크의 개념과 형태는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꾸밈새를 지닌 2도어 왜건으로 바뀌었다. 상류사회 문화를 반영하는 장르인 만큼, 굳이 사냥을 하러 가지 않더라도 사냥을 즐길 수 있는 계층임을 드러낼 수 있는 차라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왜건이라고 하는 스테이션 왜건과 차별화하면서 좀 더 개인적이고 특별하며 멋스러운 차로 굳어지게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슈팅 브레이크는 코치빌더(차체 전문 제작업체)가 맞춤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요가 많지 않아 대량생산에는 어울리지 않았고, 상류층의 자동차 구매 패턴이 반영된 탓이다.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애스턴 마틴 같은 럭셔리 및 스포츠카 브랜드 차들이 주로 슈팅 브레이크 개조의 소재가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다수 자동차 업체가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모노코크(일체형 차체 구조) 방식으로 차를 만들면서 슈팅 브레이크는 흔치 않은 존재가 되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구조적으로 개조가 비교적 수월한 일부 스포츠카를 바탕으로 소량 생산되기도 했지만,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된 릴라이언트 시미타 GTE처럼 대량생산된 슈팅 브레이크는 흔치 않았다.
슈팅 브레이크를 만든 것은 주로 영국 브랜드였는데, 이미지를 탐낸 브랜드는 영국 이외에도 적지 않았다. 사냥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서구를 아우르는 문화인데다, 슈팅 브레이크가 고급스러움과 스포티함, 실용성을 고루 갖춘 장르인 만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냥용 도구라는 원래 목적보다는 럭셔리 왜건임을 강조하려는 수단으로서 슈팅 브레이크라는 형태와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금도 슈팅 브레이크는 수요가 많지 않은 만큼 주로 럭셔리 브랜드나 스포츠카 브랜드가 만들고 있다.

현대적인 슈팅 브레이크는 대부분 2도어 쿠페를 바탕으로 차체 뒤쪽을 왜건 형태로 만든다. 대량생산 차에도 비교적 쉽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메이커가 선호하는 방법이다. 대표 모델로 페라리 GTC4루소 T를 꼽을 수 있다. GTC4루소 T는 2도어 쿠페의 지붕을 연장하고 차체 뒤쪽 대부분이 열리는 해치를 달아 4명이 탈 수 있는 실내 공간과 적절한 수준의 적재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적재 공간은 여느 페라리 쿠페 모델보다 더 넉넉하고, 전용 가방을 싣기 좋도록 반듯하게 정리하고 실내 공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고급스럽게 꾸민 것이 특징이다. 나아가 나누어 접을 수 있는 뒷좌석 등받이를 모두 접으면 적재 공간을 한층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 최고출력 610마력의 V8 터보 엔진으로 최고 시속 320km까지 달릴 수 있는 고성능과 고급 가죽으로 꼼꼼하게 마무리한 실내로 대표되는 고급스러움, 스포츠카로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한 실용성을 고루 갖춘 슈팅 브레이크의 전형이다.

메르세데스-벤츠 CLS-클래스 슈팅 브레이크처럼 모델 이름에 포함시킨 사례도 있다. 한동안 국내에도 수입 판매된 바 있는 CLS-클래스 슈팅 브레이크는 고전적 슈팅 브레이크 정의와 달리 4도어 왜건 형태다. 바탕이 된 CLS-클래스가 세단이지만 쿠페 스타일로 만든 이른바 4도어 쿠페이기 때문에, 쿠페의 디자인와 왜건의 기능을 결합한 변형 모델이라는 의미로 슈팅 브레이크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마케팅 의도가 큰 몇몇 현대적 슈팅브레이크와 비교하면, 오히려 2014년에 선보인 홀랜드 & 홀랜드(Holland & Holland) 레인지 로버 같은 차들이 전통적 개념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차에 가깝다. 왕실 인증을 받은 영국의 유명 수제 총기 제조업체인 홀랜드 & 홀랜드와 랜드로버 특수차 제작 사업부인 SVO가 손잡고 40대 한정 생산한 이 차는 호화로운 실내에 홀랜드 & 홀랜드 총기를 상징하는 문양과 장식을 더했고, 적재 공간은 라이플 수납과 관리가 편리하도록 특별하게 꾸며 전통적인 사냥 문화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슈팅 브레이크에서도 알 수 있듯, 시대 흐름에 따라 문화는 달라질 수 있어도 문화가 남긴 유산은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준다. 과거에도 그랬듯,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며 누리고 있는 문화는 언젠가 새로운 자동차 장르를 만들거나 자동차의 모습을 바꾸는 데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 동아일보 2017년 11월 23일자 Q매거진 섹션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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