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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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메르세데스-벤츠 190 SL
[모터매거진 2014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최고의 명차 중 하나인 300 SL과 꼭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190 SL은 미국에서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 일반 승용차 설계를 응용해 성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300 SL의 후광 덕을 크게 보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 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컨버터블 양산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사에서 최고의 명차 중 하나로 손꼽히는 300 SL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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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 투 더 퓨처’의 타임머신은 다국적차?
[ 한국일보 2014년 6월 3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2015년이면 시간여행을 소재로 세계인에게 볼거리와 웃음을 안겨준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나온지 30년이 된다. 두 개의 속편이 나올 정도로 영화의 인기는 대단했고, 영화 속 타임머신으로 등장한 드로리언 DMC-12도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차는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차였는데, 차보다는 뒷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한 차이기도 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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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대량 생산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한국일보 2014년 6월 1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자동차가 대중화된 것은 1913년부터 포드 모델 T가 대량 생산되어 서민들도 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그리고 모델 T의 대량 생산은 포드 자동차 회사가 처음으로 현대적인 이동식 조립 라인을 활용하면서 가능해졌다. 그래서 흔히 포드 창업자인 헨리 포드를 ‘자동차 대중화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런 표현 때문에 종종 헨리 포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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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보여준 유별난 차 ‘트라반트’
[ 한국일보 2014년 6월 2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동독과 서독이 통일될 때, 일자리를 찾으러 서독으로 향하던 동독 주민들의 자동차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들은 통독에 따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진 속 동독 주민들이 타고 있던 차가 한결같이 같은 모양새인 것도 눈길을 끌었다. 공산 국가였던 동독의 국민차로 불린 트라반트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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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알피느 A110 베를리네트
[모터매거진 2014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A110은 프랑스 디에프 지역 르노 딜러였던 장 리델리가 창업한 알피느의 세 번째 모델이다. 빼어난 디자인과 더불어 가벼운 차체에서 비롯된 뛰어난 성능으로 호평을 얻은 이 차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주요 랠리 무대를 석권하며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스포츠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중 하나가 알피느(Alpine)다. 알피느는 아버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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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기술 흐름을 바꾼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 한국일보 2014년 5월 1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요즘 나오는 승용차는 보통 차체 앞쪽에 있는 엔진으로 앞바퀴를 굴린다. 이른바 전륜구동(앞바퀴 굴림) 방식이다. 물론 후륜구동(뒷바퀴 굴림) 방식 차도 있지만, 전륜구동 방식은 다른 방식보다 실내 공간을 넓게 만들 수 있어 실용적이고, 앞바퀴 접지력이 후륜구동 차보다 높아 빗길이나 눈길에서도 안전하게 달릴 수 있어 누구나 운전하기 쉽다. 전륜구동 방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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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마즈다 코스모 스포츠
[모터매거진 2014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경박단소한 엔진으로 고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로터리 엔진의 특성에 주목해 실용화한 마즈다가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차가 코스모 스포츠다. 판매대수는 많지 않지만 세계 첫 2로터 로터리 엔진 승용차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마즈다의 이미지를 확립한 차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50년대에 NSU에서 일하던 펠릭스 반켈은 실용적인 로터리 엔진을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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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 자랑하는 차들의 남다른 장수 비결
[ 한국일보 2014년 4월 2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2013년 12월, 폭스바겐은 브라질에서 생산하던 미니버스 콤비(Kombi)의 생산을 중단했다. 이 차는 엔진과 편의장비, 실내 꾸밈새만 달라졌을뿐, 1967년에 처음 등장한 폭스바겐 타입 2 2세대 모델과 거의 같은 차다. 고향인 독일에서는 1979년에 생산이 끝났지만 멕시코와 브라질 등 저개발 국가에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되는 환경과 안전규제에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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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차’로 재기의 발판 마련한 BMW
[ 한국일보 2014년 4월 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독일을 대표하는 고급차 메이커 중 하나인 BMW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196만여 대의 차를 판매해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고, 대당 수익도 매우 높은 알짜배기 기업이다. 경기 침체와 극심한 경쟁으로 세계 자동차 업계가 계속 몸살을 겪고 있는 가운데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BMW가 돋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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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르노 R4
[모터매거진 2014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르노 4는 33년 동안 800만 대 넘게 생산된 장수 인기 모델 중 하나다. 1950년대 인기 모델이던 4CV의 후속 모델로 계획되어 196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큰 인기를 얻으며 르노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실용성을 중시한 설계로 현대적인 다목적 소형차의 개념을 제시했고, 험로 주행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함과 승차감으로 저개발 국가에서도 사랑받았다.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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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 자동차의 복제품
[ 한국일보 2014년 3월 1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자동차는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이다. 카를 벤츠가 독일 특허국에 출원한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에 관한 특허가 1886년 1월에 승인받으면서 공식적인 첫 자동차가 되었다. 이때 벤츠가 받은 특허는 2011년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그는 이후 몇 년에 걸쳐 이 특허 설계로 모두 25대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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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모방’으로 탄생한 토요타의 첫 차
[ 한국일보 2014년 3월 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지금은 일본 자동차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영세한 수준이었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자동차가 대중화된 1930년대 초까지도 변변한 자동차 회사가 없었고, 특히 1920년대 후반에 일본에 현지 공장을 세운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일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미 대량 생산에 익숙해 품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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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에서 낯선 자동차 회사의 향기가 난다
[ 모터 매거진 2014년 3월호에 쓴 글의 원본입니다 ] 자동차 회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력과 제휴는 자동차 역사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다. 이런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차들 가운데에는 성공한 것도 있지만 실패한 것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동차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은 차들이 적지 않다는 것. 공동개발이나 배지 바꿔 붙이기가 아니라 독특한 협력을 통해 만들어져 신선한 충격을 준 차들을 살펴본다. 란치아 테마 8.32 석유파동의 여파에서 갓 벗어난 1980년대 중반의 유럽에 고성능 럭셔리 카 수요가 늘면서 란치아는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색다른 시도를 했다. 중형 세단인 테마를 바탕으로 고성능 고급차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당시 피아트 계열 브랜드에는 4기통 터보 엔진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고성능 엔진이 없었다. V6 엔진이 있기는 했지만 돋보일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가져온 것이 페라리 308과 몬디알 콰트로발볼레에 사용한 V8 2.9L 엔진이었다. 이 엔진은 당시에 쓰인 다른 페라리 V8 엔진과 설계가 달라 저회전 특성이 뛰어나고 진동이 적었다. 승용차에 걸맞도록 고회전 영역을 쓰지 않도록 하면서 최고출력은 240마력에서 215마력으로 낮아졌고, 향상된 성능에 맞춰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스티어링을 손보았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6.8초, 최고시속은 240km로 준수한 성능을 냈다. 오펠 로터스 오메가/복스홀 로터스 칼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GM이 로터스를 소유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로터스가 가진 능력이 GM 계열 차에 접목되어 만들어진 혁신적인 차가 오펠 로터스 오메가/복스홀 로터스 칼톤이었다. 중대형 세단인 오펠 오메가/로터스 칼톤이 이 차의 바탕이었다. 직렬 6기통 3.0L 엔진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배기량을 3.6L로 키우는 한편 두 개의 터보차저를 더했고, 로터스 에스프리의 점화 시스템을 이식했다. 변속기는 쉐보레 콜벳 ZR1용으로 개발한 ZF 6단 수동을 손질해 얹었고, 뒤 서스펜션을 멀티링크 타입으로 바꾸는 한편 뒤 디퍼렌셜에 대용량 LSD를 더해 접지력을 높였다. 날렵한 디자인의 에어댐과 대형 스포일러, 넓은 휠과 검은색 차체도 눈길을 끌었다. 최고출력은 382마력으로 당대 여러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수준이었고, 독일차와 달리 속도제한장치가 없어 최고속도는 시속 300km에 육박했다. 메르세데스-벤츠 500 E 럭셔리 카로는 인정받았지만 고성능 이미지는 크지 않았던 메르세데스-벤츠는 1990년대에 접어들며 BMW M5가 인기를 누리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이에 맞설 고성능 세단을 내놓기 위해 손잡은 상대는 포르쉐였다. 당시 메르세데스-벤츠는 AMG를 자회사로 만들기 전이었고, 경영난을 겪고 있던 포르쉐는 수익을 높일 방법이 필요했다. 두 회사의 공감대 속에 새 모델의 윤곽이 그려졌다. 견고하기로 소문난 W124 E-클래스를 바탕으로 SL 클래스의 V8 5.0L 326마력 엔진과 변속기, 브레이크 등이 소재로 마련되었다. 포르쉐가 광폭 펜더를 비롯해 차체를 조립하면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으로 옮겨 차체를 칠하고, 이것을 다시 포르쉐 공장으로 옮겨 에어댐 등을 결합해 최종 조립했다. 이렇게 해서 0-시속 100km 가속 6초대의 성능을 자랑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완성되었고, 5년 동안 약 1만 명이 이 늑대의 주인이 되었다. 아우디 RS2 아반트 1990년대 중반 이후 아우디에 고성능 왜건 이미지를 심는 한편 RS 브랜드의 탄생을 가져온 모델이 RS2 아반트다. 당시 아우디는 콰트로와 모터스포츠로 쌓은 이미지가 좀처럼 양산차에 스며들지 않았다. 이에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특색있는 고성능 차를 만들기로 하고 아우디는 오랫동안 협력관계가 돈독했던 포르쉐와 접촉했다. 마침 포르쉐는 메르세데스-벤츠 500 E의 생산이 끝나 제작에 참여할 여력이 있었다. 기본 뼈대는 사용한 아우디 80 아반트의 것을 활용했다. 그러나 스포트 콰트로 쿠페의 혈통을 이어받은 직렬 5기통 2.2L 터보 엔진과 콰트로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튜닝해 최고출력을 315마력으로 높이고, 서스펜션 튜닝은 포르쉐의 손을 빌었다. 브레이크는 브렘보 것을 포르쉐가 손질했다. 휠과 사이드 미러는 911의 터보의 것을, 새로 디자인한 앞 범퍼에는 968의 콤비네이션 램프를 달았다. 덕분에 RS2 아반트라는 0-시속 100km 가속 4.8초, 최고시속 262km인 괴물 왜건이 탄생할 수 있었다. 복스홀 VX220/오펠 스피드스터 1990년대 중반 이후 엘란, 에스프리 등 주요 모델의 단종, GM의 철수 이후 형편이 넉넉지 않던 로터스는 엘리즈로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엘리즈가 강화된 유럽 충돌안전 규제에 대응하기 어렵게 되자 외부의 도움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에 GM 유럽이 손을 내밀며 ‘우리가 섀시 업그레이드에 협력할 테니 그 섀시를 우리도 좀 쓰자’는 제안을 하고 로터스가 이를 승낙하면서 만들어진 차가 복스홀 VX220/오펠 스피드스터다. 첫선을 보인 것은 2000년이었다. 로버 K 시리즈 및 토요타 엔진을 쓴 엘리즈와 달리 GM이 디자인한 별도의 차체와 오펠/복스홀의 2.2L 및 2.0L 터보 에코텍 엔진을 얹었다. 여러 이유로 엘리즈보다 좀 더 무겁고 핸들링이 둔해져 스포츠성에 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원래 1만 대 한정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판매는 예상을 밑돌아 7,200여 대가 생산된 후 2005년에 단종되었다. 애스턴 마틴 시그넷 럭셔리 스포츠카 업체인 애스턴 마틴이 만든 가장 독특한 차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시그넷이다. 토요타의 초소형 차인 iQ를 바탕으로 만든 시그넷은 애스턴 마틴이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편법이었다. 초소형차를 라인업에 추가하면 업체 평균 배기가스 배출 수치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술적인 부분은 iQ의 것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에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애스턴 마틴 장인들이 실내를 최고급 내장재로 수제작한 것은 물론 차체 외부도 애스턴 마틴 디자인으로 다시 꾸며 차별화했다. 초기에는 기대가 컸지만 판매량은 예상을 훨씬 밑돌았다. 사실 시그넷은 iQ의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구동계를 그대로 써 스포츠카와는 거리가 멀었다. 편의장비도 거의 그대로였다. 그러면서 애스턴 마틴과 같은 소재와 제작방식으로 실내외를 고급화했다는 이유로 iQ의 세 배 가까운 값을 치를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시그넷은 2년여 만에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알파 로메오 8C 콤페티치오네 끝 모르고 추락하는 판매와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알파 로메오는 2003년에 8C 콤페티치오네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전성기 알파의 매력적인 디자인과 정통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구성에 팬들은 환호했고, 그 결과 2007년부터 양산 차로 한정생산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알파 로메오의 엠블럼과 디자인을 담고 있지만, 이 차는 여러 이탈리아 브랜드의 기술이 뒤섞여 있다. 플랫폼은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의 것을 바탕으로 길이를 줄였고, 페라리/마세라티의 V8 4.7L 엔진을 손질해 페라리가 조립했다. 최종조립은 마세라티가 맡았고, 디자인과 섀시, 브레이크 등의 튜닝은 알파 로메오가 직접 했다. 차체 패널은 탄소섬유로 만들어 바탕이 된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보다 훨씬 가벼웠고, 탁월한 제동력이 호평을 얻었다. 먼저 쿠페 500대가 한정 생산되었고, 쿠페가 생산되는 도중에 2인승 컨버터블인 스파이더의 생산이 결정되어 500대 더 한정 생산되었다. (Cover image: Alexas_Fotos via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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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호르히 853 스포트 카브리올레
[모터매거진 2014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아우디의 전신인 호르히가 아우토 우니온 시절에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스포츠 모델에 맞서기 위해 만든 모델이 853 스포트 카브리올레다. 참신한 기술과 탁월한 고속주행 능력, 그리고 고급차로는 비교적 저렴한 값으로 당시 독일 부유층과 유명인사에게 인기를 얻었다. 호르히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 중 하나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호르히는 1899년에 독일 기술자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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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비틀은 정말 포르쉐 박사의 아이디어였을까?
[ 한국일보 2014년 2월 1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폭스바겐 비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천만 대 이상 생산된 명차 중 하나다. 또한 아돌프 히틀러의 뜻에 따라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설계한 국민차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비틀이라고 하면 포르쉐 박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렇다면 비틀은 과연 포르쉐 박사의 아이디어로부터 나온 창작물일까? 포르쉐 박사가 국민차 개발을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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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와 람보르기니 탄생 비화의 진실은?
[ 한국일보 2014년 2월 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브랜드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의 차는 흔히 슈퍼카라고 불린다. 평범한 차의 범주를 뛰어넘는 차라는 뜻이다. 빼어난 디자인과 탁월한 성능,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값을 모두 갖춘 어마어마한 차다. 그런 차를 만드는 두 회사는 사뭇 다른 탄생 배경을 지니고 있다. 페라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