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콰이어 한국판 2013년 10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 카를 벤츠 (Carl Benz)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가장 먼저’ 발명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아직 논란이 되고 있지만, 특허를 통해 공인을 받은 첫 인물이 카를 벤츠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벤츠가 특허를 얻은 자동차는 인류 역사에 기계를 사용한 개인적 이동이라는 개념을 선보였고, 그의 아내 베르타 벤츠는 불완전한 것으로 여겨졌던 이 기계를 장거리 이동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벤츠의 자동차가 자동차 역사 초기의 수많은 도전과 좌절 그리고 경쟁 속에서 꾸준히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남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벤츠는 자동차라는 미지의 탈것을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인 셈이다.
>> 헨리 포드 (Henry Ford)

육류 가공공장이 자동차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동차 대량 생산의 바탕이 된 일관 생산체계의 아이디어가 나온 곳이 바로 육류 가공공장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로 자동차 생산 속도와 능률을 획기적으로 높인 인물이 바로 헨리 포드였다. 그의 결단으로 모델 T의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자동차가 주는 편리하고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혜택을 세계인이 누릴 수 있게 되었고, 한때 지구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절반 이상을 모델 T가 차지하며 포드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조롱한 노동환경과 그에 관련한 문제의식 역시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 알프레드 슬론 2세 (Alfred P. Sloan Jr.)

차를 구입하자마자 ‘201x년형’이라며 조금 바뀐 모델이 새로 나와 마치 구형 차를 산 듯한 찝찝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연식변경은 소비자들에게 끊임없이 최신형 차를 사고 싶게 만드는 자동차 회사의 교묘한 상품전략으로, 어느 회사나 따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판매촉진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전략을 자동차 업계에 뿌리내린 인물이 바로 알프레드 슬론 2세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GM의 경영자였던 그는 이전까지 없었던 브랜드 계열화, 산업 디자인 개념, 과학적 마케팅, 경영 조직화 등 새로운 경영기법을 자동차 업계에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은 GM을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 경영기법의 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 페르디난트 포르쉐 (Ferdinand Porsche)

‘독일 차 회사들은 외계인을 고문해 차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는 단일 차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생산된 폭스바겐 비틀의 아버지로도 유명하지만, 빼어난 기술적 재능을 발휘해 1920~30년대에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토 우니온(아우디의 전신)의 이름을 높이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21세기나 되어서야 보급되기 시작한 휘발유-전기 하이브리드 카를 20세기가 막 시작할 무렵에 실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2차대전 중 독일 주력 전차에도 하이브리드 기술을 구현하려 애썼던 그의 모습을 보면, 아마도 그는 외계인을 고문했던 것이 아니라 본인이 바로 외계인이었을지도 모른다.
>> 알렉 이시고니스 (Alec Issigonis)

자동차가 대중화된 이후, 작고 경제적인 차를 만들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크기와 가격에 치중해 형편없는 기술과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지닌 것이 아닌, 차가 갖춰야 할 자질을 고루 갖춘 소형차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알렉 이시고니스가 그처럼 어려운 과제에 혁신적인 개념과 기술로 명쾌한 해답을 내놓은 것이 바로 오리지널 미니다. 미니는 차체 앞쪽에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는 앞바퀴 굴림 방식의 선구자였다. 이 설계 덕분에 작은 차체에도 실내 공간을 키울 수 있었다. 게다가 미니는 잘 달리기도 했고 괴상하게 생기지도 않았다. 이후의 소형차들이 대부분 미니의 틀을 이어받았으니, 이시고니스는 현대 소형차의 교본을 만든 셈이다.
>> 벨라 바레니 (Bela Barenyi)

빠른 속도만큼 큰 에너지를 지닌 자동차는 타고 있는 사람은 물론 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근본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다. 그나마 과거보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차에 탄 사람이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것은 벨라 바레니 덕분이다. 1939년부터 30년 넘게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일했던 그는 충격 흡수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차체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차체 일부가 찌그러져 충격을 흡수함으로써 탑승 공간을 보호하는 설계, 즉 크럼플 존과 세이프티 셀 개념은 그가 발명하고 연구한 수많은 안전 관련 기술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교통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가장 감사해야 할 대상은 신이 아니라 바레니일 것이다.
>> 엔초 페라리 (Enzo Ferrari)

‘카발리노 람판테’, 즉 노란색 방패에 위의 검은색 말이 그려진 엠블럼을 알고 있다면 그 엠블럼을 붙인 자동차의 브랜드인 페라리도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고성능 스포츠카 또는 슈퍼카의 대명사인 페라리를 탄생시킨 엔초 페라리는 기업가이기 이전에 스쿠데리아 페라리 레이싱 팀의 창설자였고, 그 전에는 알파 로메오 레이싱 팀을 이끌었으며, 그 전에는 알파 로메오의 간판 레이서 중 한 명이었다. 레이스에서 이기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던 그는 여러 레이서를 희생하면서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잔혹하리만치 강했던 그의 열정은 수 십 년 동안 ‘페라리를 이기겠다’는 경쟁자를 쏟아냈고, 그 덕분에 모터스포츠와 스포츠카는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 혼다 소이치로 (本田 宗一郎)

탈것으로 세상의 모습을 바꾼 업적으로 따지자면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헨리 포드에 필적하는 위대한 인물이다. 두 바퀴의 포드 모델 T라고 할 수 있는 컵(Cub)을 만들어 전 세계에 모터사이클을 보급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후로 혼다는 모터사이클과 자동차 모두 거의 모든 장르에서 누구나 쉽게 탈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회사로는 드물게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포뮬러 1 출전, 국제 규격 서킷 건설, 미국 현지 자동차 공장 건설 등 여러 ‘일본 최초’ 기록을 세운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죽는 날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 조르제토 주지아로 (Giorgetto Giugiaro)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경력은 한 시대를 풍미한 이태리 카로체리아인 베르토네와 기아를 두루 섭렵하며 시작되었다. 그는 그 시절에 이미 콘셉트카와 스포츠카는 물론 대중을 위한 양산차에도 세련된 디자인을 심으며 순식간에 천재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나이 30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카로체리아를 설립하며 그의 디자인 세계는 더욱 넓어졌다. 특히 1970년대 들어 그가 시도한 강렬하고 단순한 직선이 돋보이는 디자인은 ‘종이 접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종이 접기’ 시대는 20년 가까이 이어지며 세계 자동차 디자인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실패작도 많았지만 유행을 이끈 걸작은 더 많았고, 국내 자동차 회사 차도 여럿 디자인해 친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 페르디난트 피에히 (Ferdinand Piech)

그는 여러 이유에서 놀라운 인물이다. 우선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외손자라는 배경이 그렇다. 그리고 젊은 시절 포르쉐 906과 917, 아우디 콰트로로 모터스포츠 세계에 파란을 일으킨 엔지니어였다. 나아가 기술적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많은 제품의 성공을 이끌어, 아우디와 폭스바겐 뿐이던 폭스바겐 그룹을 람보르기니, 부가티, 벤틀리, 세아트, 슈코다까지 거느린 거대 제국으로 키운 경영자이기도 했다. 폭스바겐 페이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부가티 베이론 등이 그의 결단으로 만들어졌다. 나아가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음에도 아직까지 폭스바겐 그룹의 전략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