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가 자동차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86년의 일이다. 가족 기업으로서 금속을 사용한 각종 제품을 만들게 된 토대를 마련한 장피에르 푸조(Jean-Pierre Peugeot)의 손자인 아르망 푸조(Armand Peugeot)가 그 주역이었다.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은 그는 1886년부터 한창 새로운 탈것으로 각광받던 자전거와 삼륜차 생산을 시작했고,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실제 자동차 생산으로 이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던 가운데 푸조는 레옹 세르폴레(Leon Serpollet)의 증기기관 특허에 주목했다. 세르폴레가 만든 순간 증기 발생장치는 작은 크기에 많은 물이 필요 없으면서 빠르게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자동차에 얹기에 알맞은 특성이었다. 실제로 세르폴레는 1885년에 직접 4인승 삼륜 증기자동차를 만들기도 했다. 이에 푸조는 세르폴레와 손잡고 푸조의 이름을 달고 판매할 차의 설계를 그에게 맡겼다. 이에 세르폴레는 1888년부터 1889년까지 삼륜차를 설계하고 시제품을 만들었다.

푸조에서는 타입 1이라고 부르는 세르폴레-푸조 트리시클은 조향장치가 있는 앞 바퀴 하나에 뒷바퀴가 두 개인 삼륜차다. 이 차는 좌석이 앞뒤로 사람이 마주보고 앉게 되어 있는 비자비(Vis-à-vis) 형태다. 3~4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차는 건축기사인 루이스 리굴로(Luis Rigoulot)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파리에 있는 세르폴레의 작업장과 리옹에 있는 오멜라뷔르(Horme et La Buire) 작업장 등에서 나뉘어 만들어졌다.
푸조 타입 1의 증기기관은 뒷좌석 뒤쪽 아래에 놓였고, 조작과 보수가 편리하도록 보일러와 화실이 뒤차축 뒤에 개방되어 있는 구조였다. 운전자가 화실에 있는 코크스에 불을 붙인 다음, 보일러의 튜브가 충분히 가열된 뒤에 출발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10분 정도였고, 튜브가 가열된 뒤에는 운전자가 레버를 이용해 물을 튜브로 공급했다. 이렇게 공급된 물은 튜브에서 빠르게 기화되어 크랭크샤프트와 연결된 실린더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연료인 코크스는 자동으로 화실로 공급되었다.
속도 조절은 레버를 이용해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 번 가득 채우면 18km 정도 달릴 수 있는 물 탱크는 증기기관과 나란히 놓여 있었다. 동력은 체인을 통해 뒤 차축으로 전달되었고, 조향은 자전거처럼 앞바퀴를 잡는 포크가 위쪽으로 이어져, 끝에 설치된 막대를 밀고 당기는 식으로 바꿀 수 있었다. 제동은 운전석에 있는 레버를 당기면 뒷바퀴에 제동 슈가 통고무 타이어와 밀착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노면으로부터 전달되는 충격은 뒷바퀴와 차체 사이에 설치된 반타원형 스프링이 흡수했다. 최고속도는 시속 25km 정도였지만, 안전을 위해 시속 10~15km로 달리도록 권장되었다.

푸조의 공식 기록에는 이 차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던 것으로 남아 있다. 증기기관을 쓴 자동차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지만,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박람회 후 푸조 형제는 여러 상을 받았고, 무역 및 산업위원회 명예훈장을 받았지만 대중과 언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푸조 타입 1은 처음부터 상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보나 상품으로 보나 아주 뒤처지지도 않았지만 아주 앞선 차는 더더욱 아니었다.
게다가 푸조는 타입 1이 전시된 바로 그 박람회에서 한층 더 발전된 기술을 접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기로 했다. 독일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가 발명한 가솔린 엔진이 바로 그것이었다. 푸조는 세르폴레와 결별하며 증기기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엔지니어 에미유 르바소(Emile Levassor)와 협력해 1890년에 다임러 엔진을 얹은 타입 2를 만들었다. 이로써 푸조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자동차 업체 가운데 가솔린 엔진 차 생산 역사가 두 번째로 긴 회사로 기록되고 있다.
* 2019년 1월 오토헤럴드(https://autoherald.co.kr)에 기고한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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