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자동차 회사인 오토모빌리 페루치오 람보르기니(Automobili Ferruccio Lamborghini)를 설립한 지 60주년이 되는 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람보르기니는 세계 여러 곳에서 기념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요. 2023년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지스퀘어(G Square)에 만든 팝업 라운지에 여러 차를 비롯해 과거와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을 한자리에 모아 놓기도 했습니다. 저는 행사 첫날 미디어 세션에 참석해 현장을 둘러보고,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두 대의 옛 차를 만나 봤습니다. 쿤타치 25주년 기념 에디션과 디아블로 SV로, 모두 우리나라에 있는 차들입니다. 그 가운데 디아블로 SV는 배우 박상민 씨가 소유한 것이고요.
쿤타치 25주년 기념 에디션 / Countach 25th Anniversary Edition


쿤타치는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프로토타입인 LP500으로 첫선을 보이고 1974년에 양산 모델인 LP400이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에서 일하고 있던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의 파격적 디자인과 파올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 설계의 미드 엔진 섀시, 조토 비차리니(Giotto Bizzarrini) 설계의 V12 엔진이 어우러진 모델이었죠. 미우라로 주가를 올리고 있던 람보르기니는 카리스마 가득한 쿤타치를 내놓으며 당대 스포츠카 업계에서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다만 데뷔 시기가 1973년에 시작된 1차 석유파동과 맞물려 판매는 예상을 밑돌았습니다. V12 엔진을 얹은 고성능 스포츠카를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줄었기 때문이죠.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1974년에 회사를 매각했고, 1978년에는 파산에 이르렀다가 1980년에 새 주인을 맞아 명맥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1987년에는 크라이슬러가 인수해 다시금 발전을 노리게 되고요. 그동안 새 모델 개발이 여의치 않았던 탓에, 최상위 스포츠카였던 쿤타치는 개선을 거듭하며 본의 아니게 장수 모델이 됩니다.

그리고 람보르기니가 창립 25주년을 맞은 1988년에 이르러, 당시까지 만들어진 쿤타치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가장 화려한 모델인 25주년 기념 에디션이 나옵니다. 기술적으로는 이전 버전인 5000 QV(Quattrovavole, 4밸브)의 특징을 대부분 이어받아, V12 엔진은 배기량이 5.2L(5,167cc)였고 최고출력 455마력, 최대토크 51.0kg・m의 성능을 냈습니다. 최고속도는 시속 298km였고 시속 100km 정지 가속 시간은 4.5초로 당시까지 나온 람보르기니 차들 가운데 가장 빨랐고요.






디자인 측면에서는 오리지널 쿤타치의 디자인에 당시 람보르기니에서 일하고 있던 오라치오 파가니(Horacio Pagani)가 손질해 한층 더 과격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차체 주변을 감싼 에어로 파츠는 고속 주행 안정성을 높이도록 디자인되었고, 엔진룸 커버를 비롯해 늘어난 공기 흡입구 및 배출구는 브레이크와 엔진 냉각 성능을 높이는 기능을 했습니다. 실내에는 에어컨이 달리고 좌석 전동 조절 기능과 파워 윈도우가 설치되는 등 당시 고성능 스포츠카로는 제법 호화로운 장비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쿤타치 25주년 기념 에디션은 1990년에 쿤타치의 후속 모델인 디아블로가 나오기 전까지 657대가 생산되었습니다.
디아블로 SV / Diablo SV


디아블로는 쿤타치의 후속 모델로 1990년에 출시되었습니다. 람보르기니가 크라이슬러 품 안에서 만든 첫 모델이고, 카로체리아를 떠나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했습니다. 다만 간디니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크라이슬러에서 크게 손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리지널 디자인은 훨씬 더 과격했다고 하고요. 그렇지만 차체 옆에는 간디니가 디자인했음을 나타내는 배지가 붙어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간디니의 상징성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기도 하죠.

처음 나왔을 때에는 V12 5.7L 엔진의 최고출력이 492마력이었는데, 이후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출력이 더 높은 버전이 나옵니다. 람보르기니 30주년 기념 한정 생산 모델인 SE30에서는 최고출력이 530마력까지 올라갔고요. 일반 판매 모델의 최고성능 버전인 디아블로 SV는 517마력의 최고출력과 59.2kg・m의 최대토크를 내도록 조율된 엔진을 얹고 1995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했습니다. SV는 슈퍼 벨로체(Super Veloce, 초고속)의 머리글자로, 람보르기니가 미우라 후기형 고성능 모델에 썼던 이름을 되살린 겁니다. 최고속도는 시속 328km, 시속 100km 정지 가속 시간은 3.8초로 초기 429마력 모델보다 조금씩 더 나았습니다.

디아블로 SV는 앞서 선보인 디아블로 VT가 처음으로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쓴 것과 달리 뒷바퀴굴림 구동계를 갖추고 나와 강력한 성능을 박력있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빠진 덕분에 차 무게도 더 가벼워졌고, 값도 디아블로 VT보다는 조금 더 쌌습니다. 아울러 탄소섬유로 만든 스포일러가 기본으로 달렸고, 브레이크를 강화하면서 앞 범퍼에 브레이크 냉각용 공기 흡입구가 추가되는 등 겉모습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달라진 부분들 가운데에는 앞서 선보인 한정 모델 SE30의 요소를 이어받은 것들도 있었고요.






휠은 OZ 레이싱이 만든 SV 전용 투 피스가 기본이었고, 스포크 부분은 검은색이 기본이었지만 차체와 같은 색으로 칠한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변속기는 5당 수동 한 가지였고, 서스펜션에는 코니제 전자식 댐퍼가 들어갔습니다. ABS는 없었지만 파워 스티어링은 기본이었고요. 실내는 디아블로 VT와 마찬가지로 초기 모델과 다른 형태의 대시보드와 흰색 바탕 계기가 쓰이는 한편 고급 가죽 내장재와 더불어 파워 윈도우와 전동 조절 사이드 미러, 에어컨 등이 들어갔습니다. 스티어링 휠에는 아직 에어백이 들어가지 않았고요. 1999년에 페이스리프트되어 2001년에 후속 모델인 무르시엘라고가 나올 때까지 SV 라인업의 생산은 이어졌습니다. 모두 2,884대가 생산된 디아블로 라인업 가운데 1999년까지 만들어진 전기형 SV는 300여 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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