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EV 트렌드 코리아 2024’ 행사가 열렸습니다. EV 트렌드 코리아는 코엑스와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주관하고 환경부가 주최해 해마다 열리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전기차와 관련 산업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인 만큼, 저도 거의 매해 둘러보고 있습니다.

EV 트렌드 코리아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한동안 주춤했다가 2022년 행사부터 다시 활기를 띠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2023년 행사에 완성차 업체들이 참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2024년 행사 역시 완성차 브랜드 참여는 저조했습니다. 그래서 주최측이 밝힌 참여업체 수가 150여 곳으로 상당히 많았는데도 굵직한 볼거리는 별로 없었습니다.
2023년에는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서울모빌리티쇼가 열린 탓에 중복 참여를 피한 영향이 있겠거니 했지만, 2024년에는 부산모빌리티쇼가 있기는 해도 개최 지역의 거리도 멀고 시기도 세 달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분위기는 2023년과 비슷했습니다. 국내에서 전기차 소비 증가세가 둔해진 것은 물론이고 악화된 경기 탓에 주요 완성차 업체와 브랜드가 홍보 마케팅 예산을 크게 줄인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독립 전시공간을 마련한 곳은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전부였는데요. 두 업체 모두 행사 메인 스폰서인 만큼 행사장 안쪽 가장 넓은 자리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차들이나 기술도 눈에 띄지는 않았고, 새 차보다는 전기차 전용 서비스와 상품 프로그램, 친환경 특성 등 사용자 경험 중심으로 공간을 꾸몄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판매를 시작한 아이오닉 5 부분 변경 모델 두 대와 코나 일렉트릭 N 라인 한 대를 전시했고, 전기차 구매자를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인 EV 에브리케어(EV EVery care)와 V2L 기능의 편리함과 전기차의 경제성에 관한 이해를 돕는 전시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편,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 N은 전문가 패널들의 심사를 통해 선정하는 ‘EV 어워드 2024’에서 ‘대한민국 올해의 전기차’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기아는 전시 공간을 크게 전기차 충전, 공간 및 신기술,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각각 레이 EV와 EV9, EV6을 대표 모델로 전시해 방문객을 맞았습니다.




전시 내용에서 눈길을 끈 것은 EV6의 열 가지 친환경 소재와 그 소재가 쓰인 부분들을 알기 쉽도록 배치해 놓은 전시물이었는데요. 출시 당시 힘주어 알린 내용이라 새로울 것은 없지만, 평소 접하고 체감하기 어려운 내용을 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아 흥미를 더했습니다.

아울러 기아 EV9는 EV 트렌드 코리아가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EV 어워즈 2024 ‘소비자 선정 올해의 전기차’에 올랐습니다.
독립 전시공간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주한영국대사관이 마련한 영국 전기차 관련 산업 종합 전시공간에는 LEVC(London EV Company)의 택시 전용 모델인 TX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지리의 100% 자회사인 LEVC가 영국에서 생산하는 TX는 (주)에이티모빌리티가 우리나라에 공식 수입 판매하고 있는데요. 기술적으로는 시중에 흔치 않은 직렬 하이브리드 시스템 기반 전기차라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외부 전원을 연결해 충전한 배터리의 전기 에너지로 달리다가 필요할 때에는 1.5 L 가솔린 엔진을 발전기로 써서 주행 중에도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판매를 시작한지 꽤 되었는데 아직 거리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택시에 특화된 구조와 실내 공간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 국내 택시 운용환경과는 조금 맞지 않는 면이 있고 차값은 물론 유지보수 네트워크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아 좀처럼 보급이 되지 않는 듯합니다.
물론 EV 트렌드 코리아는 전기차라는 완제품만을 다루는 행사는 아닙니다. 전기차 사용 환경을 만드는 충전 관련 제품과 서비스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죠. 다만 그 역시도 이전보다는 업체들의 참여가 소극적인 분위기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보다는 사업자 유치에 초점을 맞춘 B2B 성격이 커서 보는 즐거움은 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몇몇 업체의 제품과 서비스는 여전히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채비(구 대영채비)는 한국타이어와 공동으로 전시공간을 꾸며, 채비 충전 서비스와 함께 한국타이어의 전기차 전용 타이어 신제품을 연계해 알렸습니다. 채비는 한국타이어의 타이어 서비스 네트워크인 티스테이션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하고 있고, 한국타이어 전기차 전용 타이어 구매자에게 채비 충전 네트워크에서 쓸 수 있는 충전 크레딧을 주는 등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충전기 업체 모던텍은 로봇 암 충전기를 전면에 내세워 눈길을 끌었습니다. 로봇 암 충전기도 처음 선보이는 기술은 아니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활용하기 좋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제품인데다가 아직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신선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공간활용 측면에서 눈길을 끈 또 하나의 업체는 LG유플러스였습니다. LG유플러스가 전시한 케이블업 충전기는 천장에 충전 케이블을 설치해, 충전 플러그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도록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면서 길게 만들어진 케이블 수납공간을 따라 플러그를 움직일 수 있어, 하나의 충전 플러그로 최대 네 대분 주차공간에 쓸 수 있습니다. 바닥에 설치하는 일반 충전기과 비교해 침수에 안전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고요.

워터(WATER) 브랜드를 내세운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업체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는 개성 있는 디자인의 충전 시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나무를 쓴 캐노피와 파란색을 주제로 한 시설 디자인은 비슷한 성격의 다른 브랜드와 뚜렷하게 차별화되면서도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가 돋보입니다. 앱 디자인도 시설과 통일된 색과 분위기여서 친근한 느낌을 주고요.

티비유(TBU)의 일렉베리(Elecvery) 역시 산뜻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비롯한 디자인이 돋보였는데요. 충전과 결제 편의성을 높인 앱과 더불어 ‘충전 배달’ 개념의 이동식 충전 서비스를 상품화한 것도 사용자에게 편리하게 받아들여질 듯합니다.

한편, EV 트렌드 코리아와 함께 열린 인터배터리 2024(Interbattery 2024) 행사에서는 국내 대표적인 이차전지 업체들이 배터리 기술과 시장 영향력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을 마련했습니다. EV 트렌드 코리아보다 더 많은 전기차가 전시되기도 했고요. 특히 삼성 SDI와 LG 에너지솔루션은 셀투팩(Cell-to-Pack) 기술의 구현 사례를 전시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삼성 SDI의 셀투팩 기술은 각형(prismatic) 배터리 셀을 쓰면서 배터리 단자를 위에서 옆으로 옮겨 배터리 팩의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한편, 부품 수를 줄이고 공정을 단순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더불어 배터리 팩 단위의 값도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LG 에너지솔루션의 셀투팩 기술은 일반적인 셀투팩 개념을 따르지만, 파우치(pouch)형 셀을 써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냉각 회로를 비롯한 팩 구성과 팩 구조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설계에 따라서는 팩 단위 에너지 밀도를 상당히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EV 트렌드 2024 행사를 앞두고 갑자기 4695 배터리 개발 성공을 알린 금양은 현대자동차 및 기아와 거의 같은 규모의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홍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만 전시공간 구성은 관람객에게 회사 규모와 능력을 과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적 기대를 자극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4695 배터리 실물을 이미 개발한 21700 배터리와 전시하기는 했지만 돋보이지는 않았고요. 금양에 따르면 4695 배터리의 생산 개시 시기는 2024년 10월 말, 대량 생산 시기는 2025년 이후라고 하니, 당분간 지켜볼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그밖에 삼성 SDI 전시공간의 볼보 FH 전기 트랙터와 LG 에너지솔루션 전시공간의 이스즈 엘프 EV 전기 트럭 정도가 특별한 느낌을 주었을 뿐, 전체 행사장에 전시된 전기차는 모두 합쳐도 20대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EV 트렌드 코리아를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열리는 인터배터리 행사에 밀려 그 의미와 중요성이 희석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터배터리는 배터리 관련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B2B 성격의 행사인데도,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업체가 참여하고 전시장 사이를 잇는 통로까지 소규모 전시공간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활기를 띤 모습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EV 트렌드 코리아는 B2B와 함께 B2C 관점의 접근이 돋보여야 하는데,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참여가 줄다 보니 소비자 관점에서 흐름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EV 트렌드 코리아 행사에서 전기차 완제품을 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중소규모 초소형 전기차나 소형 전기 상용차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은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기관이나 기업 수요를 노리고 여러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수요가 제한적인 데다가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제품들도 적지 않았죠. 게다가 중국산 OEM 또는 중국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반조립하는 제품들의 품질과 서비스 문제도 있었고, 특히 올해 LFP 배터리를 쓰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이 크게 줄면서 입지가 위축된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2023년 행사까지만 해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전기 이륜차 및 초소형 이동수단 관련 업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번 행사에서 전기 이륜차 관련 업체로 눈에 띈 곳은 KR모터스 뿐이었고, 한동안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과 배터리 구독, 공유 서비스 등을 적극적으로 알렸던 업체들도 이번에는 거의 볼 수 없었으니까요. 이는 이륜차 부문에서도 전기 동력계로의 전환이 생각만큼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배터리 관련 산업은 한창 활기를 띠고 있는데, 정작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고 쓰는 제품 가운데 비교적 많은 양의 배터리를 담는 전기차가 이런 행사의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울림을 주었던 지난 몇 년과 달리,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시장과 경제 환경이라는 현실이 전기차 보급 속도를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V 트렌드 코리아에서 느낀 아쉬움이 오는 6월 말에 열릴 부산모빌리티쇼에서 해소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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