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맞은 MAN 디젤 엔진 트럭 – 무엇이 세계 최초이고 무엇이 아닌가


자동차 동력원이 내연기관에서 전기 모터로 점점 바뀌고 있지만, 내연기관은 여전히 주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승용차에서는 가솔린 엔진이, 상용차에서는 디젤 엔진이 그 중심에 있죠. 상용차를 대표하는 트럭도 초기에는 가솔린 엔진을 얹은 것이 많았습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나중에 개발되었고, 특성상 자동차에 쓸 만큼 작고 빠르게 회전하게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루돌프 디젤이 개발한 초기 디젤 엔진의 모습

원래 공장과 같은 곳에서 증기기관을 대신하는 거치형 동력원으로 시작된 디젤 엔진은 힘과 효율이 좋은 대신 덩치가 크고 무거웠습니다. 회전도 느렸고요. 그래서 이동수단에 쓰려면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작동속도를 높여야 했는데, 초기 기술로는 그렇게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1886년에 처음 나온 뒤로도 40여 년이 흘러서야 겨우 자동차에 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첫 디젤 엔진 자동차는 덩치가 큰 트럭이었고요. 그러니까 디젤 엔진 자동차의 역사는 이제 100년을 갓 넘긴 셈입니다.

마침 2024년은 독일 기반의 엔지니어링 및 상용차/버스 생산업체면서 폭스바겐그룹 계열 상용차 업체 트라톤(TRATON)의 자회사인 만(MAN Truck & Bus)이 첫 디젤 엔진 트럭을 만든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만은 디젤 엔진 트럭은 물론이고 디젤 엔진 자체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업체기도 합니다. 루돌프 디젤이 압축착화식 내연기관을 실용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고 투자한 업체로서 디젤 엔진 시대를 연 주역이니까요.

1924년에 만이 처음 만든 직접 연료분사식 디젤 엔진 트럭

만은 1924년에 트럭에 얹을 수 있도록 크기를 줄인 디젤 엔진 세 기를 만들어, 당시 스위스 기계 및 상용차 업체였던 자우허(Saurer)와의 합작회사인 만-자우허(M.A.N.-Saurer)가 만들던 트럭과 농기계에 얹어 시험을 시작했습니다. 만의 첫 디젤 트럭은 4톤급으로, 약 40 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4기통 디젤 엔진을 얹었습니다.

1924년 3월 12일에 있었던 트럭의 시험 주행은 아우크스부르크 공장을 출발해 뉘른베르크까지 약 140km 거리에서 이루어졌는데요. 두 명의 엔지니어가 몬 트럭은 다섯 시간 반 뒤에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 실용적 디젤 엔진 트럭의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만이 첫 디젤 엔진 트럭을 만든 것은 브랜드 역사뿐 아니라 내연기관 기술에서도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현대적 자동차용 디젤 엔진에서 연료분사 방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직접 연료분사 방식을 쓴 첫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연료분사 방식은 연료를 고압 펌프를 이용해 엔진 실린더의 연소실에 직접 뿌리는 개념입니다. 시험용 차에 쓰인 엔진의 연료분사 장치를 위한 여러 부품은 만이 직접 만들었고, 만은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디젤 엔진 트럭 생산을 시작합니다.

1927년에 보쉬가 처음 생산한 디젤 연료분사 펌프

그 뒤로 로버트 보쉬(Robert Bosch)가 1927년부터 자동차용 디젤 엔진에 알맞은 소형 고압 연료분사 펌프와 노즐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디젤 엔진은 자동차 동력원의 또다른 주류가 될 바탕을 마련합니다. 보쉬가 만든 디젤 엔진용 고압 연료분사 펌프와 노즐이 처음 쓰인 자동차는 물론 만 트럭이었고요.

즉 100년 전에 첫 선을 보인 만 디젤 트럭은 세계 최초로 직접 연료분사 방식 디젤 엔진을 얹은 자동차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만이 디젤 엔진을 얹은 자동차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세계 최초로 디젤 엔진 트럭을 만든 업체는 어디일까요?

1923년에 만들어져 세계 최초 디젤 엔진 트럭으로 여겨지는 5K3 디젤 엔진 트럭

그 주인공은 지금의 메르세데스-벤츠의 뿌리 중 하나인 벤츠입니다. 1922년부터 트럭용 디젤 엔진을 개발한 벤츠는 이듬해 열 기의 OB 2 엔진을 시험 제작했고, 당시 생산하던 5K3 트럭에 얹어 1923년 9월에 시험주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벤츠의 경쟁자 중 하나였던 다임러 역시 1923년 9월에 시험 제작한 디젤 엔진 트럭으로 베를린에서 슈트트가르트를 왕복 주행하며 완성을 알렸고, 곧 5C라는 이름으로 두 종류의 트럭과 버스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24년 12월에 열린 베를린 모터쇼에서는 만과 벤츠, 다임러가 각자 개발한 디젤 엔진 트럭을 모두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엔진은 모두 다른 연료분사 및 점화 방식을 썼는데요. 만은 직접 연료분사 방식을, 벤츠는 예연소실 방식을, 다임러는 압축공기 분사 방식을 썼습니다. 이 가운데 다임러가 썼던 압축공기 분사 방식은 연료분사 장치가 크고 무거울 뿐 아니라 효율도 낮아서, 1926년에 벤츠와 다임러가 다임러 벤츠로 합병한 뒤로는 디젤 엔진의 연료분사 및 점화 방식이 예연소실 방식으로 통일됩니다.

이후 디젤 엔진의 연료분사 방식은 직접 연료분사와 예연소실 방식과 나중에 개발된 와류실식이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자동차용 디젤 엔진에 쓰이고 있는 커먼레일 직접 분사 방식은 넓게 보면 직접 연료분사 방식의 발전된 형태인 만큼, 만이 100년 전 제시했던 개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