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니즘’에 심취해, 한동안 블랙 레이븐 사용기 정리에 소홀했네요. 그러는 사이에 겨울과 봄이 지나가고 어느덧 여름이 되었습니다. 지난 반 년 사이에 차와 함께 겪었던 일들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겨울에는 굵건 가늘건 눈이 옵니다. 뒷바퀴굴림 차로 처음 겪어보는 겨울인데, 애초에 눈이 오면 차를 가급적 쓰지 않는 편이지만 늘 그럴 순 없죠. 어쩔 수 없을 땐 조심조심 살살 모는 것 외에는 달리 해법이 없습니다. 만들어진 지 5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트레드 깊이가 충분한 타이어를 끼우고 있으니 더 그렇고요. 수명이 긴 타이어들은 대개 악천후 때 접지력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생산된 지 오래 되면 경화도 심해지고요.

특히 눈 예보가 있을 땐 가급적 차를 두고 나가지만, 이미 차를 몰고 나왔는데 눈이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몰고 귀가해야죠. 2월 초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다행히 기온이 높고 큰길에는 제설제가 미리 뿌려진 덕분에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체어맨에는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의 일종인 ASR이 달려 있지만, 어떤 경우라도 안전이 먼저입니다. 최대한 계기판의 ASR 경고등이 깜빡이지 않도록 운전해야죠. ABS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눈이 내리면 객기를 부리고 싶은 철부지기는 마찬가지여서, 나름 눈이 좀 많이 내린다는 강원도 쪽을 향해 차를 몰고 가보기도 했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인 광덕고개에 한 번 가 봤는데요. 고개 아래는 눈이 거의 없었지만 고개 정상에 다가갈수록 눈 쌓인 모습을 볼 수 있었죠. 물론 도로는 이미 제설작업이 이루어져 있었지만 고개 정상 휴게소 주변은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조금만 깊이 밟아도 ASR 경고등이 켜질 만큼 미끄러웠습니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곧 발길을 돌렸지만, 큰 문제 없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3월에는 인수 후 처음으로 엔진 오일을 교환했습니다. 쌍용 서비스 프라자가 생활권 안에 있어서, 예약 없이 방문했는데 약 45분 만에 작업이 끝났습니다. 신차 매장은 순차적으로 KG 모빌리티 CI와 BI를 반영해 바뀌고 있지만, 정비 네트워크까지 모두 바뀌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모양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쌍용’이라는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저는 옛날 사람이 틀림없네요.
실내 필터와 테일램프 전구도 함께 바꿨는데 지불한 금액은 19만 2,000원. 직렬 6기통 3.2L 대형 럭셔리 세단 유지비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데, 그간 작은 차 쓰면서 비슷한 항목에 들어갔던 금액들과 비교하면 역시 강력한 임팩트를 안겨주는 수준입니다.
엔진 오일 교환한 뒤에는 늘 그렇듯 엔진이 더 부드럽게 작동하고 조용해진 느낌인데, 오일 열화 과정에서 엔진 컨디션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는 직접 확인해야죠. 사용설명서 상 엔진 오일 권장 교체주기는 1만 km인데, 지금처럼 차를 쓴다면 내년은 되어야 주기가 되겠지만 아마 늦가을이나 초겨울쯤 다시 교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월 말에는 주차해둔 차를 누가 긁었다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는데요. 사기 전부터 미스터리였던 앞 범퍼 왼쪽에만 붙은 범퍼 가드 부분이 절묘하게 긁혔더라고요. 사소한 흠집이라 괜찮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된다고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떼려고 했던 범퍼 가드가 모처럼 제 역할을 한 것 같아서 그것도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어요.

들여올 때는 이따금 장거리 주행용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상용으로 쓰게 되면서 생각이 많아집니다. 옷도 정장은 좀처럼 입지 않는 편인데, 이 차를 몰고 움직일 때마다 평범한 일상에 턱시도 입고 나서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차가 턱시도를 떠올리게 생기기도 했지만요.
이렇든 저렇든 제 형편에 사치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은데, 평소 좋아하고 즐겨 입는 후드티 처럼 부담없이 몰고 다닐 작고 경쾌한 차가 하나 더 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천성이 그런 차에 더 끌리는 편이기도 하고요. 물론 – 문법상 틀린 표현이긴 합니다만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죠. 저 역시 인간인지라 그 명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듯합니다.

사실 겨울 지나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연료비 압박에 세워두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자전거를 사고 나서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커피숍에 가서 일하는 일이 늘기도 했고요. 그래도 한 주에 두세 번씩은 단거리든 장거리든 잘 달리고 있습니다.
5~6월에는 한 번 가득 주유하면 대충 450~500km 달렸습니다. 평균 연비가 대략 7.5~8km/L 나왔고요. 겨울 추울 때는 곳곳이 이상 작동하더니 따땃해지니 괜찮고요. 여름에야 에어컨 잘 나오고 가다가 퍼지지만 않아도 땡큐죠.
대신 차와 함께 받았던 사제 TPMS는 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배터리가 방전되었는지 먹통이 되었고요. 간헐적으로 주유구 여는 버튼 조명이 깜빡거리는데 신경 끄고 있습니다. 파워윈도우 스위치 조명도 몇 개가 죽었는데 그것도 쓰는 데 지장 없어서 일단 그냥 두고 있네요.
그리고 7월 15일에 누적 주행거리 20만 km를 넘겼습니다. 작년 10월, 19만 1,789 km일 때 차를 넘겨 받았는데요. 차 사용 패턴을 바탕으로 예상했던 대로 됐습니다. 역대 제 명의로 등록했던 가운데 누적 주행거리 20만 km를 넘어선 첫 차가 됐네요.
차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주기적 점검과 소모품 교체 말고는 유지관리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지 않는 편입니다. 일단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정신줄을 놓아버리기 십상이라 일부러 적당히 거리를 두려는 탓이기도 하지만, 핑계라는 건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죠.

시기가 여름이라, 일단 에어컨 빵빵하게 잘 나오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에어컨 문제는 일상에서 올드카 타시는 분들이 고생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죠. 특히 신냉매(R-134)가 쓰이기 전이냐 후냐도 관리 편의성을 가릅니다. 전에 잠시 빌려 타던 대우 마티즈 디아트 ‘베를린 드 보야지’는 구냉매(R-12)를 쓰는 데다가 냉매가 새서 난감했지요. 블랙 레이븐은 신냉매를 쓰고 에어컨 시스템도 아직은 괜찮아 다행입니다.
최소한의 유지를 위한 관리만 하고 있다 보니, 차는 나아지는 것은 없고 안 좋아지는 것은 늘어납니다. 며칠 전부터 엔진룸 쪽에서 전에 없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는데요. 냉간 시동 후 스티어링 휠을 움직일 때 소음이 심해지고 엔진 회전수에 비례해 톤이 달라지는 걸 보면 파워 스티어링과 관련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옛날 차라 파워 스티어링이 유압식이고, 파워 스티어링 액 펌프는 벨트로 엔진에 연결되어 있죠.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고, 곧 서비스 센터에 가서 점검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곧 먼 곳에 다녀올 일이 있는데, 그 전에 겸사겸사 이것저것 살펴보고 바꿔야겠습니다. 운전석 뒤쪽 것이 조금씩 계속 공기가 빠지는 5년 묵은 타이어도 그렇고, 성능이 시원치 않은 와이퍼 블레이드도 바꾸고 말이죠. 올드 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숙제를 짊어지고 사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계속 관심을 갖고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새 차를 사서 쓸 때와는 성격이 다른 관심과 주의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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