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GM대우 사보 ‘Driving Innovation’에 실린 글입니다]

초등학교였는지, 중학교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지리 교과서에 우리나라를 ‘광물자원의 표본실’이라고 표현했던 글귀가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종류의 쓸 만 한 광물자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있기는 한데,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매장량이 많지가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이 자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얘기도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다.

전국 각지에 널려있는 광물자원들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자동차에도 워낙 다양한 종류의 소재들이 쓰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움직이는 소재의 표본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더라도 플랫폼을 비롯한 섀시와 보디 패널을 만드는 데 쓰이는 철을 들 수 있고, 그 자체도 여러 종류로 나뉘는 플라스틱도 들 수 있다. 창이나 거울에는 유리도 쓰이고, 내장재로는 가죽 같은 천연 소재도 쓰이고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물체의 전부인 줄 알기 때문에 쉽게 발견은 못하지만, 자동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고 듣다가 신기한 내용을 발견했다. 바로 자동차에도 귀금속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렸을 적, 우리 집 첫 차였던 K모 회사의 P모 차의 옆 유리창에 붙어있던 스티커가 그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 스티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無鉛 Unlea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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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요런 파란색 딱지가 붙어 있었다. 다만 오른쪽 일본어 표기 대신 한글 표기가 쓰여 있었다. 사진출처는 구글링

1991년에 중고로 구입한 우리 집 첫 차는 1987년에 만들어진 차였는데, 만들어질 때만 해도 국내에는 유연 휘발유와 무연 휘발유가 모두 팔리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유연’과 ‘무연’의 ‘연(鉛)연’자는 납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연 휘발유는 납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휘발유라는 얘기고, ‘무연’이라고 쓰인 스티커는 ‘이 차에는 꼭 무연 휘발유만 넣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때에는 한자도 잘 몰랐을 뿐더러 두 종류의 휘발유가 무슨 차이가 있고 왜 무연 휘발유만 넣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냥 궁금하기만 한 상태로 세월은 흐르고 흘러,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며 차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스티커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납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휘발유에 납이 들어갔으면 당연히 휘발유가 타서 생기는 배기가스에도 납이 섞여있을 것이고, 우리가 늘 숨 쉬는 공기 속에 납이 섞여 떠돌다가 몸속으로 들어와 쌓이면 우리 모두 다 같이 폐인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는 생각이 드니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 시점에서 ‘그럼 도대체 왜 수많은 자동차가 매일같이 쓰는 휘발유에 납을 넣었을까’하는 궁금증이 다시 생겼다. 이 궁금증을 푸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하지만 굼뜨긴 해도 궁금한 것은 풀고 넘어가야 속이 시원한지라, 결국 한참 뒤에서야 휘발유의 옥탄가를 높이기 위해 납을 첨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탄가가 높아야 엔진 노킹이 줄어든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노킹은 엔진에 해로운 현상(왜 그런지는 다른 글에 자세히)이니 당연히 옥탄가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의 건강보다 사람의 건강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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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탄가 높은 휘발유는 엔진 노킹을 줄인다. 환경오염뿐 아니라 엔진보호에도 도움을 준다. 사진출처는 stock.xchng

그렇다고 자동차가 내놓는 배기가스 중에서 납이 가장 치명적이고 해로운 물질인가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자료들을 찾아보니 휘발유를 쓰는 자동차의 배기가스의 성분 중 가장 골치 아픈 것으로 흔히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HC), 질소산화물(NOx)을 꼽고 있다. 일산화탄소야 예전에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 ‘이거 몹쓸 거네’라고 몸으로 느껴 알았던 것이고, 탄화수소는 광화학 스모그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질소산화물은 광화학 스모그와 함께 산성비의 원인이 된다. 납이야 무거워서 멀리 못 간다고 쳐도, 이런 성분들은 기체 상태로 멀리 퍼지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동네에서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 가급적 배기구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든 생각이 ‘야, 이거 납도 납이지만 만만찮게 겁나는구만’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자동차에는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의 ‘대기삼적’(大氣三敵)이 배기구 밖으로 나오는 것을 줄여주는 장치가 달려있었다. 흔히 3원 촉매라고도 하는 촉매변환기(catalytic converter)가 바로 그것. 물론 이 장치가 자동차 100년 역사를 채운 모든 차에 다 달린 것은 아니었다.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니까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서 1970년대 초반에 대기오염 발생을 줄이는 법을 만들었는데, 당시의 보통 자동차용 엔진으로는 도저히 이 법의 기준을 통과할 수가 없었단다. 다행히 똑똑한 과학자와 기술자 들이 ‘대기삼적’의 개과천선을 돕는 촉매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촉매변환기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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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쓰인 초기의 촉매변환기. 당시에는 3원 촉매가 아닌 2원 촉매였다고. ⓒGM Corp.

바로 이 촉매변환기 안에 들어가는 촉매들이 대부분 귀금속이다. 귀금속의 대명사는 뭐니뭐니해도 금이겠지만, 촉매로 쓰이는 귀금속은 백금(Pt), 파라듐(Pd), 로듐(Rh)이라는 것들이다. 이 금속이 촉매로 작용하면 ‘대기삼적’은 산화환원 과정을 거쳐서 일산화탄소가 이산화탄소로, 탄화수소가 물로, 질소산화물이 질소로 환골탈태 한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필자는 꽤 놀랐다.

백금이야 그래도 비교적 많이 들어본 금속인데, 파라듐과 로듐은 좀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또 다시 궁금증 해소 작업에 들어갔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파라듐과 로듐의 쓰임새를 알게 되었는데, 파라듐과 로듐은 백금과 함께 반지,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이고 있었다.

백금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화이트골드라는 소재가 있는데, 백금 값이 워낙 비싸니까 순금으로 만든 장신구에 도금을 해서 백금 같은 분위기를 낸 것이라고 한다. 이 화이트골드에서 순금에 입히는 도금 재료가 바로 파라듐과 로듐이다. 백금, 파라듐, 로듐 모두 눈에 보이는 특성이 비슷한 백금족 원소들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주요 귀금속의 도매시세를 살펴보니 백금은 1kg에 약 473만 원, 파라듐은 약 123만 원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2006년 기준). 금의 시세가 1kg에 약 1,827만 원(역시 2006년 기준)이니, 금에는 못 미쳐도 상당히 값진 금속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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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촉매변환기를 뜯어낸 모습. 굴러다니는 알갱이들마다 귀금속이 코팅되어 있다고? ⓒGM Corp.

그런데 이런 귀금속들이 납을 만나면 화학작용 때문에 촉매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유연 휘발유를 쓰면 촉매변환기를 달아도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무연 휘발유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이었다.

요즘에는 단면이 벌집무늬나 사각형으로 된 구조를 만들고 그 표면에 이들 귀금속을 코팅함으로써 배기가스와 촉매의 접촉면적을넓혀 배기가스 정화기능을 극대화하고 있다. 기능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촉매변환기에 쓰이는 귀금속 량을 줄일 수 있어 값도 낮출 수 있다. 최근에는 배터리나 전자제품에 귀금속이 많이 쓰이면서 점점 귀금속 값이 오르고 있어, 이런 귀금속을 대체할 새로운 소재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화학 시간에 주기율표도 제대로 못 외워 허구한 날 두드려 맞았던 녀석이 이런 글 쓰고 있는 것을 옛 화학 선생님이 보시면 기특해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