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12월 GM대우 사보 ‘Driving Innovation’에 실린 글입니다]

공장에서 갓 출고된 차는 화려한 색과 매끈한 광택으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아마도 새 차를 사면 유난히 뿌듯하고 차를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데에는 이런 느낌이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처럼 아름다운 차의 겉 부분, 즉 ‘껍질’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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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제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 요즘의 자동차 차체는 대부분 철판을 가공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자동차의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차 시대와 다름없이 나무로 만들어진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차의 속도가 빨라지고, 날씨나 속도에 관계없이 편하고 안전하게 차에 탄 사람을 지켜줄 수 있도록 ‘껍질’을 씌우게 되면서 철이 차의 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사실 건축에 철골구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선박과 자동차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산업에서 철강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1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자동차 차체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는 철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철을 가공해 만든 강판(鋼板)이다. 무겁고, 녹슬기 쉽고, 어디든 부딪히면 찌그러지기 쉬운 것이 철판인데 왜 자동차 메이커들은 철판을 좋아할까? 우선 철은 금속류 중에서 원료가 많고 가공과 재활용이 쉽다. 또한 엔진처럼 높은 온도에 버텨야 하는 부분과는 달리 차체 표면은 상대적으로 온도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에 환경변화에도 차체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값이 다른 소재에 비해 비교적 싸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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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자동차용으로 많이 쓰이는 강판은 연강판이다. 이것은 쇳덩어리를 길게 늘여 판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쇳덩어리를 늘이는 방법은 국수를 뽑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뜨거운 상태의 쇳덩어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밀대 사이로 집어넣으면, 밀대의 간격만큼의 두께로 판 모양이 되어 나온다. 물론 단번에 얇은 판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거쳐 필요한 두께의 판을 만든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판은 점점 식고 압력이 가해지면서 튼튼해진다.

연강판은 판을 만드는 공정에 따라 뜨거운 상태에서 가공하는 열연강판과 열연강판을 다시 씻고 가공해 만드는 냉연강판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차의 겉 부분에 많이 쓰이는 것은 표면이 매끄럽고 두께가 고른 냉연강판이다. 아무래도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열연강판보다는 냉연강판의 값이 더 비싸다. 상대적으로 표면이 거친 열연강판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차의 바닥과 뼈대 부분에 많이 쓰인다.

자동차용 냉연강판은 대부분 표면의 광택을 유지하고 녹이 덜 슬도록 하기 위해 도금처리가 되어 나온다. 강판에 도금되는 금속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특히 유명한 것은 아연(Zn)이다. 아연은 물과 이산화탄소에 닿으면 표면이 산화되면서 얇은 막이 생기는데, 이것이 막 안과 밖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 강판의 부식을 막아준다. 이처럼 녹이 잘 슬지 않는 아연 도금 강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줄곧 잘 쓰였던 철의 입지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한 계기는 1970년대를 강타한 석유파동이었다. 석유파동 이후 차의 경제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차를 가볍게 만들어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합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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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d Motor Company

사실 플라스틱의 역사는 무척 길어서 1930년대부터 자동차의 부품에 쓰이기 시작했고, 차체 표면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 나오는 차의 겉 부분에는 주로 앞뒤 범퍼와 차체 옆면의 몰딩 등 장식, 사이드 미러의 커버, 각종 램프의 커버 등에 플라스틱이 쓰인다.

플라스틱은 강판에 비해 상대적인 장점들이 많다. 소재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크기와 두께라면 강판보다 플라스틱이 훨씬 가볍다. 또한 적당히 탄력이 있어 웬만한 충격은 흡수하거나 튕겨내어 원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다. 문제는 강판만큼 큰 힘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고, 버틸 수 있는 한계보다 큰 힘을 받으면 휘어지는 강판과 달리 깨지거나 찢어지기 쉽다. 그리고 열을 가하면 녹거나 타버린다.

그래서 차체 겉 부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어도 뼈대를 이루는 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물론 유리섬유나 탄소섬유 등으로 보강해 차의 뼈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제작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승용차에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동차에는 그동안 튼튼하고 열에 잘 견디는 ABS 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 많이 쓰였지만, 최근에는 환경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재활용이 쉬운 폴리프로필렌(PP)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요즘 자동차의 범퍼로 많이 쓰이는 소재가 바로 폴리프로필렌이다.

범퍼 다음으로 차체에서 플라스틱이 많이 쓰이는 곳으로는 각종 램프의 덮개를 들 수 있다. 예전에는 유리가 주로 쓰였지만, 요즘에는 폴리카보네이트(PC)라는 종류의 플라스틱이 많이 쓰인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플라스틱 가운데에서도 투명도가 높은 편이고, 충격과 열에 강하며 전기가 잘 통하지 않고 불도 잘 붙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다. 이 소재는 1960년대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했을 때 비행사가 썼던 우주모의 소재로 쓰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식기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 방탄차에서 유리를 대신해 쓰이는 것도 바로 폴리카보네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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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d Motor Company

흥미로운 것은 폴리카보네이트가 무선조종 모형자동차(RC카)의 차체모양 껍질의 소재로도 쓰인다는 점이다. RC카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두께 0.1mm 정도로 얇은 RC카 껍질은 찢어지지 않는 한 강한 충격을 받아도 원래 상태를 유지한다.

플라스틱은 고유의 성질 때문에 넓은 면적에는 잘 쓰이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철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알루미늄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차체 표면에 쓰이기 시작했다. 강판과 같은 두께의 알루미늄은 강판보다 40% 정도 가벼우면서도 60% 정도 더 튼튼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알루미늄은 철을 대체할 만큼 많이 쓰이지는 않고 있다. 철보다 알루미늄이 비싼 탓도 있지만, 철에 비해 다루기가 까다로운 것도 알루미늄이 널리 보급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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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da Motor Co., Ltd.

예를 들어 판과 판을 붙일 때, 강판은 간단히 전기나 가스로 용접을 하면 된다. 물론 알루미늄도 이처럼 용접을 할 수는 있지만, 철을 용접할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전기를 쓰든, 가스를 쓰든, 철보다 용접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으로는 구멍을 뚫어 볼트나 리벳으로 고정하거나 특수 접착제를 쓰는 방법이 있지만, 이런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용접만큼 깔끔하지가 않다. 게다가 다른 소재와 결합하는 방법은 훨씬 더 까다롭기 때문에 도어나 보닛처럼 덩어리 채로 결합할 수 있는 부품에 주로 쓰이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계속된다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들이 새롭게 자동차의 표면을 장식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철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 분명하다. 모 철강회사의 기업광고처럼 철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멈춰버릴지도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철이 없다면 지금 같은 자동차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