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GM대우 사내보 ‘고객사랑’에 실린 글입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상에 자동차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다. 좀 더 정확히는 독일의 기술자인 카를 벤츠(Karl Benz, 1844~1929)가 개발한 ‘파텐트 모토바겐'(Patent Motorwagen, 특허받은 자동차)이 독일 특허청으로부터 특허증을 받은 1886년 1월 29일이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라 할 수 있다.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필요한 서류들을 만들어 관청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벤츠가 독일 특허청에 설계도를 비롯한 서류들을 제출한 것은 이날보다 훨씬 전의 일이고, 이미 자동차를 만들어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특허를 신청했기 때문에 실제 첫 자동차가 만들어진 것은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벤츠가 ‘특허’라는 공인된 수단을 통해 자동차의 발명을 인정받기 이전에 스스로 움직이는 탈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765년 영국인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기을 발명한 이후 벤츠의 자동차가 등장할 때까지 기차, 선박 등에는 이미 증기기관이 폭넓게 쓰이고 있었다. 나아가 기술의 발전으로 18세기 중반에는 마차 크기의 탈것에도 쓸 수 있을 만큼 증기기관은 크기가 작아지고 성능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벤츠가 만든 자동차를 ‘첫 자동차’라고 말하는 것일까? 자동차 역사가들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움직이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사람이나 동물, 자연의 힘을 빌지 않고 기계적인 원리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동차’로 만들어진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벤츠의 자동차는 한 번 연료를 채우고 시동을 걸면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스스로 움직이는 첫 탈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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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벤츠의 첫 자동차는 단순히 마차에서 말 대신 엔진을 얹은 형태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성격의 탈 것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는다. 요즘의 자동차와는 달리 바퀴가 세 개였던 벤츠의 첫 자동차는, 쉽게 말하면 ‘달리는 의자’에 가까왔다. 앞에는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한 개의 바퀴가, 엔진을 사이에 두고 의자 양쪽에는 엔진의 힘에 의해 구르는 두 개의 바퀴가 달려 있었다.

마차는 여럿이 함께 타는 교통수단의 성격이 짙었지만, 벤츠의 첫 자동차는 운전자 혼자 타거나 많아야 두 명만 탈 수 있었다. 즉, 과거 말이나 노새같은 동물에 의존했던 개인적인 이동이 기계에 의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벤츠가 자동차를 발명한 것은 인간의 이동방법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벤츠의 첫 자동차에는 벤츠가 직접 개발한 배기량 958cc의 휘발유 엔진이 쓰였다. 배기량이 958cc이면 국내 경차기준에 따른 1.0리터급 엔진과 비슷하다. 요즘의 1.0리터급 엔진은 6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지만, 첫 자동차에 쓰인 엔진의 출력은 0.8마력에 불과했고 시속 16km 정도인 최고속도 역시 잘 달리는 말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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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붕도, 장식도 없이 쇠 파이프와 나무판으로 만든 가벼운 차체를 움직이게 하기에는 충분했고, ‘스스로 움직이는 탈것’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무엇보다도 큰 의미가 있었다. 벤츠는 특허를 따낸 데 이어 1886년 7월에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파텐트 모토바겐’의 시운전을 해 첫 자동차 개발자라는 명예와 함께 처음으로 자동차를 운전한 사람, 그리고 처음으로 자동차 관련 이벤트를 펼친 사람이 되는 기쁨도 누렸다.

벤츠가 역사에 길이 남을 첫 자동차를 개발하던 그 즈음, 이웃한 동네에서는 두 명의 기술자가 새로운 기술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벤츠와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고틀리프 다임러(Gotlieb Daimler, 1834~1900)와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 1846~1929)였다.

다임러가 세운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두 사람은 크기가 작으면서 효율이 높고 성능이 뛰어난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1885년 말에 첫 휘발유 엔진을 완성했다. 그들은 이 엔진의 쓰임새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작은 크기를 강조하려는 뜻에서 자전거에 얹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1885년 11월에 엔진을 얹은 자전거가 만들어졌고 마이바흐가 직접 ‘스스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타고 시운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들은 생각하지도 못했겠지만, 나중에 사람들은 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모터사이클의 원조로 여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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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임러와 마이바흐는 이에 그치지 않고 1886년 3월에는 마차를 개조해, 엔진을 얹은 세계 첫 네바퀴 자동차를 개발했다. 이후 다임러는 마이바흐의 뛰어난 개발능력에 힘입어 자동차 뿐 아니라 선박, 철도차량, 비행선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 다임러의 이름이 쓰인 엔진을 쓰기 시작했다. 다임러 엔진은 성능이 뛰어나고 튼튼해, 독일 뿐 아니라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때마침 유럽 각국에서는 자동차 생산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다임러 엔진을 사다 쓴 메이커들도 적지 않았다.

이 즈음 다임러는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엔진으로 땅과 물, 하늘의 교통수단을 모두 석권하겠다는 뜻을 품었고, 그의 뜻이 전해져 이후 세 개의 꼭지점이 있는 별 모양의 심볼마크가 만들어졌다. 이 심볼마크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모양이 바뀌었고, 1926년 다임러와 벤츠의 회사가 합병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회사의 차에 쓰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금 메르세데스 벤츠에 쓰이는 세 꼭지 별 마크의 뿌리다.

이 메르세데스 벤츠를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벤츠라고 부르지만, 외국에서는 오히려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으로 더 잘 불리운다. 다임러와 벤츠의 회사가 합병되었다면 다임러 벤츠라야 할텐데,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여기에는 또 한 명의 큰 인물인 에밀 옐리넥(Emil Jellinek, 1853~1913)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 출신 사업가로 프랑스 니스에 살고 있던 그는 신기술에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특히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자동차의 속도와 힘에 매료되었다. 부유층의 취미로 저변이 넓어지던 자동차 경주에도 관심이 깊어, 니스 부근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를 통해 다임러 차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동차를 흥미거리나 스포츠의 도구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의 사업가로의 본능은 자동차 판매 역시 훌륭한 수익꺼리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했다. 옐리넥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36대의 차를 다임러 회사에 주문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크기와 성능,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주문한 차를 자신의 딸 이름을 따 ‘메르세데스'(Mercedes)라는 브랜드를 붙여 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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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리넥의 요구는 창업자 다임러의 사망으로 어려움을 겪던 다임러 회사에게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필요하다고 기대하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옐리넥이 판매를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에 다임러 회사는 곧바로 설계와 양산에 들어갔다. 다임러의 뒤를 이어 개발을 책임진 마이바흐는 당시로는 첨단 기술을 한 데 담아내 뛰어난 차를 만들어 냈다. 예상대로 다임러 회사가 만든 ‘메르세데스’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고, 옐리넥과 다임러 회사는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은 ‘뛰어난 차, 잘 만든 차’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 다임러 차의 브랜드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