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쓴 원고로, 어느 곳에 실린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전쟁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범죄행위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져 왔고, 그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대부분 발전의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전쟁 속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차가 있다. 네바퀴굴림 다목적차의 대명사인 지프(Jeep)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요즘도 흔히 네바퀴 굴림 다목적 차를 ‘찝차’라고 부를 만큼 지프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지프가 태어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다. 당시 미국 육군은 정찰용 차로 모터사이클과 포드 모델 T를 개조한 차를 썼다. 그러나 모터사이클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고, 포드 모델 T는 새로운 전장에서 활용하기에 너무 낡았다. 이에 따라 미국 육군은 1940년 6월에 자동차 메이커들에게 새로운 ‘경 정찰용 차’를 제안해 달라는 요청을 보내고 135개 자동차 회사를 대상으로 생산과 개발에 대한 입찰에 참여토록 했다.

육군이 요청한 ‘경 정찰용 차’의 설계 조건은 270kg 이상의 적재 능력, 0.9m 미만의 높이, 시속 5km에서 80km까지 부드럽게 달릴 수 있는 엔진, 직사각형의 보디, 접을 수 있는 앞 유리와 네바퀴 굴림 장치, 3명이 탈 수 있는 좌석, 590kg 미만인 총 차체 무게 등이었다. 이들 요구조건은 수송기와 수송선으로 쉽게 나를 수 있는 것은 물론 공중에서 낙하산으로 투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1 Jeep Willys MA

하지만 육군의 입찰에 참여한 것은 윌리스 오버랜드(Willys-Overland)와 아메리칸 밴텀(American Bantam), 그리고 포드(Ford)의 세 회사 뿐이었다. 육군의 요구조건이 너무 까다로웠을 뿐 아니라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첫 번째 시험용 차를 내놓기까지는 49일, 육군의 평가를 위해 70대의 시험용 차를 납품하기까지는 75일의 여유 밖에 없었다. 결국 경쟁입찰에서 가장 낮은 값을 써 내어 생산자격을 따낸 것은 윌리스 오버랜드였지만, 시험용 차 납품기안에 맞춘 회사는 아메리칸 밴텀 뿐이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육군은 입찰조건을 조금 바꾸어 윌리스 오버랜드, 아메리칸 밴텀, 포드로부터 시험용 차를 받아 평가하기로 결정했다.

1940년 10월이 되어 세 회사는 시험용 차와 설계도를 제시했고, 납품된 70대의 평가는 1941년 3월에 이루어졌다. 다양한 시험과 평가를 거쳐 육군은 윌리스 모델을 새로운 ‘경 정찰용 차’의 기본 차로 정했다. 아메리칸 밴텀은 육군이 요구하는 생산대수를 납품할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생산회사 선정에서는 빠지게 되었다. ‘경 정찰용 차’의 규격이 정해지자 윌리스 오버랜드는 곧바로 생산을 시작했다.

1944 Jeep Willys MB

그러나 1차 납품이 이루어질 무렵, 미국 정부는 자동차 회사 한 곳에서만 이 차를 생산하는 것은 전쟁 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적의 테러에 취약하다고 판단해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도 이 차를 생산하도록 했다. 물론 설계는 다르더라도 주요 부품은 윌리스 오버랜드의 것과 바꾸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랐다. 여기에 응한 회사는 포드 뿐이었는데, 실제로 미국 정부의 요구에 맞춰 많은 차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도 포드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실제 전장에 투입된 차는 육군이 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윌리스 MB와 윌리스 MB의 설계를 바탕으로 포드가 생산한 포드 GPW였다. 그러나 군인들은 물론 민간인들에게도 이 차는 윌리스 MB나 포드 GPW보다 ‘지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지프’라는 이름이 쓰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정확한 근거가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문헌에서도 어렴풋이 그 근원을 두 가지로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첫 번째는 미국 육군에서 이 차를 ‘일반적인 용도의 차’라는 뜻의 ‘General Purpose’로 불렀기 때문에, 그 머릿글자인 ‘GP’가 부르기 쉬운 형태로 발전된 것이라는 의견이다. 두 번째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 있던 만화 ‘뽀빠이'(Popeye)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유진 더 지프(Eugene the Jeep)’에서 유래했다는 의견이다. 공식적으로 붙여진 이름은 아니지만, 미군들 사이에서 별명처럼 불리던 지프라는 이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41년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실린 지프의 사진설명에 활자화되면서부터였다.

1941-Willys_MB-1

이후 지프는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 허시 초컬릿과 더불어 미군과 연합군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함께 하면서 미국의 상징이자 네바퀴굴림 다목적차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원래 지프는 세 명만 탈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전장에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다양하게 개조되어, 무전기를 달면 작전지휘차로, 총을 달면 정찰 및 전투용차로, 들것을 달면 구급차로 바뀌었다. 미군들은 지프에 많은 애착을 느껴, 전투기나 폭격기 조종사들이 자신의 비행기에 애칭을 붙이듯 자신의 차에 별명을 붙여 차에 이름을 써 넣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지프에 견줄 수 있는 차로는 독일군의 타입 82 퀴벨바겐(Kuebelwagen)이 있었다. 이 차는 폭스바겐 비틀의 뼈대 위에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새로운 차체를 얹었기 때문에, 겉모습을 빼면 폭스바겐 비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차의 독특한 각진 차체는 지프 이상으로 눈에 띄었지만, 생산대수는 지프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산된 퀴벨바겐은 5만 대가 조금 넘었지만, 지프는 그 10배가 넘는 65만여 대가 만들어졌다. 이 중에 윌리스 오버랜드가 만든 것이 36만여 대, 포드가 만든 것이 28만여 대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곧바로 터진 한국전쟁에도 투입되어 우리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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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는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네바퀴굴림 다목적차 개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지프는 미국의 전쟁물자 공여계획에 따라 영국과 구 소련 등 다른 연합국으로 보내졌는데, 이 때 제공된 지프의 설계를 바탕으로 영국에서는 랜드로버(Land Rover)를, 구 소련에서는 GAZ-69 군용 소형차를 만들었다. 또한 전쟁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윌리스 오버랜드와 계약을 맺고 지프를 생산했는데, 여기에는 인도,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도 포함되었다. 1969년 신진자동차가 윌리스 오버랜드를 인수한 AMC와 계약을 맺어 국내에서 지프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978년 신진자동차가 당시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던 리비아에 지프를 수출한 것이 문제가 되어 AMC와의 계약이 깨졌고, 지프라는 상표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국산 지프는 이후 ‘코란도’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주인이 동아자동차, 거화를 거쳐 쌍용에 이르면서도 이어져 1969년 당시의 차체가 거의 바뀌지 않은 채로 1996년까지 만들어졌다. 오리지널 지프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어 현재 미국 크라이슬러의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프의 상징인 세로 구멍 7개가 뚫린 라디에이터 그릴은 오리지널 지프인 윌리스 MB에 처음 쓰인 것이 아니라, 포드 GPW 모델에서 쓰였다는 점이다. 이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지프에서 상표권 등록을 해 놓아 다른 메이커들은 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