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sonryu.net 오리지널 콘텐츠입니다. ]

1930년대 일본의 자동차 시장은 1923년 간토대지진 이후 교통수요를 노리고 1920년대 후반에 일본에 진출한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 생산된 포드와 시보레(GM)는 당시 영세한 수준으로 소량생산되던 일본차와는 가격이나 내구성 면에서 모두 뛰어났기 때문에, 승용차 구매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택시와 전세자동차 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즈음, 도요다 자동직기(豊田自動織機)의 도요다 키이치로(豊田喜一郎)는 일본 실정에 맞는 대중형 자동차를 일본인의 손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독자적으로 자동차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발명왕으로 잘 알려진 도요다 자동직기 창업자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의 장남인 그는 1930년부터 자동차용 소형 엔진 연구를 시작했다. 엔진 개발에는 도요다 자동직기가 갖고 있던 주조와 기계가공 기술 등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관련 기술을 자동차용 엔진 개발에 바로 활용할 수는 없었다. 결국 기본 엔진 설계는 1933년형 시보레의 직렬 6기통 엔진을 참고해 이루어졌고, 1934년에 이르러서야 첫 결실인 A형 엔진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한편 차체는 모델 변경을 자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시로는 첨단 디자인과 설계를 쓰기로 했다.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1934년 미국에서 선보인 크라이슬러/드소토 에어플로(Airflow)였다. 바퀴가 차체 밖으로 돌출되고 차체 앞부분에 수직으로 라디에이터가 솟아 있던 당시의 일반적인 차들과 달리, 에어플로는 차체가 바퀴를 감싸고 라디에이터도 차체 안으로 집어 넣어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모습의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을 처음으로 양산차에 선보였다.

1936-Toyota_Type_AA-1

아울러 당시까지만 해도 목제 뼈대 위에 철제 차체를 얹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차들이 많았지만, 에어플로는 뼈대에서 차체까지 모두 철제로 만들어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이처럼 앞선 설계의 에어플로의 개념을 받아들여, 도요다는 당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시도하지 못한 디자인과 설계의 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방식의 자동차 생산은 일본에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대량생산이 필요 없는 단계였고 인건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대형 프레스로 생산하는 부품 일부를 사람의 손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생산비용 절감을 고려한 설계도 처음부터 이루어졌다. 도요다는 승용차와 함께 당시 비교적 수요가 많았던 4~5톤급 트럭도 함께 개발을 시작했는데, 엔진을 비롯한 여러 부품을 승용차와 트럭에 함께 쓰도록 설계했다. 또한 승용차의 도어는 앞뒤 대칭형으로 설계해, 두 개의 금형으로 4개의 도어를 만들어내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당시로는 앞선 방식의 유압식 브레이크를 쓴 점이나 일본차로는 처음으로 변속기에 변속을 쉽게 해 주는 싱크로메시 기구를 더한 것 등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35년 5월에 A1이라는 이름으로 3대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고, 양산을 위한 테스트와 개선을 거쳐 완성된 도요다의 첫 승용차 AA형과 양산 트럭 GA형이 1936년 9월 14일에 도쿄의 상공장려관에서 열린 ‘국산 도요다 대중차 완성기념 전람회’를 통해 발표되었다. 3일 동안 열린 이 행사에는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가, 당시 일본에서의 국산차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보여주었다. 도요다는 발표와 함께 정부의 자동차제조사업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하게 된다.

5.1.2

그러나 판매에 있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품질이나 가격경쟁력에 있어서는 여전히 당시 일본에서 팔리던 포드와 시보레 등 미국 메이커의 현지생산차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결국 AA형을 주로 구입한 것은 도요타와 관련된 회사나 관공서, 일본 육군 등에 한정되었다. AA형은 1943년에 후속 모델인 AC형에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파생 모델인 AB형을 합쳐 6년여 동안 모두 1,404대만 생산되었다.

하지만 도요다 AA형은 지금 세계 제1의 자동차 메이커로 떠오른 토요타의 첫 승용차라는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토요타 최고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생산합리화와 독자적 기술개발의 뿌리가 되어, 토요타가 자동차 생산에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도요다는 AA형과 GA형 자동차 생산을 계기로 1937년에 개발의 모태가 된 도요다 자동직기에서 분리해 지금의 토요타의 시발점인 토요타자동차공업주식회사(トヨタ自動車工業株式会社)으로 독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