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 모리스 미니-마이너

[ 2010년 5월 Carmily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해 정리한 글입니다. ]

널리 사랑받은 20세기의 대중차들이 대부분 전쟁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듯이, 미니도 전쟁의 여파로 태어났다. 미니 개발의 시발점이 된 것은 1956년에 벌어진 제2차 중동전쟁이었다. 당시 영국은 수에즈 운하가 봉쇄되어 중동지역으로부터의 석유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따라 자동차의 연료로 쓰이는 석유값이 치솟았고, 때마침 독일 등 유럽 본토에서 스쿠터 엔진을 쓴 초소형차인 버블카(Bubble car)들이 영국 자동차 시장을 휘저어 놓았다. 이것이 못마땅했던 영국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BMC의 총수 레오나드 로드는 급히 ‘버블카를 몰아낼 수 있는 제대로 만든 소형차’의 개발에 나섰다. 그는 BMC의 히트작인 모리스 마이너를 개발하고 BMC를 떠났던 알렉 이시고니스를 다시 영입해 새로운 소형차의 설계를 맡겼다.

이시고니스는 처음부터 많은 한계를 안고 설계를 시작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양산할 수 있어야 했고, 개발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엔진을 비롯해 많은 부분을 최대한 이미 개발되어 있는 것을 써야 했다. 아울러 길이 3m, 너비 1.2m의 작은 차체에 어른 4명이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는 실내공간을 갖춰야 했다.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시고니스의 천재성이 빛을 냈다. 우선 엔진을 차체에 가로로 배치하고 앞바퀴를 굴리도록 하고 변속기를 엔진 아래쪽에 놓고 라디에이터를 엔진룸 측면으로 배치했다. 이렇게 해서 엔진룸이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 바퀴를 최대한 차체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한편 서스펜션도 스프링 대신 고무 뿔을 이용한 작고 간단한 것을 써서 실내 공간을 최대한 넓혔다. 그리고 편의장비라고 할 만한 것들도 대부분 없애 가볍고 간단한 차를 만들어냈다.

1957년 3월에 개발이 승인된 지 2년 5개월 만인 1959년 8월 26일부터 미니는 영국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출시에 앞서 미니를 타본 언론인들이 미니에 대해 상당히 좋은 평을 했기 때문에 BMC와 이시고니스는 미니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낯선 디자인과 개념의 새로운 미니에 소비자들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196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독특한 스타일에 관심을 가진 유명인사들이 구입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미니가 활약한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왠지 미니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터스포츠 무대였고, 미니의 숨은 능력을 이끌어내어 빛을 보게 한 이는 경주차 제작자인 존 쿠퍼였다.

그는 미니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주행특성이 탄탄하고 핸들링이 민첩한 것에 주목했다. 이런 특징은 마치 카트와 비슷해, 경주차로 쓰기에도 손색없는 것이었다. 원래 미니를 설계한 이시고니스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실내공간을 극대화하고 서스펜션을 단순화한 설계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기본기가 마련된 미니를 더욱 완벽한 경주차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층 강력한 엔진이었고, 쿠퍼는 BMC를 찾아가 고성능 모델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미니가 대중차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랐던 이시고니스의 반대에도 BMC는 쿠퍼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미니 쿠퍼에 이어 한층 더 성능을 높인 미니 쿠퍼 S가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본격적인 경주차와 비교해 부족한 점은 많았지만, 미니는 날랜 달리기로 승부를 걸었다. 무엇보다 미니의 싼 값은 경주에 출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훨씬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미니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일반 승용차를 개조해 출전하는 랠리 경주였다. 미니가 해당되는 1,000cc 미만 클래스 경주부터 휩쓸기 시작한 미니는 이내 배기량이 큰 엔진을 얹은 쿠퍼 S가 등장하면서 더 큰 차들의 영역도 넘보기 시작했다. 미니의 이름을 드높인 경주로는 지금까지도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경주인 몬테 카를로 랠리를 꼽을 수 있다. 이 경주에서 미니는 1964년과 1965년, 그리고 1967년에 종합우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드라이버의 뛰어난 기량 덕도 보았지만, 드라이버들은 한결같이 미니의 날카로운 조향감각과 균형잡힌 핸들링 등 날랜 몸놀림을 칭송했다.

1960년대 영국 자동차 산업이 쇠락하기 시작하고, 배기가스 규제와 안전관련 법규의 강화라는 악재 속에서 미니는 생산주체가 여러 차례 바뀌며 근근이 명맥을 이었다. 1971년을 정점으로 미니의 생산과 판매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후속 모델로 발전하기에는 자동차 메이커의 투자여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1999년에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많은 부분이 보완되었으면서도 기본설계는 고스란히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