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8월 Carmily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해 정리한 글입니다. ]

BMW 로드스터의 역사는 1934년에 나온 315/1로부터 시작되지만, 여러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스포티한 BMW 이미지의 시발점이 된 328 로드스터 이후로 별다른 후속작이 뒤를 잇지 못했다. 물론 그 이유는 BMW 내적인 문제보다 제2차 세계대전과 전쟁 이후의 어려움에 있었다. BMW가 겨우 한숨 돌리기 시작한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BMW는 328 로드스터가 만든 BMW의 스포티한 이미지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그 기회 역시 BMW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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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의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풍요를 한껏 누리고 있던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유럽 메이커들의 명운을 쥐고 있던 이는 폭스바겐 비틀을 미국에 수입해 재미를 보기 시작한 맥스 호프만이었다. 그는 라곤다와 애스턴 마틴, 재규어는 물론 포르쉐와 메르세데스-벤츠 등의 미국내 독점 수입권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브랜드의 차를 많이 팔았던 만큼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로 하여금 300SL을 개발하도록 부추긴 것도, 포르쉐가 방패 모양 엠블럼을 만들도록 한 것도 그였다.

그가 취급하는 고급 고성능 스포츠카들도 인기가 높았지만, MG나 트라이엄프 같은 브랜드들의 저가형 로드스터도 적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호프만은 그가 취급하는 고급 스포츠카들과 MG나 트라이엄프 같은 저가형 스포츠카들 사이의 틈새시장을 의식했고, 그 공백을 채울 수 있는 대안으로 BMW를 떠올렸다. 이내 호프만은 적당한 크기와 성능을 지닌 2인승 로드스터를 BMW에 주문하기에 이른다. BMW 역시 미국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격 경쟁력만 충분하다면 1년에 몇 천 대는 팔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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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의 BMW는 별도의 새 모델을 개발할 만한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1952년에 내놓은 전후 첫 V8 엔진 모델인 501 및 502의 판매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501과 502로 생기는 손해를 버블카 이세타의 판매로 겨우 메워가며 회사가 운영되는 상태였다. 그래서 호프만의 제안으로 개발을 시작한 새 모델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미 생산 중인 차의 부품들을 대폭 활용하도록 해, 개발비용과 기간을 단축시키도록 했다. 판매만 잘 된다면 새 로드스터는 BMW가 재규어나 메르세데스-벤츠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호프만이 BMW의 로드스터에서 중요시한 것은 디자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카는 뛰어난 달리기 성능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디자인도 갖춰야 했다. BMW는 먼저 내부에서 만들어진 디자인 안을 호프만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호프만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내어 BMW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알브레흐트 폰 괴르츠(Albrecht von Goertz)라는 디자이너를 찾아낸 것이다.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의 제자인 그는 호프만의 주선으로 BMW 경영진에게 스포츠카 스케치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곧 BMW의 새 로드스터인 507의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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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겨 다급하게 개발되기는 했지만, BMW 507은 많은 이들로부터 ‘BMW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라는 평을 듣는다. 195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디자인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스포츠카의 전형인 롱 노즈 숏 데크 스타일을 바탕으로 유연하면서도 조화로운 곡면이 어우러진 차체는 역동성과 우아함을 고루 갖추고 있다. 원래 위아래로 길게 뻗었던 BMW 고유의 키드니 그릴은 낮게 깔린 차체 덕분에 옆으로 넓게 펼쳐졌고, 단순하고 간결한 뒷부분에는 강렬한 크롬 장식이 더해져 차의 분위기를 살렸다. 알루미늄 구조의 차체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생산되었고, V8 엔진 역시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었다. 최고출력 150마력으로 최고시속 190~220km까지 낼 수 있었던 507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알랭 들롱 등 유명인들이 구입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507은 성공적인 차는 아니었다. 생산설비 확충에 큰 비용이 들었던 탓에 값이 치솟아, 메르세데스-벤츠 300SL이나 포르쉐 356보다 비싸졌다. 더욱이 메르세데스-벤츠나 포르쉐가 지닌 모터스포츠의 후광은 507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507의 판매는 예상을 훨씬 밑돌았고, 1956년부터 1959년까지 3년여 동안 생산된 507은 겨우 254대에 불과했다. 투자한 비용의 회수에 실패한 BMW는 마침내 파산 일보직전에 이르러 507의 생산을 중단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