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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카 2010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국내 승용차 판매의 중심은 소형차에서 준중형차, 다시 중형차로 옮겨져 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가끔씩 준대형차나 경차에 내어준 적은 있어도, 모델별 판매 1위 자리는 차급별로 따지면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중형차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중형차가 승용차의 가치를 따지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값의 싸고 비쌈, 성능의 강하고 약함, 공간의 크고 작음, 편의장비의 많고 적음. 이 모든 것들의 잣대가 중형차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 잣대는 대개 현대 쏘나타였다.

현대차가 이번에 새 아반떼를 내놓으며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세상에 없던 중형 컴팩트’다. 새 아반떼의 특징을 간단히 표현하기 위해 참 많은 고민을 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솔직히 처음 듣자마자 요즘 말로 ‘빵’ 터졌다. 새로 개발했으니 세상에 없던 차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뜻 생각해도 ‘중형 컴팩트(compact)’라는 말은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않아도, 그냥 웃음부터 나오고 만다.

중형차 못지않은 성능과 공간, 편의장비를 갖춘 차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중형이라는 말을 쓴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웃기는 것은 앞뒤 다 잘라버리고 덜컥 중형이라는 말만 써 놓은 것이고, 더 웃기는 뒤에 ‘컴팩트’라는 말을 붙인 데에 있다.

compact가 ‘소형의’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라는 것은 초등학생 정도면 다 안다. 해외 시장에서 아반떼가 속하는 compact class를 의식해 갖다 붙인 말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소형차쯤 되겠지만, 생각해 보라. ‘중형 소형차’라는 표현은 정말 코미디다. 영어를 쓰면 뭔가 달라 보이고, 있어 보이겠지. 그런 생각으로 좀 덜 웃기게 포장한 것이 ‘중형 컴팩트’다.

어떻게든 지금은 ‘넘사벽’이 된 중형차를 따라잡고 싶고, 중형차와 비교해 부족해 보이기 싫은 것이 아반떼의 콤플렉스이고, 준중형차의 콤플렉스다. ‘중형 컴팩트’라는 말은 그런 콤플렉스를 분명히 보여주는 유치한 방식의 표현이다. ‘소형차이긴 하지만 중형차나 다름없다’는 말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 ‘돈은 받았지만 뇌물은 아니다’라는 식의 표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것이 내수시장 점유율 1위의 자동차 기업이 간판 차종에 갖다 붙이는 캐치프레이즈다. 그래봐야 쏘나타는 쏘나타고 아반떼는 아반떼다. 쏘나타 살 사람은 쏘나타 사고, 아반떼 살 사람은 아반떼 산다. 물론 준중형차에 중형차 운운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 기아가 세피아 II를 내놓으며 ‘중형처럼 편안한 차’라고 했으니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2년 사이에 바뀐 거라곤 ‘컴팩트’라는 말 뿐이다.

그래도 고민의 결과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일부 언론의 기사를 보면 중형 콤팩트라는 말보다 더 기가 막힌다. ‘중형 컴팩트라는 신개념을 알리며.’ 우리가 꼭 그런 걸 알아야 하나? ‘중형 컴팩트라는 신개념을 도입한.’ 준중형차와 중형차 사이에 ‘중형 컴팩트’라는 차급이 새로 생겼나? ‘신개념 중형 컴팩트로 재탄생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가 아닌 누가 그런 평가를 했단 말인가?

새 아반떼 출시와 함께 세상에 없던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고, 세상에 없던 코미디가 난무하고 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반가워해야 할 일일까?  그리고 사족이지만 compact의 올바른 한글표기는 ‘콤팩트’다. 젠장. 보도자료 그대로 옮겨 적는 언론이 너무 많으니, 보도자료 쓰는 사람들부터 한글공부 다시 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