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0년 11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인터넷의 발전 때문에 빛이 바래가고는 있지만, 그동안 자동차 잡지는 자동차 문화를 살찌우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해 왔다. <모터 트렌드> 독자들 가운데에도 잡지를 통해 자동차와 관련된 꿈을 키운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필자가 일찌감치 자동차 평론가가 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것도 자동차 잡지였다. 하지만 인생 경험을 웬만큼 쌓고 난 40대 후반 이후에나 하려고 했던 일을 30대의 나이(따지고 보면 이미 20대에 시작하긴 했다)에 시작하게 된 데에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 잡지를 직접 만들었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자동차 잡지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잡지의 시발점이 된 것은 ‘자동차 매니아와 일반인들이 모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웹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매니아와 일반인들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알고 보면 차는 참 재미있고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아이템인데,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차는 그저 늘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차가 주는 재미를 느끼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과 차에 대한 얘기를 편하고 즐겁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방법으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르고 편한 방법이 웹진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금으로 치면 자동차 전문 블로거 정도를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몇몇 매체에 필자로서 글을 쓰면서 생기는 수입이면 최소한의 운영비는 건질 수 있었고, 웹진이 잘 되어 광고를 유치할 수 있다면 먹고 살기에는 큰 부담은 없으리라는 계산이 있었다. 여기에 당시 절친하던 선배의 조언과 도움으로 자동차 관련 취미용품을 주로 다루는 인터넷 쇼핑몰을 더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일하는 사람을 늘리면서 회사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만족스러운 수익을 올리지 못하자, 선배는 종이로 된 자동차 잡지를 내놓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솔직히 위험한 도박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회사 내에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잡지의 속성과 잡지 세계의 관행을 전혀 몰랐고, 잡지 및 광고 영업이나 운영에 대한 지식도 전무한 상태였다. 하지만 자금을 끌어올 테니 책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믿고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몸을 던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웹진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자동차 전문 월간지 ‘비테스(Vitesse)’가 만들어졌다. 비테스 덕분에 필자는 당시 최연소 자동차 전문지 편집장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은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잡지 제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맨 땅에 헤딩’의 반복이었다. 쟁쟁한 필자들을 모시는 일, 취재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은 물론이고 취재와 기사작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일 조차도 새롭고 생소한 일이었다. 차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매체를 대변해 글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구성원들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아무 배경도 없는 무명의 자동차 잡지가 이미 터를 닦아놓고 수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기성 잡지들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부터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더 그랬지만, 당시까지 다른 자동차 전문지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디자인과 사진, 기사 구성과 함께 문화 섹션을 제외한 모든 내용을 온전히 자동차에 대한 내용과 자동차를 즐기는 관점의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순수했기에, 혹은 무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7개월 만에 잡지 시장에서 사라지기는 했지만, 비테스 제작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잡지 제작 시스템에 대해 배우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다. 자동차 잡지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라는 존재가 내는 가느다란 빛을 화려한 스펙트럼으로 변화시키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동차 잡지는 자동차 업계의 현상과 흐름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안겨다 준다. 잡지 제작에 제대로 빠져든다면,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의 깊이를 얻을 수 있다.

비테스 발행 중단 이후 2년 반 동안, 필자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운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이야말로 마음에 가장 깊고 굵게 새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제는 자동차를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 살기 힘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 잡지를 한 번 만들어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달라진다. 그래서 필자는 아직도 자동차 저널리즘 세계에 몸담고 있고, 이 세계에는 필자 같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