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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콰이어 2011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7년 전, 4박5일 동안의 중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베이징 시내에서 승합차를 타고 서우두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소통량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특별히 길이 막힐 이유는 없었는데, 공항 입구의 입체교차로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앞서 가던 차들의 꽁무니에 갑자기 빨간 브레이크등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타고 있던 차도 속도를 줄였고, 앞차들의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진행하다 보니 이내 정체의 원인이 드러났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잘못 잡은 차 한 대가 아무렇지 않게 후진을 하고 있었다. 앞선 정체 길이를 생각해 보면 줄잡아 200~300m는 뒷걸음질 쳐 온 그 차는 앞으로도 그만큼 더 후진을 할 요량이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경적소리 한 번 들을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은 내 기준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그보다 몇 해 전, 첫 중국 관광을 위해 도착한 상하이에서 본 광경에 비하면 그리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처음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오는 길에, 곧게 뻗은 인도에 택시 한 대가 비스듬히 서 있고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버스가 움직이며 천천히 모습이 드러난 택시 앞에는 피를 한 됫박은 쏟은 사람이 큰 대자로 누워 있었다. 도무지 교통사고가 날 이유가 없어 보이는 곳에서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어쨌든 그 때의 그 소름끼치는 광경이 중국이 나에게 남긴 첫 인상이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역시 떼놈들은…’하며 혀를 끌끌 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중국에 갔다 온 후 아주 잠깐 동안은 그랬으니까. 베이징 서우두 공항 입구에 갑작스런 정체를 만들었던 뜬금없는 후진족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국내에서 처음 말도 안 되게 후진하는 차를 목격한 것은 베이징 출장에서 돌아온 후 3년 쯤 지난 뒤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차는 점점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이에나가 따로 없는 견인차 얘기가 아니다. 주행속도가 느린 뒷골목이나 도심지에서 짧은 거리를 후진하는 차들 얘기도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분기점을 놓친 차들이 수백 미터씩 후진하는 모습을 본 것만 수십 차례에 이른다. 중국이 경제대국이 되면서 ‘중국을 배우자’는 열풍이 운전문화에도 불어 닥쳤나 의심할 지경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난데없이 차가 인도로 뛰어들어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뉴스도 수시로 나오고 있다. 조금 일찍 살만해 졌다고 중국을 대놓고 무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길바닥은 오히려 점점 더 중국의 후진적 모습과 닮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자동차가 많지 않고 운전을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자동차의 결함이나 열악한 교통 시스템이 교통사고를 부추겼지만, 최소한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런 시기는 거의 지나갔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자동차나 교통체계보다는 도무지 긴장을 하지 않고 운전하는 ‘사람’이 문제다. 쉽게 말해 정신 줄 놓고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동변속기를 비롯해 운전을 쉽고 편하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운전 자체가 쉬워졌고, 운전면허를 따는 것도 돈과 시간만 투자하면 별로 어렵지 않다. 손발만 슬쩍 까딱거리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누가 운전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제 운전을 별다른 책임감이나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 그저 이동을 돕는 습관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운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길거리에서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런 무의식적인 운전이 끊임없이 트러블을 낳고, 한국의 길거리를 우리가 늘 하수로 보는 중국의 모습과 닮은꼴로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나아가 위에 계신 분들조차 이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의심이 든다. 최근에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며 면허시험 절차를 저렴하게 뜯어고쳐 보라는 윗분의 지시에 행정안전부에서 ‘기능시험 폐지’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우리 국민들의 실제 운전능력은 도로주행시험이면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따지면 필기시험도 낭비다. 필기시험 항목의 대부분은 도로교통법 내용을 이리저리 비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법은 다 같이 편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인 틀을 마련해 놓은 것이고, 그 틀은 크게 보면 상식과 양심의 기준을 글로 적어놓은 것이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서고,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가면 된다. 느린 차는 빠른 차에게 길을 양보하고, 방향을 바꿀 때에는 다른 차에게 ‘나 움직이니까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내면 된다.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험한 운전은 하면 안 된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거나, 다 같이 앞으로 달리는 길에서 후진하거나 거꾸로 달리면 안 되는 이유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과 양심을 갖고 있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한편에서는 신호등 없는 회전식 교차로, 이른바 로터리가 부활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신호대기 때마다 엔진 공회전을 해야 하는 자동차들의 연료낭비와 배기가스 배출을 줄여 녹색교통을 실현하고 원활한 소통을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로터리는 참 합리적인 교통시설이다. 알아서 들어갔다가 알아서 빠져 나오는 구조에서 타이밍 놓쳐서 빠져야 할 곳을 놓치면 빙빙 돌다가 적당한 때 다시 탈출을 시도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도 사람들이 웬만큼 생각할 것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흐름이 생길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 개선문을 끼고 도는 차들이 얼마나 정신없이 움직이는 지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교통과 관련된 문제는 느슨하게 풀어나가면 안 된다. 그렇다고 백날 틀만 뜯어고쳐봐야 아무소용 없다. 포장지 바꾼다고 라면이 우동 되지는 않는다. 이래저래 교통과 관련된 법과 규제를 개선해도 형식에만 얽매여버리면 사람들의 무념무상 운전은 나아지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 상식을 생각하고 양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틀이 필요하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논술형으로 바꾸던가, 도로주행시험을 대도시 한복판의 로터리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들고 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대체해도 괜찮겠다. 그리고 운전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이니, 제발 생각 좀 하고 운전하자. 난 오래 운전하고 오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