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Toyota_Corolla_KR-1

[ 모터트렌드 2011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수입차 시장이 공기펌프 물린 풍선처럼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팔린 수입차는 9만 대를 넘어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올해 1/4분기만 해도 2만5천 대가 넘게 팔리는 등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난은 진정국면으로 들어섰다지만, 고유가와 물가상승 같은 악재들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4월까지의 월간 판매실적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올해 처음으로 수입차 연간 10만 대 판매 시대가 열리리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수입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수치다.

그러면 수입차 업계 사람들이 다 같이 흐뭇한 흥분을 느끼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독일 브랜드 사람들은 쾌재를 부르는 반면, 일본 브랜드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시장 점유율의 양극화 때문이다. 독일 브랜드의 점유율은 지난 4월 70%를 넘어서며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반면 일본 브랜드는 올해 들어 2월에 23.7%를 차지하며 반짝 20% 선을 넘었을 뿐, 1월과 3월에는 모두 10% 후반에 머물렀다. 심지어 4월에는 15%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지난 4월 수입차 등록대수 상위 10대 브랜드 가운데 일본 브랜드는 도요타(403대)와 혼다(252대)뿐이었다. 그러나 두 브랜드 판매대수를 합쳐도, 4위에 오른 아우디의 실적(749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본 브랜드에게 달갑지 않은 일들도 줄지어 터졌다. 미쓰비시 차를 국내에 공급했던 미쓰비시 모터 세일즈 코리아(MMSK)는 판매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지난 4월 말에 부도를 맞았다. 2008년 9월에 공식판매를 시작한 지 2년 7개월 만의 일이다. 또한 일본 간판 브랜드인 도요타는 ‘45년간 세계 누적판매 1위’의 상징성을 내세우며 엔트리급 세단인 코롤라를 출시했지만 한 달간 등록대수는 15대에 그쳤다. 월 초부터 판매가 시작되었고, 새 차는 대부분 출시한 그달에 많이 팔린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도요타 관계자가 아니라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닐 것이다. 나아가 비교적 일찍 수입차 시장에 뿌리를 내린 렉서스나 혼다는 물론이고, 닛산과 인피니티의 판매도 성장세가 둔화되거나 감소하고 있다.

일본 브랜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점유율 30%를 넘으며 수입차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른 수입차 브랜드는 물론 국내 브랜드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일본 브랜드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혹자는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높은 환율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최근에 있었던 일본 대지진의 영향과 별다른 신차 출시가 없었다는 점을 꼽는 의견들도 있다. 모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일본 브랜드 차의 체력약화 이유를 모두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들은 국내 시장에서의 일본차, 나아가 수입차의 본질적인 문제를 빗겨나가고 있다.

이쯤에서 분명히 밝혀두지만, 지금까지는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했지만 지금부터 풀어나갈 이야기는 주관적인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차가 국내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전략과 전술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략이란 우리나라 소비자와 시장 환경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전술이란 제품 포트폴리오 구성을 뜻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일본 메이커의 전략 및 전술 실패 원인에는 그들의 문제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세계적인 고유가 추세, 엔화 강세와 일본 대지진 여파 같은 일본 안팎의 경제상황, 그리고 관세 장벽과 더불어 까다로운 수입차 인증제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정책의 여파 등 국내 환경의 영향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선 전술적인 면부터 살펴보면, 지금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 브랜드는 제품 라인업이 풍부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다양한 소비자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부분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디젤 모델의 부재다. 고유가 여파로 수입차에서 디젤 모델의 판매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일본 브랜드가 국내에 내놓는 디젤 모델이 하나도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디젤차에 대한 규제가 심한 일본의 법규 때문에 일본에서 디젤 엔진 승용차가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유럽에는 디젤 모델이 팔리고 있지만, 유럽 시장을 위해 현지에서 생산되는 모델에 한정되어 있다. 결국 국내에 디젤 승용차를 팔려면 유럽에서 생산된 모델을 들여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데, 현실적으로 비용과 절차의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

이런 문제 때문에 휘발유 엔진 차만 들여올 수 있는데, 운전석 위치가 다른 일본 내수용 모델은 아예 들여오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국내 인증규정을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미국형 모델이나 미국 인증기준에 가까운 모델로 한정된다. 그나마도 미국에서 팔 수 있다고 해서 모두 들여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품공급 체계와 서비스 관리, 홍보 마케팅 비용 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판매가 보장될 수 있는 모델이어야 한다. 렉서스만 해도 미국에서는 10개 차종(하이브리드 등 가지치기 모델 제외)이 팔리지만 국내에는 6개 차종만 들어오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비교적 마진이 큰 프리미엄 브랜드가 이런 형편이니, 마진이 적은 대중적 브랜드는 그나마 많이 팔 수 있는 무난한 모델 밖에는 들여올 수 없는 것이다. 신차 출시가 적은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런 대중적 브랜드가 직면한 문제는 더 심각하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비해 마진이 적으니 최대한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나오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대량 판매를 위해서는 판매와 서비스 인프라를 충분히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한 투자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일본차뿐 아니라 다른 모든 수입차 브랜드들에게 있어 아직까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게다가 엔고 때문에 가격 경쟁력 확보도 쉽지 않고, 결정적으로 일본 대중 브랜드 차들은 비슷한 차급 국산차와의 가격격차를 상쇄시킬 만큼 품질이나 감성적인 면이 월등히 뛰어나지도 않다. 결국 국산차 타기는 싫은데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 차는 부담스러운 한정된 소비자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본차인 셈이다.

사실 일본차 입장에서 보면 한국 시장은 계륵이고, 뜨거운 감자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합쳐 현재 약 140만 대 규모인 국내 시장은 기껏 커봐야 160만 대를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수입차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해도, 14개 업체 23개 브랜드(한국수입자동차협회 소속사)가 파이를 나누면 한 개 업체나 브랜드에 돌아가는 조각은 그리 크지 않다. 그 가운데 한국 시장 철수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미쓰비시를 빼면, 지금 국내에는 4개 업체 6개 브랜드의 일본차가 들어와 있다. 이들이 최대한 선전을 해서 수입차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한다고 하자. 그래봐야 160만 대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최대 10%까지 커진다 해도 일본차가 가져갈 수 있는 파이는 연간 8만 대, 한 달에 6천700대 정도에 불과하다. 국산차 메이커 가운데 판매 차종이 4개에 불과한 르노삼성 한 브랜드도 그만큼은 판다.

그렇다고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다고 자부하는 마당에 한국 시장을 포기하자니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고, 위험부담도 크다. 어떤 시장이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자동차 시장은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다. 사라진 유무형의 네트워크와 인지도, 소비자의 인식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66년 신진자동차와의 합작으로 한때 국내 시장 전체 1위를 차지했던 도요타가 1970년 돌연 철수한 후 다시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0년이었다. 그나마도 원산지 이미지가 희미한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먼저 내놓아 분위기를 살펴야 했고, 도요타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까지는 그 후로도 8년이 더 필요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본 브랜드들 참 안됐다. 양손 양발 다 묶어놓은 상태로 배틀로얄에 뛰어든 꼴이니 말이다. 난국을 타개할 비책은 분명하다. 수입차로서의 프리미엄을 안고 가겠다는 개념을 지워버리고 국산차와의 간격을 더 좁혀야 한다. 철저하게 국내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한국형 모델을 제대로 만들어 합리적인 값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당분간 거의 0에 가깝다. 결국 지금 일본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일반적인 수입차 판매와 서비스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손해 보지 않을 정도나 손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의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뭔가 해결책을 마련하고 싶고 그 해결책도 뻔히 눈에 보이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한국 시장에서 지금의 일본차가 처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