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2년 4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내용이 길어 10년 단위로 다섯 개 포스트로 나누어 올립니다. ]

* 일본 스포츠카, 이렇게 달려왔다 (1) 1960년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렉서스 LF-A, 도요타 86과 스바루 BRZ가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동안 일본 메이커들은 가장 재미있는 자동차 장르인 스포츠카와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본 메이커들이 만들고 세계인들이 즐긴 걸작 스포츠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작정만 하고 여건만 갖춰지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재미있는 차를 만들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 1970년대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은 일본차 내수와 수출 모두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고도산업화의 병폐인 공해로 몸살을 앓으면서 자동차에 대한 압박이 일본 안팎으로 커졌다. 일본 내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의 납 오염, 광화학 스모그가 사회문제가 되었고, 일본차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대기환경의 악화 때문에 이른바 머스키 법이 제정되었다.

환경에 대한 문제인식은 곧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3년에 석유파동이 벌어지면서 자동차의 고성능화와 스포츠카의 발전은 한동안 주춤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생존을 위해 이러한 난제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각종 규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기술이 속속 개발되면서,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다시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세대의 고성능 차와 스포츠카 붐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둔화되었지만 소비자들의 소비수준이 높아지면서 자동차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DOHC 엔진, 그리고 터보 엔진을 얹은 차들이 소비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1970년대 말에 불붙은 슈퍼카 붐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포츠카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석유파동 여파로 인한 장기불황 속에서 신뢰성과 경제성이 입증되며 점차 자리를 넓혀 나가기 시작했고, 일본 스포츠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세계 각국이 일본차의 시장잠식에 수입규제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도요타 셀리카 (1970년)

포드 머스탱의 영향으로 만들어져, 일본에서 스포츠카와 승용차의 중간적 개념인 스페셜티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장비와 꾸밈새를 소비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소형차 카리나의 섀시를 바탕으로 만든 2도어 쿠페/해치백 차체의 디자인도 머스탱을 벤치마킹했다. 해외에서도 호평을 얻었다.

미쓰비시 갤랑 GTO (1970년)

소형차 갤랑을 바탕으로 만든 하드톱 쿠페로, 미쓰비시의 대표적인 스페셜티 카다. 소형차 크기이면서도 미국 머슬카의 스타일 요소를 가미해 스포티한 이미지가 강했고, 스포츠성을 강조한 DOHC 엔진 모델도 마련했다. 미쓰비시는 이 차를 모터스포츠에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석유파동 여파로 포기했다.   

마쓰다 RX-3 (1971년)

소형차 파밀리아에서 가지쳐 나온 모델로, 로터리 엔진 고성능 모델인 사바나(Savanna) GT가 특히 유명하다. 이 차는 1972년 2월 후지 TT 레이스에서 종합우승하면서 닛산 스카이라인 GT-R의 일본 투어링카 레이스 50연승을 저지해 명성을 얻었다. 후속 모델 RX-7에 사바나라는 이름을 물려준다.

마쓰다 사바나 RX-7 (1978년)

RX-3의 뒤를 잇는 로터리 엔진 쿠페로, 차체 형상은 물론 주요 디자인 요소까지 앞서 나온 포르쉐 924를 닮아 화제가 되었다. 석유파동 여파로 연비향상에 주력한 로터리 엔진은 최고출력이 100마력에 불과했지만 핸들링과 성능이 우수해 해외에서도 닛산 페어레이디 Z와 함께 인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