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2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1955년에 선보인 시트로엥 DS는 디자인과 기술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시트로엥, 나아가 프랑스 차를 대표하는 혁신으로 가득했다. 양산차에서 보기 어려웠던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을 비롯해 당대 첨단 기술이 많이 담겨 있었고, 선진성에 힘입어 20여 년 동안 150만 대 이상이 생산되는 인기를 누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은 전쟁의 상처를 씻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졌다. 독일 점령하에서 큰 피해를 입은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투와 폭격으로 파괴된 산업시설을 복구해야 했고, 경제도 부흥해야 했다. 자동차 산업이 입은 피해도 작지 않아, 새로운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프랑스에서도 전후 한동안 공장에서 출고된 차들은 대부분 전쟁 이전에 생산되던 모델이거나 전쟁 이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모델이었다. 그래서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변변한 새 모델은 나오지 못했다. 시트로앵의 전후 주력모델도 1934년에 나온 트락숑 아방이었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앞선 기술로 화제가 된 차였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미 낡은 모델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1955년 10월. 파리 모터쇼의 시트로엥 전시장에는 충격적인 새 모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다른 어떤 차들과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색다른 스타일을 지닌 차의 이름은 DS였다. 전쟁 이전부터 트락숑 아방의 후속 모델로 기획된 이 차는 뒤늦게 빛을 보게 된 셈이었다. DS는 트락숑 아방 개발의 명콤비였던 앙드레 르페브르와 플라미니오 베르토니가 다시금 손을 잡고 완성한 차였다. 엔지니어인 르페브르와 디자이너인 베르토니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 차는 공기역학적인 독특한 디자인과 더불어 여러 혁신적인 기술이 한데 모여 자동차의 디자인과 설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차이기도 하다.

DS는 프랑스어로 ‘여신’을 뜻하는 디에스(Déesse)와 발음이 같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우아하고 부드러운 유선형 차체, 뒷바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매끄러운 옆모습은 여성적 감각이 가득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DS의 디자인을 가리켜 ‘하늘에서 떨어진 듯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DS는 미적인 측면뿐 아니라 실용적인 면도 혁신적이었다. 극단적으로 긴 휠베이스가 실내 공간을 넓게 만들었는데, 휠베이스 길이는 당시 최고급 차였던 롤스로이스 실버 클라우드와 비슷할 정도였다. 당시 양산차로는 드물게 경량 또는 복합소재를 적극 활용한 것도 독특했다. 보닛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고, 지붕은 모델과 연식에 따라 에폭시와 알루미늄이 두루 사용되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당대의 양산차에서 보기 드문 혁신적인 면모가 돋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이었다. 질소 가스와 유압을 이용해 서스펜션의 높이와 충격흡수력을 조절하는 이 서스펜션은 노면조건에 관계없이 편안한 승차감을 보장했고, 이후 시트로앵의 주행특성에 가장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이 서스펜션은 차체 높이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었고, 자동으로 앞뒤 차체 높이의 균형을 맞추는 셀프 레벨링 기능도 있었다.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을 갖추기 위해 차체 강성을 높인 덕분에 안전성은 물론 핸들링 특성도 우수했다.

초기에는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을 비롯한 여러 신기술이 충분히 안정되지 않아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시트로앵은 이를 차츰 개선했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안정화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밖에도 DS에는 당시 양산차로는 드문 디스크 브레이크와 세미 오토 변속기, 조향 연동 헤드램프와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도 쓰였고 전후방 충격흡수구조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엔진은 앞 차축 바로 뒤에 놓인 프론트 미드십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초기의 DS에는 11CV 트락숑 아방의 것을 개선한 직렬 4기통 1,911cc 75마력 엔진이 쓰였다. 엔진은 점차 개선되어, 1965년에는 새로운 1,985cc 엔진과 2,175cc 엔진이 올라갔다. 이어 1973년에는 2,374cc 엔진이 나왔고, 카뷰레터와 전자식 연료분사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전자식 연료분사 엔진은 최고출력이 143마력에 이르렀다. 변속기도 1970년에 3단 자동과 5단 수동이 추가되었다. 보디도 처음에는 4도어 세단 한 종류였지만 1958년에는 왜건 버전인 브레이크와 프랑스 코치빌더인 앙리 샤프론이 만든 컨버터블인 데카포타블르(Decapotable)가 나왔다. 

DS는 넓은 실내공간과 쾌적한 승차감에 힘입어 대통령을 비롯해 관공서와 외교관 의전차로도 널리 쓰였다. 특히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자칼의 날’의 소재가 되었던 샤를 드 골 전 프랑스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에서 드 골의 목숨을 구한 차로 알려지기도 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생산된 DS는 1967년에 페이스리프트된 이후 1970년대까지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가장 많이 생산된 것은 모델 수명이 거의 다해갈 무렵인 1970년이었고, 석유파동 직전까지도 연간 8만 대 이상 생산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75년에 후속 모델 CX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20년 동안 생산된 DS는 150만 대가 넘었다.

오랫동안 큰 인기를 얻었지만 DS의 산실인 시트로앵은 줄곧 빈사상태였다. 이미 오래전에 미쉐린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 있던 시트로앵은 1968년에 인수한 마세라티에 대한 투자와 석유파동으로 큰 손해를 입고 파산했고, 결국 1974년에 푸조로 넘어가 PSA 푸조 시트로앵의 일원이 되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말년에는 빛을 많이 잃었지만, 시트로앵 DS는 여러 미래적인 모습과 탁월한 기술을 통해 재건의 길을 걷고 있던 프랑스 국민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시트로엥 차의 현대적인 특징을 창조해낸 기원으로도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