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3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개된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터스포츠 활동이 낳은 걸작이 300 SL이다. 경주차 바탕의 스포츠카라는 점과 더불어 아름다운 모습의 걸 윙 도어, 양산차 최초의 직접 연료분사 엔진 등으로 혁신과 도전의 모습을 보여준 300 SL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메르세데스-벤츠 스포츠카의 아이콘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메르세데스-벤츠는 공장 대부분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후 복구를 위한 상용차 생산을 시작으로 정상화에 나섰지만,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승용차 생산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다시 모터스포츠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정 여력이 부족했던 탓에 경주차 개발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전쟁 탓에 기술 발전도 정체되어 있어, 경쟁력 있는 엔진과 구동계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메르세데스-벤츠가 갖고 있던 가장 강력한 엔진은 독일 총리인 콘라드 아데나워가 구매해 ‘아데나워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으로 불린 대형 승용차인 300에 쓰인 직렬 6기통 3.0ℓ 엔진이었다. 그러나 이 엔진은 경주차에 쓰기에는 무거웠기 때문에 메르세데스-벤츠는 차체 경량화를 돌파구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파이프 용접 스페이스 프레임과 알루미늄 보디를 갖춘 300 SL이었다.

1952년에 등장한 300 SL 경주차는 여러 로드레이스와 그랑프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300 SL의 성과가 미국에도 알려지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그 중 한 명이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해 여러 유럽 승용차를 미국에 판매하던 맥스 호프만이었다. 그는 메르세데스-벤츠에 300 SL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충분한 판매를 장담하는 그의 설득에 메르세데스-벤츠는 300 SL 양산차를 개발했고, 1954년 뉴욕 오토쇼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300 SL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메르세데스-벤츠가 처음으로 개발해 완성한 첫 양산차이기도 했다. 

300 SL은 생산성을 고려해 기본적인 차체는 철제로 만들었지만 도어, 보닛, 트렁크 리드, 하부 패널 등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고급 이미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당시로써는 드문 편의장비도 많이 달았다. 그러나 300 SL의 가장 큰 특징은 위로 들어 올려 여는 방식의 독특한 도어였다. 300 SL 경주차에 쓰인 것과 같은 방식의 이 도어는 사실 차체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체 옆쪽 아랫부분을 크게 차지하는 구조의 파이프 용접 스페이스 프레임 때문에 택한 불가피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앞을 향해 열리는 일반 도어를 달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독특한 차체 형태와 어우러진 이 도어는 열었을 때 마치 갈매기 날개와 같은 형태가 되어 매력적인 모습을 자아내었다. 이 독특한 형태 덕분에 300 SL의 도어에는 갈매기 날개라는 뜻의 ‘걸 윙(gullwi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걸 윙 도어는 실용적인 것은 아니었다. 구조적인 한계 탓에 차에 오르내리기는 쉽지 않았고, 차에 탄 상태에서 문을 닫기도 쉽지 않았다. 또한 차 크기에 비해 실내가 좁아, 운전자가 좌석에 앉을 때 도움이 되도록 스티어링 휠을 접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도어는 아름다운 모습만으로도 찬사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300 SL의 상징으로 차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개발기간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메르세데스-벤츠는 엔진은 물론 다른 부분에도 고급 세단인 300의 주요 부품을 가져다 썼다. 엔진은 기본적인 구조는 앞서 선보인 300 SL 경주차와 같았지만 혁신적인 새 기술이 더해졌다. 카뷰레터 대신 기계식 직접 연료분사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 기술은 메르세데스-벤츠뿐 아니라 당시 양산 승용차에는 처음으로 쓰인 것이었다. 출력도 카뷰레터 엔진보다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이렇게 해서 높아진 출력과 경량 구조 덕분에 300 SL의 최고시속은 250km에 이르렀다.

덩치 큰 엔진을 얹으면서 보닛을 낮추기 위해 메르세데스-벤츠는 엔진은 옆으로 틀어 얹었다. 그래도 여전히 실린더 헤드 부분이 높아, 보닛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돌출된 부분을 만들어야 했고, 좌우 디자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보닛 좌우에는 두 개의 독특한 돌출부가 생겼다. 이 디자인 요소는 이후 메르세데스-벤츠 스포츠카의 상징이 되어 여러 스포츠카로 이어졌다.

쿠페 형태의 300 SL은 1957년까지 1,400여 대가 만들어졌고, 이후 한층 편의성을 높인 300 SL 로드스터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쿠페와 로드스터를 막론하고, 300 SL은 빼어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차가 될 수 있었다. 1999년에 세계 자동차 저널리스트와 전문가가 선정한 ‘세기의 자동차’에서도 스포츠카 부문 최고의 차가 될 수 있었던 데에도 걸 윙 도어의 파격적인 아름다움이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