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언스북스 DK 대백과사전 시리즈 ‘카 북’ 발행에 즈음해 2013년 5월부터 11월까지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연재한 글입니다. ]

고전적인 스타일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리는 것을 흔히 모던 클래식(modern classic)이라고 합니다. 자동차에서는 주로 디자인에 모던 클래식 경향이 반영됩니다. 다른 말로는 복고풍을 뜻하는 레트로(retro)를 붙여 레트로 디자인이라고도 하죠. 레트로 디자인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에서도 읽을 수 있듯, 과거에 유행했던 것이 시간이 흐른 뒤에 새로운 유행처럼 느껴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구요.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에 자리를 잘 잡은 디자인 또는 디자인 요소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산이 되어,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술 수준이 거의 평준화되기 시작하고 선진국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자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모던 클래식 디자인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브랜드 가운데에는 성장동력이 힘을 잃었을 때에 과거 잘 나가던 시기의 차를 모티브 삼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현한 모던 클래식 디자인을 내세워 브랜드의 장점과 좋은 기억을 소비자에게 각인하는 효과를 얻으려 하는 곳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 자동차 붐이 일면서 쏟아져 나왔던 훌륭한 차들이 주로 모던 클래식 디자인의 소재가 되곤 했죠.

자동차에 고전적인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특정한 모델에 구애되지 않고 순수하게 옛날 차의 ‘분위기’만 살리는 방법이 있고, 과거에 좋은 평을 얻었거나 큰 인기를 얻었던 모델을 놓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의 예로 가장 대표적인 차로는 크라이슬러 PT 크루저(‘카 북’ 293쪽)가 있습니다.

PT 크루저는 처음 나왔을 당시만 해도 무척 참신한 느낌으로 적잖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딱히 어떤 차를 모티브 삼았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1940년대 미국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을법한 모습의 차가 21세기에 떡 하니 나왔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죠. 게다가 소형차 네온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실내는 미니밴에 가까운 넉넉한 공간을 갖추었고 시트와 트렁크 공간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어 실용성도 뛰어났습니다. 2000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PT 크루저는 2006년에 판매대수가 100만 대를 넘어서, 미국 브랜드가 만든 모던 클래식 디자인의 차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크라이슬러 디자이너였던 브라이언 네스빗은 이 차의 성공으로 단숨에 유명세를 얻었죠.

PT 크루저가 인기를 끌자 경쟁사인 GM에서도 비슷한 개념과 디자인의 차를 만들었는데, 2006년에 나온 쉐보레 HHR(‘카 북’ 312쪽)이 바로 그 차입니다. HHR은 PT 크루저처럼 소형차의 뼈대 위에 고전적인 디자인의 차체를 얹었는데요. 재미있게도 이 차 역시 PT 크루저를 디자인했던 브라이언 네스빗이 디자인을 했습니다. PT 크루저로 주목을 받은 직후인 2002년에 GM에서 그를 스카웃해 갔거든요. 그런데 HHR은 PT 크루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미 PT 크루저가 한바탕 인기몰이를 하고 난 뒤에 나왔던 데다가, 나름 차별화를 하기 위해 과거 쉐보레 승용차 디자인을 좀 더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차체를 키운 것이 오히려 차를 투박해 보이게 만들었죠. 저도 이 차가 데뷔할 즈음에 미국에서 이 차를 시승해 봤는데, HHR만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크라이슬러는 PT 크루저가 성공을 거두기 전에도 이미 모던 클래식 디자인의 차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인 플리머스에서 나왔던 프라울러(‘카 북’ 292쪽)가 그 차인데요. 이 차 역시 PT 크루저처럼 특정한 차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 분위기만 살린 차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핫 로드(hot rod)’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표현했죠.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차였지만 생산하기도 어려웠던 데다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장르도 아니어서 4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1만2,000여 대만 생산되고 단종되었습니다.

한편 닛산은 서구 메이커들의 모던 클래식 유행이 불붙기도 전인 1991년에 피가로(‘카 북’ 280쪽)를 내놓아 자신만의 모던 클래식 스타일을 보여주었습니다. 경제의 거품이 한창 부풀어오르던 1980년대 후반에 일본 자동차 시장의 무게중심이 호화롭고 색다른 차 쪽으로 옮겨진 것이 피가로 탄생의 배경이었습니다. 뭔가 색다른 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닛산은 평범한 대중차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틈새 차종을 여러 가지 개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가로였습니다. 이 차 역시 원형이라고 할 만한 모델을 찾을 수는 없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 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국내에도 여러 대가 비공식 수입되어 CF와 드라마를 통해 TV에도 간간이 얼굴을 비추곤 했지요. 원래 8,000대만 한정 생산하려고 했는데 수요가 늘어나면서 2만 대를 생산했다고 합니다.

모던 클래식의 또 다른 부류는 과거의 특정 모델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것인데, 앞서 이야기한 불특정 모델에 뿌리를 둔 차보다는 이쪽이 더 다양하고 메이커의 선호도도 높은 편입니다. 특정한 모델을 모티브로 삼으면 아이디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옛 차의 기억을 훨씬 쉽게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차를 알리기에도 더 수월하지요.

이 부류의 모던 클래식은 이름만 대면 금세 알 수 있는 차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전 ‘포르쉐 박사의 흔적’ 포스트에서도 다루었던 폭스바겐 비틀(‘카 북’ 126~129쪽)은 모던 클래식 디자인으로 거듭나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된 차입니다. 1994년에 콘셉트 원(오리지널 비틀의 원래 이름은 타입 원이었습니다)이라는 이름의 콘셉트 카로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자 1998년부터 뉴 비틀(‘카 북’ 295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뉴 비틀은 PT 크루저와 비슷한 시기에 나와 모던 클래식 디자인의 유행을 이끈 모델로 평가 받고 있지요. 오리지널 비틀과 구분하기 위해 국내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진 비틀에 ‘뉴 비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새 비틀이 2세대 새 모델로 바뀌면서 ‘뉴 비틀’이 더 이상 ‘뉴 비틀’이 아니게 되자 ‘더 비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식으로 과거의 차를 재현한 모델 가운데 성공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차로 포드 머스탱(‘카 북’ 187쪽)이 있습니다. 폭스바겐 뉴 비틀 디자인을 주도한 제이 메이스가 포드로 옮겨 포드의 디자인 흐름을 바꿔놓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차가 2005년에 나온 5세대 머스탱(‘카 북’ 310쪽)인데요. 이 차에는 뉴 비틀과 비슷한 방식으로 머스탱이 가장 잘 나갔던 시기인 1960년대 후반 모델의 디자인을 토대로 현대적인 색깔을 입혀 완성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머스탱은 비교적 저렴한 값에 스포츠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차라는 개념만 이어받고 있었을 뿐 1970년대 이후 초대 모델의 카리스마는 사라진 상태였죠. 하지만 모던 클래식 디자인으로 거듭난 머스탱은 디자인에서부터 박력 있고 강력한 스포츠카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면서 과거의 카리스마를 어느 정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다시 한 번 디자인을 손질하고 2010년에 엔진을 대폭 업그레이드하면서 미국식 본격 스포츠카의 면모를 되찾았습니다.

한때 머스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닷지의 명차 챌린저(‘카 북’ 234쪽)도 비슷한 방식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챌린저는 크라이슬러가 뒤늦게 머스탱 같은 포니카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석유파동으로 자취를 감춘 비운의 차였습니다. 하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만만찮은 성능을 과시하며 닷지의 대표적 스포츠카 중 하나로 이름을 남겼죠. 그런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었던 크라이슬러가 다임러와 한솥밥을 먹던 시절에 얻은 뒷바퀴 굴림 플랫폼을 가지고 30여 년 만에 부활시킨 차가 바로 챌린저(‘카 북’ 310쪽)입니다.

포드 머스탱, 닷지 챌린저, 그리고 ‘카 북’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2010년에 쉐보레가 부활시킨 카마로는 모두 1970년대 초반에 치열하게 경쟁하던 포니 카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린 차들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같은 시장에서 같은 성격의 차들이 과거와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경쟁하고 있는 모습은 무척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폭스바겐이 비틀로 성공을 거둘 무렵에 BMW는 비슷한 방식으로 미니(‘카 북’ 158~161쪽)를 현대화합니다. 지금의 미니 브랜드는 깜찍한 외모는 물론이고 요즘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톡톡 튀는 분위기와 꾸밈새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죠. 40년 이상 생산되며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이 나왔던 오리지널 미니처럼 새 미니도 엄청나게 많은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미니 클럽맨(‘카 북’ 329쪽)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만 지금의 미니 클럽맨은 오리지널 미니에서는 컨트리맨에 해당하는 모델입니다. 오히려 오리지널 미니 클럽맨(‘카 북’ 216쪽)은 외모와 꾸밈새 말고는 그냥 미니와 별반 차이가 없죠.

비틀과 미니가 성공을 거두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과거의 명차를 지닌 브랜드 하나도 모던 클래식 디자인 유행에 동참합니다. 피아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고, 그 대상이 된 차는 500이었습니다. 최근 국내에도 공식 판매가 시작된 500(‘카 북’ 317쪽)은 오랫동안 피아트를 대표하며 이태리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은 물론 다른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서민의 발 역할을 톡톡히 했죠. 하지만 비틀과 미니를 보고 배운 피아트는 500을 깜찍하고 재치 있는 패션 카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차들보다 크기가 많이 작다는 단점 때문에 폭넓은 사랑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옛 500과 아주 비슷한 귀여운 모습에 적잖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작고 귀여운 차나 스포츠카만 모던 클래식 디자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통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고급 브랜드는 드러나지 않게 모던 클래식 디자인을 차에 반영하기도 하죠. 1950년대의 명차였던 마크 VII, IX(‘카 북’ 142쪽) 등 ‘마크’ 시리즈 디자인을 바탕으로 만든 재규어 S-타입(‘카 북’ 301쪽)은 전통적인 재규어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고전적인 디자인을 현대적인 고급차에 어울리도록 잘 변형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물론 재규어 특유의 성능과 달리기 특성이 뒷받침하지 못해 비판도 있었지만, 보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차였습니다.

역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폭스바겐이 인수한 후 브랜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현대화된 벤틀리는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고전적인 요소를 더하는 방식의 차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와의 고리는 계속 이어나가고 있죠. 예를 들어 콘티넨털 GT 슈퍼스포츠(‘카 북’ 322쪽) 같은 차는 개념 상으로는 완벽한 현대적 차이지만 차체 옆모습과 보닛 굴곡처럼 차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큰 부분에는 R 타입 콘티넨털(‘카 북’ 143쪽)에서 볼 수 있었던 요소들을 넣어 전통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호평을 얻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차라도, 가치 기준이 달라진 지금에 와서는 많은 사람이 만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차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안전 및 환경규제 때문에 과거와 똑 같은 방식과 설계로 차를 만들어 파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옛 명차의 복각판인 레플리카(replica)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극소수의 애호가나 수집가들을 위한 차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차를 사서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옛 향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면서 현대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술의 혜택은 모두 누릴 수 있는 모던 클래식 디자인의 차가 더 매력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