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4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르노 4는 33년 동안 800만 대 넘게 생산된 장수 인기 모델 중 하나다. 1950년대 인기 모델이던 4CV의 후속 모델로 계획되어 196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큰 인기를 얻으며 르노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실용성을 중시한 설계로 현대적인 다목적 소형차의 개념을 제시했고, 험로 주행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함과 승차감으로 저개발 국가에서도 사랑받았다.

자동차 역사에서 폭스바겐 비틀, 포드 모델 T 다음으로 많이 판매되었으면서도 유명세는 그에 미치지 못한 자동차가 있다. 바로 르노 4다. 1961년에 데뷔한 르노 4는 1994년까지 33년 동안 생산되었는데, 이처럼 기본 설계가 크게 바뀌지 않고 장수한 차는 오리지널 미니, 시트로엥 2CV 등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개발 목표는 ‘청바지처럼 부담 없는 차’

르노 4의 탄생을 이끈 사람은 1955년에 르노 CEO에 취임한 피에르 드레퓌(Pierre Dreyfus)였다. 전임자 피에르 르포슈(Pierre Lefaucheux)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갑자기 CEO 자리에 오른 그는 르포슈의 지휘 아래 개발된 도핀(Dauphine)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를 잡는 데 기여했다. 아울러 인기리에 팔리고 있던 4CV의 뒤를 잇는 대중적인 모델로 혁신적인 개념의 실용적인 차를 만들 것을 개발 팀에게 주문했다. 평일에는 미니밴처럼 장보기용으로 쓰거나 각종 도구를 싣고 업무용으로 쓸 수 있으면서,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갈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한 차라는 것이 기본 개념이었다. 

또한 저렴하면서도 견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리하기 편하도록 구조도 단순해야 했다. 마치 청바지처럼 일상에서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는 경쟁업체인 시트로엥의 2CV를 염두에 두고 단점과 장점을 속속들이 파악한 결과였다. 드레퓌는 이와 함께 ‘35만 프랑에서 1센트도 더 비싸지 않은’ 값에 내놓기를 요구했다. 35만 프랑은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1,280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미국에서 GM이 판매하던 가장 작은 모델인 쉐보레 콜베어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다용도 차를 처음 개발하게 된 르노 개발 팀은 드레퓌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혁신적인 해법을 찾아야 했다. 당시 르노의 주력 모델이던 4CV와 도핀은 뒤 엔진 뒷바퀴 굴림 방식을 써서 실내 뒤쪽 공간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이전 모델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무의미했고, 엔진을 차체 앞쪽에 얹은 앞바퀴 굴림 모델을 새로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르노 역사상 처음으로 현대적인 앞바퀴 굴림 플랫폼을 쓴 차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프로젝트 이름은 112였지만, 35만 프랑이라는 목표 가격 때문에 ‘350’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개발 팀은 실용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접이식 뒷좌석이었다. 간단한 조작으로 뒷좌석을 앞으로 접어 넘기면 앞좌석 뒤쪽 전체가 큰 적재공간으로 변했다. 또한 양산차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차체 뒤에 위로 들어 올려 여는 방식의 도어를 달아 실내 지붕 높이까지 이르는 크기의 짐도 실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특징들은 요즘 나오고 있는 해치백이나 왜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 특징들이었다.

실용적인 설계로 저개발국에서도 인기 얻어

거친 노면에서도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이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해법도 마련했다. 당시 저렴한 소형차에는 드물게 모든 서스펜션을 좌우 독립 구조로 만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간단한 토션 바 방식이었지만, 뒤 서스펜션은 좌우를 분리하고 각각 토션 바를 연결했다. 이렇게 해서 한쪽 바퀴에 가해지는 충격이 반대편 바퀴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왼쪽 토션 바와 오른쪽 토션 바를 앞뒤로 배치해, 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가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길었다. 아울러 쇼크 업소버를 차체 바닥 아래에 거의 수평에 가깝게 설치했다. 실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르노 4는 1961년 데뷔 당시에는 R4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때 함께 선보인 R3이 나중에 단종되면서 1965년부터 공식 명칭이 르노 4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르노 4는 큰 인기를 얻었다. 출시 후 5년여 만인 1966년에 누적 생산대수가 100만 대를 넘어섰고, 1967년에는 연간 생산대수가 37만 대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1960년대 초반에 핵심 모델이던 도핀이 미국에서 판매 부진을 겪으며 어려움에 처했던 르노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뛰어난 실용성을 인정받아 프랑스 경찰과 육군, 우정공사 등 공공기관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1977년에는 누적 판매대수가 500만 대를 넘어, 르노를 유럽 최대 자동차 메이커 자리에 올려 놓는데 기여했다. 

드레퓌는 이 차의 가능성을 해외 시장에서도 엿보아, 수출을 적극 추진했다. 이미 1962년에 르노 4의 수출 물량은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물량의 70퍼센트에 육박했고, 전체 생산량의 60퍼센트 정도가 프랑스 밖에서 팔렸다. 서유럽 지역에서도 인기가 있었지만, 르노 4는 특히 저개발 국가에서 사랑받았다. 1950년대 농촌과 소도시를 배경으로 개발된 만큼, 도로나 교통여건이 좋지 않은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특히 인기를 끌어 현지 여러 나라에서 조립 생산되기도 했다. 특히 1972년부터는 당시 동구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지금의 슬로베니아)에서 현지 생산을 시작해 50만 대 이상 생산되었다. 

전성기를 지난 198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한정 및 특별 모델과 더불어 고전적인 스타일의 패션 카로 명맥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환경과 안전 규제 강화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에서는 1992년에 트윙고에게 막내 모델 자리를 내어주며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르노 4의 긴 역사에 마침표가 찍힌 것은 모로코와 슬로베니아에서 생산이 중단된 1994년의 일이었다. 33년 동안 만들어진 르노 4는 모두 813만 5,424대였고, 현지 조립 생산한 나라는 27개 이상, 판매된 나라는 100곳이 넘었다. 또한 해외 현지 생산된 모델이 절반을 넘은 르노의 첫 글로벌 모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