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4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1960년에 등장한 사브 96은 사브의 첫 차인 92를 바탕으로 두 번째로 개선한 모델이다. 이전 모델인 93의 거주성을 개선한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초기에 쓰인 2행정 엔진은 나중에 4행정 엔진으로 바뀌었다. 앞선 안전기술과 신뢰성은 물론 모터스포츠에서 거둔 좋은 성적으로 호평을 얻어 20년간 장수하며 사브의 성장을 이끌었다.

사브는 1949년에 92라는 모델을 내놓으며 자동차 역사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항공기 제조업체에서 만든 자동차답게 공기역학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디자인이 사브 차의 특징이었다. 산업 디자이너 식스텐 사손(Sixten Sason)이 창조한 이 스타일은 92를 개선한 후속모델 93은 물론이고 93을 더욱 발전시킨 96에도 이어졌다. 1960년에 등장한 96은 사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20년 동안 여러 차례 개선되며 장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사브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93의 후속 모델로 차체 뒤쪽 넓혀

사브 96은 1960년 2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96은 프로젝트 이름인 93C에서도 알 수 있듯, 기본 설계는 93의 것을 대부분 이어받았다. 앞모습이 93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96보다 6개월 앞서 출시된 스테이션 왜건인 95도 같은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그래서 93과 96은 물론 95와 96 사이에도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96은 차체 앞쪽의 뭉툭한 보닛과 펜더가 마치 소의 얼굴을 닯아서 얻은 불 노즈(bull-nose)라는 별명도 93과 같았다. 

95도 마찬가지였지만, 96은 93에서 부족했던 뒷좌석 거주성과 적재공간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93에서는 뒷좌석에 2명만 앉을 수 있었지만 96은 3명이 앉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뒷좌석 뒤의 짐 공간도 훨씬 커졌고, 뒷좌석 등받이를 접어 짐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되었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 차체 뒤쪽은 93보다 더 부푼 모습이 되었다. 옆 유리도 커지고 뒤 유리는 차체를 둥글게 감싸는 형태가 되었다. 테일램프도 93보다 커졌다.

초기에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부분까지 크게 열리는 보닛 아래에 직렬 3기통 841cc 엔진이 세로로 배치되었다. 93에 쓰인 748cc와 기본 설계가 같은 이 엔진은 요즘 일반적인 4행정 방식이 아닌 2행정 방식이었다. 2행정 엔진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부품 윤활을 위해 윤활유를 연료에 섞어 태웠는데, 그런 특성 때문에 프리휠(free-wheel)이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는 감속하거나 긴 내리막을 달릴 때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해도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 장치였다.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하면 실린더에 연료가 공급되지 않는데, 2행정 엔진에서는 이때 윤활유도 공급되지 않으므로 엔진이 손상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고속 주행 때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엔진과 변속기 사이의 클러치가 분리되어 동력이 자동으로 차단되도록 더한 장치가 프리휠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2행정 엔진에 알맞은 기술인 프리휠이 나중에 4행정 엔진이 쓰인 뒤에도 한동안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배기가스 규제 등 시장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브는 96에 얹을 4행정 엔진을 찾았고, 1967년부터 포드 타우너스 12M에 쓰였던 V4 1.5리터 73마력 엔진을 가져와 얹기 시작했다. 새 엔진은 4행정 방식이어서 엔진 브레이크 때에도 윤활이 잘 되어 굳이 프리휠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고속 주행 때 연료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어, 한동안 선택사항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이어 1971년부터는 미국 시장의 배기가스 기준에 맞추기 위해 배기량을 키운 V4 1.7리터 엔진이 쓰였다. 이 엔진은 소네트 스포츠카에 썼던 것의 압축비를 낮춰 최고출력은 그대로 73마력이었다. 미국 배기가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1972년에는 최고출력을 65마력으로 더 낮췄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쳐 96의 미국 수출은 1973년에 중단되었다. 2행정 841cc 엔진은 1968년까지 V4 4행정 엔진과 함께 선택할 수 있었다.

선대부터 이어진 앞바퀴 굴림 방식 고집해

엔진 뒤에 놓인 3단 수동변속기는 동력을 좌우로 나누어 앞바퀴로 전달했다. 앞바퀴 굴림 방식은 사브가 처음부터 고집했던 전통이었다. 1962년부터는 일부 시장에 4단 수동변속기를 달고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정작 본고장인 스웨덴에서는 1964년부터 선택할 수 있었다. 1965년형 모델부터는 기계적으로 클러치를 자동 조작하는 삭소마트(Saxomat) 반자동 변속기도 선택할 수 있었지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또한 초기 모델에서는 라디에이터가 변속기 위, 즉 엔진 뒤에 놓여 있는 것이 독특했다. 1965년형 모델부터 라디에이터의 위치가 엔진 앞으로 바뀌었는데, 앞으로 더 큰 엔진을 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의도였다. 이런 구조 변화가 차의 앞모습을 크게 바꾸는 페이스리프트로 이어졌다. 라디에이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앞 오버행이 더 길어지면서 보닛과 앞 펜더도 더 돌출되었고, 가로로 넓어진 라디에이터 그릴 양쪽 끝에 헤드램프를 배치했다. 이후로 헤드램프가 각진 형태로 바뀐 데 이어 라디에이터 그릴 가운데에 큰 사각형 부분을 더하는 등 외모 변화가 몇 차례 더 있었지만 기본 차체 형태는 1980년에 생산 중단될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96은 당시 대중차로서는 비교적 앞선 기술이 쓰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스펜션은 앞에 더블 위시본 구조를, 뒤에 U자 모양의 빔을 사용해 트레일링 암과 토션 빔의 특성을 모두 지닌 트레일링 U빔 액슬 구조를 썼다. 네 바퀴 모두 코일 스프링과 텔레스코픽(신축식) 댐퍼를 쓴 것은 당시 대중차로서는 상당히 앞선 선택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브 96이 호평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안전기술 덕분이었다. 1962년부터 안전벨트가 기본 장비가 되었고, 1964년에는 당시 일부 고급차에서만 볼 수 있었던 2중 회로 브레이크 시스템이 쓰이기 시작했다. 충돌 때 스티어링 축이 접히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컬랩서블 스티어링 컬럼도 사브 차 중 처음으로 쓰였다. 

이런 안전기술과 더불어 1960년대 초반 몬테 카를로와 RAC 랠리 등 유럽 유수의 랠리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쌓은 좋은 이미지는 판매로 이어졌다. 에릭 칼손(Erik Carlsson)을 스웨덴의 랠리 영웅으로 만든 것도 96이었다. 96은 미국을 포함해 스웨덴 이외 지역으로 많은 수가 수출되었고, 20년 동안 52만 7,000여 대가 생산되며 사브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