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5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LP400은 파올로 스탄자니의 독특한 구동계와 섀시 설계에 마르첼로 간디니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어우러져 주목받았다. V12 4.0리터 375마력 엔진으로 시속 300km 벽을 깨는 등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며 1970년대 대표 슈퍼카 중 하나로 손꼽힌다.

미우라를 통해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에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린 람보르기니는 1970년대를 앞두고 미우라의 뒤를 이을 차세대 모델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미우라는 멋과 개성이 있는 디자인과 더불어 V12 엔진을 차체 뒤쪽에 놓고 뒷바퀴를 굴리는 미드십 설계로 스포츠카의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다. 그러나 차체 무게 배분이 고르지 않은 등 물리적인 한계로 고속 주행 때 불안정한 특성이 나타나는 등 문제점도 있었다. 게다가 성능 자체는 뛰어났지만 당초 계획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고, 꾸준한 개선으로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따라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개선과 함께 미우라를 뛰어넘을 새 모델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역방향으로 세로배치한 V12 구동계가 특징

L112라는 개발 코드명의 새 모델은 미우라 설계의 주역인 잔 파올로 달라라(Gian Paolo Dallara)의 뒤를 이어 람보르기니 기술 책임자가 된 파올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가 설계를 이끌었다. 스탄자니는 미우라의 단점을 보완해 새로운 형식의 V12 미드십 엔진 배치를 구상했다. 안정적인 무게 배분을 위해서는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했지만, 일반적인 배치를 따라 엔진 뒤에 변속기를 놓으면 휠베이스와 차체가 길어져 코너링 특성이 나빠질 수 있었다.

스탄자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동계를 180도 돌리는 배치를 고안해 냈다. 새로운 설계는 변속기를 실내 앞뒤 좌석 사이의 센터터널 안으로 배치할 수 있어 차체 길이를 줄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L112는 엔진을 가로로 배치한 미우라보다 휠베이스가 더 짧게 설계되었고 무게배분 특성도 좋아졌다. 또한, 케이블을 이용하지 않고 기어 레버가 변속기에 직접 연결되어 기어 레버 조작감도 좋아졌다. 시험제작차의 구조는 미우라와 비슷한 세미 모노코크 방식을 택했다.

L112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람보르기니는 베르토네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미 미우라를 통해 뛰어난 디자인 능력을 보여준 마르첼로 간디니가 다시 한 번 람보르기니의 새 모델 디자인을 맡았다. 간디니는 당시 새로운 유행이 되고 있던 직선 중심의 쐐기형 디자인을 응용해 혁신적 디자인을 만들었다.

간디니의 디자인에 스탄자니의 설계가 결합된 시험제작차는 1971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첫선을 보였고, 미우라 이상의 찬사와 호응이 이어졌다. 제네바에서 람보르기니가 L112에 붙인 이름은 쿤타치(Countach) LP500이었다. 개발 초기에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았던 쿤타치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놀라움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모델 이름 뒤의 LP500은 구동계를 차체 뒤쪽 세로로 배치했다는 뜻의 이탈리아어(Longitudinale Posteriore)의 머리글자와 원래 L112에 얹으려고 시험제작한 V12 엔진의 배기량인 5,000cc를 뜻하는 것이다.

제네바 모터쇼 이후에 L112 프로젝트는 큰 변화를 겪었다. 프로토타입에서는 강판을 용접한 세미 모노코크 타입 섀시를 썼지만, 특별한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했던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파이프 용접 스페이스 프레임을 새롭게 설계했다. 스페이스 프레임은 당시 경주차에 널리 쓰이던 구조로, 제작 시간과 비용은 많이 들지만 가볍고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자동차 전문 금속가공업체인 마르케시(Marchesi)가 스탄자니 설계에 맞춰 제작한 스페이스 프레임은 무게가 프로토타입에 쓰인 세미 모노코크 구조보다 17kg 가벼운 90kg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페이스 프레임의 특성상 도어 아래쪽으로 섀시가 큰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승하차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려면 일반적인 도어 구조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앞쪽에 경첩을 두고 도어를 위로 들어올려 여는 방식의 이른바 시저 도어(scissor door)가 쓰이게 되었다. 

시속 300km 벽을 깬 첫 람보르기니

2년 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양산 설계로 제작된 두 번째 프로토타입이 1973년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되었다. 원래 계획과 달리 엔진은 냉각 문제 때문에 V12 5.0리터 대신 1968년에 나온 4인승 GT인 에스파다에 쓰인 V12 4.0리터의 성능을 높여 썼다. 최고출력은 카뷰레터를 대형화하고 캠 타이밍을 조절해 350마력에서 375마력으로 높아졌다.

냉각성능을 높이기 위해 차체 외부에는 간디니가 디자인한 시험제작차에는 없던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엔진룸으로 충분한 공기가 공급되도록 뒤 펜더 위에 외부로 돌출된 공기흡입구가 추가되었고, 도어와 뒤 펜더를 잇는 부분에는 NACA 덕트가 생겼다. 대량생산을 고려해 스페이스 프레임 설계도 2년 전에 만들어진 시험제작차에서 크게 달라졌다.

앞뒤 서스펜션은 더블 위시본 방식이었고, 미우라에서 지적되었던 제동성능을 의식해 엔진의 높은 출력에 걸맞게 브레이크도 보강했다. 가벼운 섀시와 알루미늄 보디 덕분에 차체 무게는 1,065kg에 불과했다. 양산 모델의 최고속도는 시속 309km로 람보르기니 차 중 처음으로 시속 300km의 벽을 깼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5.4초였다.

람보르기니는 쿤타치를 한정 판매할 계획이었다. 시속 300km에 이르는 뛰어난 성능을 지닌 차인만큼 경주차를 운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팔 생각이었다. 일반 승용차와 차별화하기 위해 내장재도 최소화하고 에어컨도 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양산 단계에서 이런 계획은 모두 취소되고, 실내는 가죽과 스웨이드로 화려하게 꾸몄다. 쿤타치 개발이 한창일 무렵에 람보르기니의 트랙터 사업이 위기에 빠지면서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주식 절반 이상이 매각되었고, 설상가상으로 1973년에 석유파동이 일어나 고급 고성능 스포츠카 수요가 줄자 판매를 늘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양산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완성된 첫 차는 1974년이 되어서야 구매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이후로 26년 동안 이어진 쿤타치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한 LP400은 1978년에 부분적으로 개선된 LP400 S가 나올까지 모두 151대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미우라와 마찬가지로 대중적인 관심을 끌며 197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카 중 하나로 손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