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4월 3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한국지엠 사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지엠 노사는 3월 30일에 있었던 2018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7차 교섭에서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한국지엠 경영진은 노조측에 경영정상화를 위해 제시한 비용절감안을 포함한 수정안 수용을, 노조는 회사에 수정안 수용 불가와 더불어 회사 회생을 위한 향후 발전계획 등 노조측 요구안 수용을 촉구했다. 이처럼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교섭이 깨지면서 일단 GM 본사가 발표한 회생계획 일정은 틀어지게 되었다. 빠른 시일 내에 노사간 의견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군산공장 폐쇄와 구조조정 계획 발표로 시작된 한국지엠 사태는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사태의 흐름을 보면 과거 국내 자동차 업계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걱정스럽다. 지금 한국지엠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은 GM 본사의 경영실패에 있다는 지적은 과거 칼럼에서 쓴 바 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할 주체 역시 GM 본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국내에 생산과 판매, 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에 파급력이 큰 업종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나올 결과가 국내 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큰 만큼 이해관계 당사자 모두가 바람직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1980년대 이후 완성차 업계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노사간 갈등은 늘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갔다. 지금까지는 위기 상황 속에서 노사간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나서야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겨우 파국만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얕은 수준의 수습이 이루어지는 흐름의 반복이었다. 파국을 피한다고 해봐야 근본적으로는 완성차 업체 중심의 자동차 생산 시스템만큼은 돌아가게 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충격과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업체와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다만 문제 해결 과정과 그 이후를 대하는 입장은 업체 경영진과 노동자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영진은 어찌되었건 노동자에 비하면 선택할 수 있는 폭과 여유가 더 크다. 극한 상황에서 노조가 ‘끝까지 간다’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경영진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크고 타격을 입는 사람 수도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완성차 업체 노조와 노동자를 일방적 피해자라고 할 수는 없다. 완성차 업체 노조, 나아가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의 냉담한 시선에서도 알 수 있듯, 전체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소속 노동자전반의 이익을 모두 고려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규모와 상징성 면에서는 물론이고, 현실적으로도 자동차 생산 시스템에 속한 여러 업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처우의 방어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왔다는 뜻이다. 회사는 물론 노동자까지 절박한 상황에 몰릴 때까지 그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사회 곳곳의 목소리를 충분히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의 자동차 생산 시스템은 구성요소 중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만큼 치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물론 그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모든 부품이 한 곳에 모여 최종 상품인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완성차 업체다. 다른 구성요소는 완성차 업체의 위기대처 여력과 방법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가 흔들리면 해당 업체뿐 아니라 대다수 납품 및 관련 업체가 타격을 입는다. 한국지엠 직원 수는 1만 6,000여 명이지만, 한국지엠 노조에서조차 관련 업체 종사자 수를 3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지엠의 운명에 30만 명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뜻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적어도 두 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는 벌어진 문제를 놓고 이해관계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수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가 생긴 원인을 찾아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이다. 전자는 문제의 당사자인 노사가, 후자는 파급효과를 조율할 정부가 중심이 되어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 국내 자동차 업계 위기 상황에서는 전자조차 명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사간 극한대립의 해소가 급했던 정치권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유불리를 우선시해 문제를 대충 봉합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정부는 노사간 입장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미리 중재에 나서거나 경영 또는 고용 위기의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는 소홀했다. 이번에 한국지엠의 주요 주주인 산업은행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 이르기까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에서도 그런 점이 드러난다.
한국지엠 사태의 결말이 파국으로 이어진다면, 과거로부터 배운 교훈을 발전적 미래를 위한 바탕으로 삼지 못했음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번 일이 과거의 반복이 되지 않고, 사태 수습과 재발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