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에 영국 체셔주 크루에 있는 벤틀리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본사 생산 라인을 비롯해 뮬리너 스튜디오 등 여러 곳을 둘러보며 벤틀리의 이모저모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요. 늘 그렇듯 자동차 역사와 옛 차들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는 100년 넘는 벤틀리 역사의 주요 장면을 돌아볼 수 있는 벤틀리 헤리티지 개러지(Bentley Heritage Garage)를 둘러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헤리티지 개러지에는 벤틀리 헤리티지 컬렉션(Bentley Heritage Collection)이 소장하고 있는 차들 중 일부가 전시되는데요. 벤틀리 탄생 초기인 1919년부터 비교적 최근인 201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만들어진 차들 중 역사적 의미가 큰 차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전시되어 있던 차들의 사진과 간략한 이야기를 세 번에 나눠서 올립니다.
- 첫 번째 글: 벤틀리 헤리티지 개러지에서 만난 차들 (1) 크리클우드-더비 벤틀리 (이 글)
- 두 번째 글: 벤틀리 헤리티지 개러지에서 만난 차들 (2) 크루-비커스 벤틀리
- 세 번째 글: 벤틀리 헤리티지 개러지에서 만난 차들 (3) 폭스바겐 그룹 인수 이후
1919년형 3 리터 EXP 2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 흔히 W. O.로 줄여 불리기도 합니다)가 자신의 성을 내건 자동차 업체를 세운 것은 1919년 1월의 일입니다. 그가 처음 개발해 만든 자동차용 엔진은 직렬 4기통 3.0L 형식이었는데요.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만들기 전에 시험용 차 즉 프로토타입을 세 대 만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번째가 EXP 2입니다. EXP는 영어 ‘experimental’ 즉 시험용을 뜻하는 표현이었고요.
EXP 2는 현존하는 벤틀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차고, 1919년 10월에 W. O.가 영국 런던 올림피아 모터쇼에서 미완 상태의 엔진을 롤링 섀시에 얹어 전시했던 바로 그 차기도 합니다. 나아가 벤틀리가 처음 둥지를 틀었던 크리클우드(Cricklewood)에서 처음 완성된 차기도 하죠. 벤틀리가 이 차를 바탕으로 개발과 개선을 거듭해 첫 양산 모델인 3리터를 내놓은 게 1921년이었고, 그 전까지 EXP 2는 벤틀리의 ‘달리는 시험대’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경주에 여러 차례 출전하기도 했고요.
이 차는 개인이 소장했다가 1990년대 후반에 벤틀리가 사들여 복원했습니다. 벤틀리 헤리티지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초기에 합류한 차라서, 이래저래 벤틀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1926년형 3 리터

왼쪽에 있는 EXP2와 닮은 앞모습에서 알 수 있듯, 벤틀리의 첫 3.0L 엔진을 얹고 시험용 차를 발전시킨 섀시로 양산한 모델입니다. 벤틀리가 2022년 10월에 벤틀리 헤리티지 개러지를 처음 열었을 때 공개한 소장품 목록에 없는 걸 보면, 나중에 벤틀리가 매입했거나 개인 소장품을 빌려와 전시한 듯합니다.
원래 차체는 코치빌더 반덴플라(Vanden Plas)가 4도어 스포츠 형식으로 만들어 출고했고, 나중에 재제작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각진 앞 유리와 달리 날렵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다듬은 펜더가 눈길을 끕니다.




1930년형 6 1/2 리터 ‘스피드 식스’

벤틀리는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를 시작한 이후로 더 강력한 성능을 얻기 위해 차츰 엔진 배기량을 키워 나갔는데요. 처음에 3.0L였던 직렬 4기통 엔진은 1927년 무렵 4.4L 버전이 나와 4 1/2 리터(4 1/2 litre) 모델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1926년에는 더 크고 강력한 직렬 6기통 엔진을 개발했는데요. 배기량이 6.5L여서 그 엔진이 올라간 차의 이름은 6 1/2 리터(6 1/2 litre)가 되었습니다.
6 1/2 리터는 다양한 길이와 차체가 만들어졌는데요. 1928년부터는 스포츠 모델인 ‘스피드 식스(Speed Six)’가 추가되었습니다. 6.5L 엔진을 더 강력하게 조율했고, 섀시는 세 가지 길이로 만들어졌는데 스포츠 모델인 만큼 가장 짧은 모델이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일부는 경주용으로 만들어졌는데, 경주용 차는 길이가 더 짧았고요.
벤틀리 역사에서 르망 24시간 경주 출전과 우승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데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꼽자면 단연 스피드 식스가 될 겁니다. 1929년과 1930년에 르망 24시간 우승 컵을 벤틀리에게 안겨준 차가 바로 스피드 식스니까요. 아울러 한동안 어려움을 겪던 벤틀리의 굵은 자금줄로서 브랜드 명맥을 잇게 해 준 금융업자 울프 바나토(Wolff Barnato)가 고속열차 블루 트레인과 대결을 펼칠 때 쓴 차도 스피드 식스였고요.
전시된 차는 1929년에 출고될 때에는 세단 차체를 얹었지만, 2005년에 끝난 복원 작업에서 르망 24시간 경주에 출전했던 차와 같은 모습으로 개조되었다고 합니다. 벤틀리 헤리티지 컬렉션에는 2021년에 합류했고요.





1930년형 8 리터

W.O.는 큰 힘을 내는 엔진을 좋아했고, 큰 힘을 낼 수 있는 대배기량 엔진도 좋아했다고 합니다. 배기량이 크면 엔진 덩치도 커지고, 그런 엔진을 얹으려면 당연히 섀시와 차체도 커야 하죠. 그런 W.O.의 이상이 반영된 차가 1930년에 나온 8 리터(8 litre)입니다. 속된 말로 크고 아름다운 차가 아니라 진짜로 크고 아름다운 차가 8 리터죠.
이 차에 쓰인 직렬 6기통 8.0L 엔진은 그 시절에 엔진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술들이 두루 쓰였습니다. 크랭크케이스는 마그네슘 합금인 일렉트론(Elektron)으로 만들었고, 당시에 드물었던 오버헤드 밸브 시스템에 실린더 하나에 밸브 네 개를 달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이중 점화 시스템도 갖췄고요. 최고출력은 지금 기준으로는 대단할 것 없지만 당시로는 높은 수준인 203~228마력이었습니다. 당연히 당시까지 만든 벤틀리 가운데 가장 큰 차여서 값도 비쌌고요.
전시된 차는 회사차로 등록되어 W.O.가 실제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래 쓰지는 못했는데, 출시 시기를 보면 알 수 있듯 1929년에 미국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여파로 고급차 시장이 무너진 탓에 차는 팔리지 않고 회사는 주저앉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배기량을 반으로 줄인 4 리터도 내놓긴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결국 1931년에 벤틀리가 롤스로이스에 인수되는 계기를 만든 차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8 리터의 생산은 1932년까지 이어졌지만 생산량은 100대를 겨우 채우는 정도였습니다.
벤틀리는 이 차를 2006년에 매입해 원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원했습니다. 창업자의 애차로 회사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1934년형 3 1/2 리터

롤스로이스에 인수된 이후 벤틀리가 내놓은 첫 새 모델이 3 1/2 리터였습니다. 롤스로이스가 벤틀리를 인수하면서 생산 거점은 크리클우드에서 롤스로이스가 있던 더비(Derby)로 옮겨지는데요. 그곳에서 생산된 첫 벤틀리가 3 1/2 리터였습니다. 더비의 롤스로이스 공장에서 생산된 벤틀리들을 가리켜 ‘더비 벤틀리’라고 하는데, 3 1/2 리터와 나중에 엔진 배기량을 키운 4 1/4 리터가 그들입니다.
직렬 6기통 3.7L 엔진은 롤스로이스 설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진동이 작고 꽤 조용해서 3 1/2 리터에는 ‘조용한 스포츠카(Silent Sports Car)’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3단과 4단에 싱크로메시를 쓴 정교한 변속기도 부드러운 주행 감각에 일조했다고 하고요.
3 1/2 리터와 4 1/4 리터는 같은 급 롤스로이스보다 값이 쌌던 데다가 기계적 특성도 좋아서 잘 팔렸다고 합니다. 1933년부터 1940년까지 2,411대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이전까지 생산된 차들보다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전시된 차는 1934년 2월에 만들어진 초기형 모델로 코치빌더 드룹 앤 메이벌리(Thrupp & Maberly)가 만든 4도어 스포츠 세단 보디를 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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