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르노를 알아봅시다 (1) 126년간 쌓은 공력의 힘

2025 Renault 4 E-Tech electric / 2025 르노 4 E-Tech 일렉트릭

[ * 이 콘텐츠는 르노코리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것은 19세기의 일입니다.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역사가 100년이 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죠. 그 가운데서도 19세기에 세워져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더 적습니다. 르노가 그 몇 되지 않는 브랜드에 속한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역사가 그쯤 되면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이야기거리도 많을뿐더러 만만찮게 쌓인 공력이 그 시간을 지탱해 오는 바탕이 되고 있을 테니까요.

1898 Renault Type A / 1898 르노 타입 A

르노 가문 삼형제 가운데 막내인 루이 르노가 첫 자동차인 브와튜레트(Voiturette)를 처음 만든 것이 1898년 12월이었고, 형들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세우고 자동차 생산을 사업화한 것은 이듬해인 1899년 2월이었습니다. 이때 세워진 소시에떼 르노 프레르(Société Renault Frères)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르노의 뿌리고, 당시 본사와 공장을 세운 불로뉴비앙쿠르(Boulogne-Billancour)는 지금도 르노의 근거지입니다.

‘작은 자동차’를 뜻하는 브와튜레트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르노의 첫 모델 타입 A는 네 바퀴가 달렸을 뿐 한 명만 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하지만 루이 르노가 개발한 변속기와 구동계는 성능과 내구성이 뛰어나고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죠. 그 덕분에 꽤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이전까지는 선발업체인 드디옹 부통(De Dion-Bouton)으로부터 사서 쓰던 엔진도 1903년부터는 직접 개발한 것을 쓰기 시작했고요.

1909 Renault Type AG1 'Marne Taxi' / 1909 르노 타입 AG1 '마른 택시'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여러 초기 자동차 업체가 대부분 그랬듯 르노도 모터스포츠를 통해 성능과 내구성을 입증하며 명성을 얻으며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래서 1913년에 이르러서는 프랑스 1위의 자동차 업체로 발돋움하죠. 아울러 차종도 버스, 트럭 등으로 다양화합니다. 뛰어난 내구성 덕분에 택시로도 인기가 높았는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마른으로 병력을 수송한 파리 택시의 대부분이 르노 타입 AG였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신기술 개발이 늦어지고 같은 프랑스 업체인 푸조와 시트로엥이 새로운 기술과 모델을 내놓으며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푸조와 시트로엥에 판매 순위 윗자리를 내어줍니다. 게다가 2차대전 중에는 창업자 루이 르노가 나치의 괴뢰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1944년에 옥중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인 1945년에는 국유화되었고요.

1946 Renault 4CV / 1946 르노 4CV

국영기업이 되면서 르노는 재도약을 시작합니다. 전쟁 중 설계되어 1946년부터 생산, 판매되기 시작한 4CV는 합리적인 설계의 소형차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61년까지 장수한 4CV는 프랑스 차 처음으로 총 생산량이 100만 대를 넘길 정도였죠. 2차대전 이후 일본이 자동차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히노가 르노를 제휴선으로 삼아 생산했던 모델도 4CV였습니다. 지금은 히노가 토요타 그룹에서 상용차 생산에 전념하고 있지만, 4CV로 얻은 기술과 노하우는 초기 히노 독자 모델 승용차에도 이어졌습니다.

4CV로 재도약의 발판을 만든 르노는 이후 프레가트(Fregate), 도핀(Dauphine) 등 세단을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을 넓혀 나갑니다. 특히 도핀은 컨버터블 버전인 플로리드와 함께 미국 시장에 진출해 나름의 인기를 얻습니다. 나중에 폭스바겐 비틀이 큰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한동안 도핀이 미국 수입차 시장의 강자 역할을 하기도 했죠. 이들 모델의 성공에 힘입어 르노는 1950년대 말에는 세계 6위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발돋움했습니다.

1962 Renault 4L / 1962 르노 4L

1961년에는 르노의 첫 앞바퀴굴림 소형차인 4(Quatre, 카트르)가 등장해 4CV의 성공을 이어갑니다. 4는 당시 르노 회장인 피에르 드레퓌스(Pierre Dreyfus)가 제시한 ‘청바지 같은 차’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실용적 차로 개발되었고, 왜건 형태의 차체, 간결한 꾸밈새와 실용성 덕분에 출시 4년 반 만인 1966년 초에 누적 판매 100만 대를 넘길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4는 심지어 후속 모델 격인 6(1966년 출시)과 5(1972년 출시)가 나온 뒤에도 생산이 이어져, 1992년에 프랑스에서, 1994년에 슬로베니아에서 생산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800만 대가 넘는 차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프랑스가 전후 고도 성장한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 시기 르노를 대표하는 모델인 만큼 사회적으로도 영향이 컸고, 그래서 2025년에 그 디자인과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4 E-Tech로 부활할 수 있었고요.

1962 Renault 8 / 1962 르노 8

대략 1945년부터 1975년까지를 가리키는 ‘영광의 30년’에는 르노의 성장도 이어집니다. 스포티한 소형 세단 8(1962년 출시)과 중형 세단 10(1965년 출시)이 인기를 얻었고, 처음부터 소득이 높아진 프랑스 가정을 노리고 기획된 16(1965년 출시)도 호평을 얻습니다.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좌석 구성과 더불어, 대형 승용차에 처음으로 쓰인 해치백 구조는 차의 다목적성을 높였습니다. 이런 르노의 실용주의 설계 개념은 훗날 르노가 내놓는 대형 승용차들에도 영향을 줍니다. 1969년에 선보인 새 소형 세단 12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며, 1970년에는 프랑스 업체 처음으로 연간 생산량이 100만 대를 넘기기도 하죠.

‘영광의 30년’ 시기 르노의 정점은 1972년에 나온 5(Cinq, 생크)가 찍습니다. 시대를 앞선 디자인과 실용성, 경제성을 두루 갖춘 5는 현대적 소형 해치백 시대를 연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히 르노가 1973년에 벌어진 1차 석유파동 여파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죠. 그리고 다양한 엔진과 꾸밈새로 폭넓은 소비자층을 만족시켜, 4의 인기를 이으며 프랑스 소형차의 대표적 모델 중 하나로 자리를 잡습니다. 1973년에 스포츠카 업체인 알핀을 인수한 뒤, 1976년에 선보인 고성능 모델 5 알핀은 1세대 폭스바겐 골프 GTI보다 한 발 앞서 등장한 핫 해치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죠.

1972 Renault 5 / 1972 르노 5

이 무렵은 르노에게 확장의 시기였습니다. 동구권, 동남아, 북미 등에 자회사를 세우거나 현지 업체와 협력관계를 맺는가 하면, 소규모 업체들을 인수해 영역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르노의 자회사가 된 루마니아 다치아(Dacia), 미국 아메리칸 모터스(AMC)와의 제휴가 시작된 것이 이 무렵의 일이죠. 당시 AMC 산하에 있던 지프가 1983년에 내놓은 1세대 지프 체로키(XJ)의 개발에도 르노가 기술적으로 도움을 준 바 있습니다. 한편 석유파동 여파로 어려움을 겪은 다른 업체들과 기술제휴도 활발했는데요. 푸조, 볼보와 공동 개발한 ‘PRV’ V6 엔진이 그와 같은 제휴의 대표적 결과물입니다. 

그런 확장은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루어져, 포뮬러 원(F1)에서 본격적으로 르노의 이름을 볼 수 있게 되죠. 특히 르망 경주차 및 F1 경주차 엔진에 처음으로 터보차저 기술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대중차 업체로는 발빠르게 터보 엔진을 양산차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1984 Renault Espace / 1984 르노 에스파스

1984년에는 유럽형 MPV의 효시인 에스파스(Espace) 출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지만, 확장 전략에 많은 비용이 든 데다가 비효율적인 경영, 2차 석유파동 여파 등으로 1980년대 초반에는 위기에 처합니다. 결국 정부가 개입해 대대적 구조조정에 들어가, 자산 매각, 모터스포츠 철수, 대량 해고 등이 뒤따랐고, 1986년에는 극단주의 단체가 구조조정을 지휘한 조르주 베스(Georges Besse) 회장을 암살하는 충격적 사건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후 새로운 회장으로 임명된 레이몽 레비(Raymond Levy)에 의해 구조조정이 이어져, 르노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를 위한 새 모델들을 착실히 준비하죠.

그렇게 해서 등장한 대표적 모델이 5의 후속 모델격으로 나온 클리오(Clio)입니다. 클리오는 데뷔와 함께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된 것은 물론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어, 최근 선보인 5세대 모델까지 이어지는 르노의 대표 소형차로 자리매김합니다. 이어 1992년에 선보인 초소형차 트윙고(Twingo) 역시 색다른 디자인과 더불어 대박을 터뜨리고, 1996년에 선보인 3세대 에스파스와 1997년에 나온 메간 세닉(Megane Scenic)도 한층 더 발전한 공간과 편의성으로 유럽에 MPV 전성시대를 엽니다. 이들 모두 1987년에 르노 디자인 수장이 된 파트릭 르 케망(Patrick Le Quement)의 영향을 받은 모델로, 르노에서 디자인이 중요한 자산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9 Renault-Nissan Alliance announcement / 1999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발표

한편, 1990년대에는 르노에 큰 변화가 이어집니다. 1996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민영화되었고, 남미 그리고 냉전 종식 후 민주화된 여러 동구권 국가로 빠르게 확장합니다. 한편, 재정 압박 해소를 위해 당시 르노 총수였던 루이 슈웨체르(Louis Schweitzer)는 미쉐린으로부터 카를로스 곤(Carlos Ghosn)을 영입, 구조조정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소형 상용차(LCV) 분야에서 타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대형 상용차 부문은 정리하게 되고요. 그리고 1999년에는 일본 닛산과 연합체를 구성해 규모 확장과 비용 절감에 나서게 되고요. 우리나라 삼성자동차를 인수해 르노삼성이 탄생한 것도 그 무렵인 2000년의 일입니다.

21세기를 맞은 르노는 혁신적 디자인, 편리한 기술, 높은 안전성을 추구한 새 모델을 잇따라 내놓습니다. 그 가운데는 아방타임(Avantime)이나 벨 사티스(Vel Satis)처럼 좋은 평을 얻지 못한 모델들도 있었지만, 준중형급 메간과 다양한 MPV 라인업이 폭넓게 인기를 얻어 르노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듭니다. 이어 다임러와의 제휴를 통해 엔진과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한편, 다치아 브랜드를 재편성하며 시장에서의 틈새를 메워 나갑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수요가 MPV에서 SUV로 전환되는 흐름을 반영해 우리나라에서 QM5로 판매된 콜레오스(Koleos)와 QM3으로 판매된 캡처(Captur) 등으로 SUV 시장에 진출했고요.

2012 Renault Zoe / 2012 르노 조에

이후 디젤 게이트로 동력계 전략에 큰 변화가 필요해지고, 코로나19 대유행 등으로 시장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자동차 업계에 전동화 바람이 불게 되는데요. 르노는 그보다 앞서 2010년대 초반부터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전기차를 내놓아 주목받습니다. 소형 전기 해치백 조에(Zoe)는 테슬라가 첫 양산 승용 모델인 모델 S를 선보인 직후부터 생산되어, 2020년까지 프랑스 전기차 판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도시형 전기차 트위지(Twizy)도 새로운 개념으로 유럽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요.

이와 같은 전기차 개발과 투자는 꾸준히 F1에 참여하며 얻은 하이브리드 관련 노하우를 접목한 E-Tech 하이브리드 기술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덕분에 르노는 2010년대 후반부터 마일드 하이브리드에서 풀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을 양산 모델에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에 전기 동력원에 최적화된 순수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해 양산 모델로 내놓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죠. 

2024 Renault Rafale E-Tech 4x4 300 hp Atelier Alpine / 2024 르노 라팔 E-Tech 4x4 300 hp 아틀리에 알핀

한편, 2020년대 들어서는 전동화 및 디지털화 흐름에 걸맞도록 새로운 개발 전략과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전기차와 소프트웨어에 특화된 암페르(Ampere), 모빌리티 솔루션을 담당하는 모빌라이즈(Mobilize)를 세우고, 스포츠 모델과 모터스포츠 부문을 알핀(Alpine) 브랜드로 통합하는 한편, 중국 지리와 제휴를 맺고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는 호스 파워트레인(Horse Powertrain)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지리와 제품 개발 협력을 시작해 그 범위를 차차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르노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침은 있었지만 126년을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고요. 우리나라에서의 역사도 벌써 26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세계에 몇 되지 않는 글로벌 규모의 자동차 업체로서 꾸준히 폭넓은 제품과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는 것은 오랜 역사만큼 깊은 공력을 그 자체로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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