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C 브랜드가 며칠 전 티저 이미지로 2026년에 우리나라에 새 모델을 내놓겠다는 예고를 한 데 이어, 1월 27일에 ‘GMC 브랜드 데이’ 행사를 열고 그 모델들을 공개했습니다. 이미 출시를 확정지었던 허머 EV를 제외한 두 개 모델은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행사에서 그 주인공이 대형 SUV 아카디아와 중형 픽업트럭 캐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죠.

저는 허머 EV를 뺀 나머지 모델을 대형 SUV 유콘과 대형 픽업트럭 시에라로 예상했는데 모두 틀렸습니다. 지엠한국사업장의 모델 전략 전례를 염두에 두고 했던 예측인데, 비록 틀리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비슷하게 흘러간 측면도 있긴 합니다(변명이라면 변명일 수도).
왜냐하면, 어차피 수입 판매해야 하는 모델인 만큼 들여올 수 있는 모델에는 한계가 있고, 절차의 복잡함을 고려하면 덜 어렵고도 위험부담이 적을 모델 즉 이미 국내 인증을 받아 팔아봤거나 팔고 있는 모델을 들여오는 쪽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형제 모델인 GMC 유콘과 이미 팔고 있는 GMC 시에라의 새 모델이라고 예상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아카디아는 세대교체한 신형이긴 하지만 쉐보레 트래버스의 GMC 버전이고, 캐년은 쉐보레 콜로라도의 GMC 버전입니다. 콜로라도와 플랫폼, 동력계와 구동계를 모두 공유하고 같은 라인에서 생산되는 캐년을 들여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GMC 브랜드로 먼저 국내에 들어온 대형 픽업트럭인 시에라는 쉐보레 실버라도의 형제 모델이어서, ‘이미 콜로라도를 팔고 있는 쉐보레 브랜드에 실버라도를 추가하는 것이 낫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허머 EV 출시를 위한 사전포석 차원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GMC 브랜드 국내 판매 모델이 구체화되는 것을 보면서, 지엠한국사업장의 멀티브랜드 전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차 브랜드인 쉐보레의 경쟁력과 입지가 크게 약화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지엠한국사업장이 뷰익 브랜드의 국내 사업을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GMC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쉐보레 브랜드와 제품군의 한계를 본의 아니게 인정한 셈입니다. 현대나 기아와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같은 차급에서 비슷한 가격대와 장비로 맞서야 하는데, 국내 생산 모델이 아닌 이상, 나아가 국내 생산 모델이라 하더라도 경쟁력 있는 상품성과 가격대를 모두 맞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요가 많은 중형 및 준대형급 SUV에서 수입 판매하는 모델로 국내 소비자를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쿼녹스와 트래버스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뷰익이나 GMC 정도는 돼야 비싼 값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한 모델을 살 때 좀 더 비용을 들이더라도 선택사항을 추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GM이 거느리고 있는 브랜드들의 계층구조를 생각하면 쉐보레가 뷰익이나 GMC, 캐딜락과 동등하거나 넘어서는 수준의 장비를 갖출 수는 없으니까요.
지엠한국사업장의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보는데요. 솔직히 이르면 GM대우 베리타스 때, 늦어도 한국지엠 알페온 때 그런 작업이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당시 관계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지나간 이야기고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 별 의미는 없고요.
이번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카디아와 캐년은 모두 미국에서 생산되어 완제품으로 수입됩니다. 당연히 한미FTA에 따라 수입관세는 없고요. 그리고 두 모델 모두 상위 트림인 아카디아 드날리 얼티밋, 캐년 드날리가 들어오는데, 값은 아카디아가 8,990만 원이고 캐년이 7,685만 원입니다.

아카디아와 동급인 쉐보레 트래버스의 이전 세대 모델의 값이 국내 판매 중단 무렵인 2023~24년에 5,000만 원대 중반부터 6,000만 원대 중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카디아의 값은 확실히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인데요. 역시 쉐보레 트래버스와 형제차였던 캐딜락 XT6의 대체재라 생각하면 말이 되기는 합니다. XT6가 국내 판매를 중단한 2024~25년 무렵 값이 8,000만 원대 중후반이었으니, 그 뒤를 잇는 모델이라고 하면 대략 300만 원 남짓 오른 셈이니까요.
다만 캐딜락과 GMC의 브랜드 이미지 격차를 생각하면 그 역시 완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GMC도 SUV와 픽업트럭 부문에서는 GM의 브랜드 계층구조 안에서 뷰익과 맞먹는 프리미엄 브랜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최상위 브랜드인 캐딜락보다는 확실히 하위 브랜드가 맞으니까요.

한편 캐년은 형제 모델인 쉐보레 콜로라도가 7,279만 원에 팔리고 있어서 대략 400만 원 정도 차이가 나는 정도입니다. 꾸밈새와 장비 수준의 차이가 있기는 한데, 그 정도 값 차이가 소비자들에게 과연 설득력 있게 느껴질 지는 의문이네요.
다만 지엠한국사업장은 GMC와 캐딜락을 묶어 프리미엄 브랜드군으로 취급하고 그에 걸맞은 수입차 스타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름 주어진 조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의도는 알 수 있죠. 하지만 기본 보증기간은 3년/6만 km로 쉐보레 브랜드 차들과 다를 바 없고 전담 서비스 센터 접근성은 오히려 쉐보레 브랜드만 못하니, 픽업 & 딜리버리 같은 몇 가지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프리미엄 서비스라고 이야기하기는 그 역시 좀 무리가 있어 보이고요.
최근 이어지고 있는 원화약세 환율을 고려하면, 수입차에 관세 0%가 부과된다고 해도 국내 값을 끌어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캐딜락 아랫급 브랜드 차들의 값이 캐딜락급으로 올라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당연히 캐딜락 모델들도 값이 올라가겠지만, GM 내 브랜드 입지를 생각하면 GM 내부적으로는 부담이 아주 큰 수준은 아닐 겁니다.
물론 최근 들어 리릭이나 셀레스틱과 같은 전기차 중심으로 제품군을 재구성해 미래지향적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국내 소비자들에게 소구하겠다는 것이 지엠한국사업장의 생각이라면, 그 생각에 맞춰 국내에서 멀티브랜드를 운영하겠다는 전략 상 뷰익이나 GMC 브랜드 역시 제품을 수입해 팔아야하고 브랜드 체계를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듯합니다.
물론 소비자들이 그런 사정까지 이해하며 차를 구매할 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죠. 분명한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서의 GM 멀티브랜드 전략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만큼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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