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11월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자동차의 가장 큰 세가지 기능은 흔히 달리고, 좌우로 회전하고, 멈춰 서는 것이라고 한다. 안전한 주행을 위해서는 이 세가지 기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스포티한 주행을 즐기는 젊은 운전자들은 달리는 것에만 치중하여 자동차를 튜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 달리는 것보다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결과이다.
서는 것의 중요성은 위급상황이 발생했을때 더욱 느낄수 있다. 가까운 곳에서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피하는데 필요한 자동차의 기능은 달리기가 아니라 회전하는 것과 서는 것이고,그 중에서도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피하는 방법은 위급상황의 앞에서 정지하지 못했을 때 2차적으로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운전자들이 제동을 위해 브레이크 페달을 여러 번에 나누어 밟는 것을 볼 수 있다. 페달 나누어 밟기는 차량 무게중심의 이동을 교묘히 이용하여 승차자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제동을 하기 위하여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
주행중인 차에 제동을 걸면 관성에 의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게 되어 있다. 이런 상태로 발에 같은 힘을 준 채로 브레이킹을 계속하게 되면 앞바퀴에는 과중한 힘이 걸리지만 뒷바퀴에는 힘이 덜 걸려 차량의 밸런스가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앞으로 이동하는 순간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놓아 다시 무게중심을 뒤쪽으로 보내고, 다시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다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동작을 정지할 때까지 반복하면 무게중심의 이동이 줄어 제동거리도 짧아질뿐 아니라 승차자도 몸의 움직임이 격해지지 않아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브레이크 페달을 여러 번 나누어 밟는 방법이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어설픈 페달 나누어 밟기는 필요한 만큼 제동거리를 줄여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수도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급브레이킹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를 줄이면서 그 상황을 피해 나갈 수 있는 조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운전자는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지 않도록, 접지력 한계 내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다.
ABS장치가 있는 차량이라면 1초에 십수회 브레이크를 작동시켰다 끊어줌으로써 바퀴의 회전력을 살려 조향성을 확보해 주지만, ABS 장치가 없는 차량이라면 철저히 사람의 판단력과 조작능력에 의해 조향성을 확보 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브레이크 페달 나누어 밟기의 한계가 드러난다. ABS장치와 비슷한 효과를 내어보려고 브레이크 페달을 재빨리 나누어 밟지만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빨리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뗀다고 하더라도 1초에 2~3회가 고작이므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급한 상황에 있어서는 섣부른 브레이크 페달 나누어 밟기보다 접지력 한계 직전까지 단번에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이른바 스레스홀드 브레이킹(Threshold Breaking)이라고 하는 것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어도 브레이크 라이닝 패드가 브레이크 디스크나 드럼을 꽉 붙들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회전력이 유지되는 것을 이용한 브레이킹이다. 원래 브레이크 페달 나누어 밟기는 이 방법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주의할 것은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면 즉시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풀어주었다가 다시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접지력 한계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이러한 연습은 일반 도로에서 하는 것보다 자동차 메이커나 레이싱 팀에서 주최하는 드라이빙 스쿨에 참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안전하다. 타이어의 마모도나 노면의 상태에 따라 접지력을 잃는 한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ABS가 장착되어 있지 않은 차량을 운전하는 숙련되지 않은 운전자라면 이러한 방법보다 안전한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