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공기’를 가른다

[ GM대우 사보 ‘Driving Innovation’ 2007년 7~8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

차가 달리는 모습을 ‘바람을 가르며~’ 같은 표현으로 묘사한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차가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도 있지만, 차는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멈춰있는 공기도 뚫고 나간다. 관점의 차이라고나 할까? 내가 서 있을 때 공기가 움직이는 것이 바람인데, 공기가 서 있고 내가 움직이는 것을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뭔가 좀 어색하다. 운치는 없지만, 차는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것이 맞다.

공기는 엄연히 부피와 무게가 있는 물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차는 항상 공기 속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늘 공기와 부딪친다. 달리 말하자면 자동차가 달리는 것은 끊임없는 공기와의 싸움이다. 공기는 달리는 차에 맞서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려는, 즉 버티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천천히 달릴 때에는 공기도 차 주변으로 부드럽게 흩어지지만,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공기는 차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바뀐다. 빨라지는 속도만큼 일정한 시간 사이에 부딪치는 공기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내리는 빗속에서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달리면서 비를 맞을 때 옷이 훨씬 빨리 젖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우디의 르망 경주차인 R18. 날렵한 디자인은 빠른 속도를 내야하는 경주차에 필수적이다.
© Audi AG

달리는 차에 주는 공기의 부담을 공기저항이라고 한다. 이 저항은 일종의 마이너스 힘으로 작용해서 차가 속도를 붙여 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 차의 속도가 두 배가 될 때 공기저항은 제곱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시속 100km일 때의 공기저항의 힘이 50kg이라면 시속 200km에서는 2,500kg으로 엄청나게 늘어난다. 따라서 높은 속도를 내려면 낮은 속도일 때보다 훨씬 큰 공기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 경주차나 스포츠카에 힘 좋은 엔진을 얹는 것이 필수인 이유다.

그리고 차체가 날렵한 모양일수록 공기저항을 덜 받아 상대적으로 적은 힘으로도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래서 경주차나 스포츠카는 대부분 낮고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일반적인 승용차들도 시속 100km 이상의 빠른 속도를 내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용차 차체 형태도 날렵해지고 있다. 일단 날렵한 차체를 가진 차는 모나고 각진 차에 비해 적은 힘으로도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기저항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연료소모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공기저항(엄밀히 말하면 공기저항계수)이 10% 낮아지면 차의 연비가 2% 정도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차가 공기를 가르는 너비(전면투영면적)가 작아야 한다. 즉, 차가 공기를 가르기 시작하는 맨 앞부분이 점이나 선에 가까울수록 좋다. 쉽게 말하자면 앞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로켓이나 미사일과 같은 형태가 이상적이다. 그러나 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계적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모양의 차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달리기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부품들로만 만들어지는 경주차의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앞부분은 쐐기처럼 좁지만, 운전자가 타는 부분과 엔진 관련 부품 및 서스펜션 등이 모여 있는 부분은 부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으로 최고시속 100km의 벽을 깬 자동차인 자메 꽁땅떼(Jamais Contente). 110여년 전에 생각할 수 있었던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디자인은 이런 수준이었다.

이처럼 차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부피와 크기를 갖춘 덩어리 형태의 차체를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타고 다녀야 하는 일반 승용차는 말할 것도 없다. 정해진 크기에 맞춰 모든 기계 구성요소들은 물론이고, 사람이 타기에 편안할 만큼의 실내공간과 적당한 짐 공간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활용하기에 가장 좋은 형태는 모든 면이 평면이어서 낭비되는 부분이 없는 상자형이다. 그러나 차를 상자 모양으로 만들면 앞면 전체가 공기저항을 그대로 받게 된다. 공기저항 측면에서 보면 최악의 형태인 셈이다.

시내버스야 빨리 달릴 일이 없으니 사람 많이 태울 수 있는 상자형으로 만드는 게 최고. 물론 공기저항 면에서는 최악이다. © 현대자동차

차의 공기저항을 줄이자니 실용성이 떨어지고, 실용성을 높이자니 공기저항이 높아져 여러 면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차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한 1930년대 이후의 자동차 설계자와 디자이너들은 실용성을 갖추면서도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왔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요즘의 자동차인 셈이다.

주위에 있는 차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앞뒤 램프나 차체 겉부분의 자잘한 굴곡들을 빼면 전체적인 형태는 거의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자동차 장르인 4도어 세단 최신 모델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앞쪽이 낮고 뒤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차체,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진 지붕선을 갖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보아도 사람이 타는 공간이 가장 넓고 차의 앞쪽과 뒤쪽 끝은 가운데 쪽으로 살짝 모여 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유선형과 실용성을 높이기 위한 박스형 실내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 꼴인 것이다.

크라이슬러가 보유한 대형 풍동.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의 바람을 내기 위해 엄청난 힘을 내는 선풍기(ㅡㅜ)를 달았다. © DaimlerChrysler

가장 뛰어난 타협점을 얻기 위해 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은 차를 개발할 때 모형이나 실물을 가지고 인공적인 바람 속에 집어넣어 공기저항을 살핀다. 풍동실험이라 불리는 이런 테스트를 통해 어떤 부분은 깎거나 다듬고, 어떤 부분은 덧붙이는 식으로 차의 모양을 손보아 최적의 결과물을 얻어 낸다. 요즘에는 컴퓨터가 발달해 이런 실험을 컴퓨터로 하는 메이커들도 있다.

풍동실험을 통해 테스트하는 것은 차의 형태 뿐만은 아니다. 승용차에서 실내의 쾌적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풍동실험은 소음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공기가 차의 주변을 흐를 때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이 표면이 매끈할수록 바람소리가 적게 난다. 그러나 여러 부품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차의 표면이 완전히 매끈하게 이어질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펜더와 도어 사이의 틈새나 바퀴가 들어가는 부분, 양 옆으로 튀어나온 사이드 미러 같은 부분들은 빠르게 달릴 때 바람 가르는 소리의 원인이 된다. 이와 같은 부분들 역시 불쾌함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손질되어 양산차에 반영된다.

일반 소비자들이야 만들어져 나오는 차를 사서 몰고 다니면 되지만, 예나 지금이나 차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차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 무척이나 골치 아픈 일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골치 아픈 일을 묵묵히 해내어 멋진 차를 만드는 설계자와 디자이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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