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 동남아를 주름잡는 일본차를 보며

[ 월간 ‘자동차생활’ 2007년 11월호 ‘자동차 만담’에 실린 글입니다 ]

태국 푸켓에 여행을 갔다가 일본차가 도배를 하고 있는 거리 풍경에 놀랐다.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해 현지 여건을 고려한 제품을 내놓은 일본 메이커들에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내 메이커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라’는 격언을 잊지 않길 바란다

얼마전 여행차 태국 푸켓에 갔을 때, 공항 출입구를 나서면서부터 일본차가 도배를 하고 있는 거리 풍경에 놀랐다. 정체불명 메이커에서 나온 몇몇 대형 버스를 제외하면 서민의 발이라는 경 택시 ‘뚝뚝’부터 대형 SUV에 이르기까지 승용차와 RV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차들은 거의 전부라 해도 좋을만큼 일본 브랜드 차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미니밴 역시 토요타 하이에이스의 태국 현지생산 모델이었다. 그것도 지난 2004년 풀 모델체인지된 최신형. 주변을 둘러보아도 간간이 쌍용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브랜드로 OEM 수출한 이스타나가 눈에 띌 뿐, 여행사에서 쓰는 차들은 대부분 구형과 신형 토요타 하이에이스였다.

태국 푸켓을 점령하고 있는 일본차

2004년 쓰나미 이후 새차 구입이 늘었는지, 푸켓 거리에는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차들이 무척 많았다. 거리에 다니는 차들의 대부분은 소형 세단과 픽업 트럭이었다. 소형 세단은 아시아 지역 전략차종인 토요타 솔루나 비오스(일본명 벨타, 야리스 세단)와 혼다 시티 ZX(일본명 피트 아리아)가, 픽업 트럭은 이스즈 D-맥스와 형제차 시보레 콜로라도, 토요타 하이럭스 비고, 미쓰비시 트라이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새차뿐 아니라 오래된 차들도 일본차가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빨간색 일색인 태국형 택시 ‘뚝뚝’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다이하쓰 하이제트 일색이었다. 아무리 저개발국이라도 번화가에서는 벤츠나 BMW 같은 유럽 차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푸켓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유럽차 가운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특이하게도 볼보였는데, 그나마도 오가다 한 두 대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좋지 않은 기억력을 되살려 보더라도 지금껏 가본 나라 가운데 일본을 빼면 일본 브랜드 모델들이 이처럼 많은 곳은 드물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몇 년전 말레이시아 출장을 갔을 때에도 현지 메이커인 프로톤 차들을 빼면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대부분 일본차들이었다. 물론 동남아 많은 나라의 도로체계가 일본과 같은 좌측통행이라 일찍부터 운전석이 차 우측에 있는 모델을 만든 일본 메이커들이 자리잡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동남아도 아니고 좌측통행도 아닌 중국에서도 토요타 원박스카 하이에이스와 미니버스 코스터, 미쓰비시 델리카가 넘쳐났다.

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푸켓, 일본차의 물결 속에서 놀라는 사이 혼다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부가 태국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새삼 일본이 무섭게 느껴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 시장에서 국내 메이커, 국산차가 뛰어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상이 일본 메이커와 일본차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뚫지 못한 시장에서 이미 그들은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태국이든, 중국이든, 말레이시아든 주요 관광지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하는 차들은 대부분 적게는 2~3명, 많게는 10여 명의 사람들을 태울 수 있는 미니밴과 미니버스들이다.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관광을 즐기러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본 브랜드 차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오랜 시간을 일본차를 타고 보내게 된다. 중국이야 해외 메이커가 중국 현지 기업과 반드시 합작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차에는 중국 회사의 이름이 붙지만, 차의 앞뒤에 붙어있는 일본 메이커의 엠블럼은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런 ‘가외의 장식’도 필요 없는 다른 나라에서야 어떻겠는가.

시장에 맞는 제품이 소비자 만족시킨다

여행객들이 주로 쓰는 차들이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차들까지 일본차가 주름잡고 있는 것도 어색한 일은 아니다. 특히 픽업 트럭이 미국에서나 인기 있는 차라는 선입견은 태국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그러나 현지의 도로나 생활여건을 생각하면 픽업 트럭은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밖에 없다. 넓은 국토에 1년에 1/3이 우기인 자연환경, 도로여건이 썩 좋지 않으면서 승용차와 화물차의 개념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교통문화 등은 자연스럽게 자가용 수요를 픽업 트럭이 흡수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픽업 트럭의 짐칸에 화물 뿐 아니라 사람들이 타고 있는 것은 현지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료를 찾아보니 토요타와 혼다가 태국에 진출한 것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대전 후, 1964년 도쿄올림픽을 전후로 일본의 정치경제가 안정궤도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여러 일본 메이커들은 해외 진출을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수출을 뛰어넘어 현지에 생산기지를 갖춘 것도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외진출 초기에는 일본 내수 모델들을 현지 실정에 맞추어 조금씩 손보아 만드는 정도에 그쳤지만, 오랫동안 현지여건과 시장 흐름을 읽고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한 뒤에는 일본 내수용 제품과는 차이가 있는 현지형 제품을 만드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일찌감치 내수 소비자를 뛰어넘어 해외 소비자와 맞닥뜨리며 시장을 개척한 것이 동남아의 거리를 일본차가 수놓게 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쯤, IMF 이후 태국 시장에서 철수했던 국내 모 메이커가 태국에 재진출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태국 방콕에 전시장과 서비스 센터를 새로 열고 손님맞이에 나섰다는 것이다. 아울러 태국에 아세안(ASEAN) 시장을 위한 생산기지를 세우고 본격적인 아태지역 개척을 시작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해당 시장을 분석해 다시 진출하면서 내놓는다는 모델들은 현지에서 대중성이 적어보여서 걱정스럽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상품이든 시장에 맞는 제품을 내놓아야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모쪼록 새로 세워질 현지공장에서는 현지 실정에 맞게 개발되어 많은 현지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차를 생산해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나아가 세계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관광지에서 많은 이들이 접하게 되는 여행용 차가 주는 광고효과도 무시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즐거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찾은 곳에서 경험한 자동차 메이커의 이름과 제품은 여행의 일부가 되어 세계인들의 기억속에 남게 될 것이다. 몇 년 뒤 다시 태국을 찾았을 때 국산 미니밴과 픽업 트럭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무척 흐뭇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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