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로 달리는 자동차

[ GM대우 사보 ‘Driving Innovation’ 2007년 11~12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

1980년대 초, 제2차 석유파동으로 휘발유 값이 치솟으면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쳤다. 갓 유치원을 떠나 초등학교를 다니던 필자는 그 시절에도 이미 자동차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석유파동이 자동차에 가져온 변화가 흥미로웠다.

어느 날 갑자기 신문광고에 나온 어떤 차의 사진은 다른 부분은 잘 팔리고 있는 여느 승용차와 똑같은데, 보닛 한가운데가 낯설 만큼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곤 ‘경제성이 뛰어난 디젤 엔진을 얹었다’는 식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옛 새한자동차의 로얄 디젤 신문광고. 유난히 툭 튀어나온 보닛은 고성능차의 상징인 파워 돔…. 이 아니라 디젤 엔진이 높아 부풀려 놓은 것. 당시 로얄 디젤에 쓰인 1.9L 디젤 엔진은 오펠에서 직수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리를 다니는 택시의 뒤꽁무니에 ‘LPG’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인 차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모든 택시의 트렁크 안에는 집에서 쓰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LPG 가스통이 길게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휘발유에 비하면 디젤 엔진에 쓰는 경유나 LPG차에 쓰는 LPG 값은 그래도 싼 때문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휘발유 값이 비싸면 당연히 휘발유를 대체할 다른 연료가 인기를 끌게 된다. 마치 배추 값이 오르면 깍두기 담그는 집이 늘어나듯 말이다.

자동차라는 것이 연료를 태워 움직이는 기계인 만큼, 연료 값은 곧 자동차를 쓰는데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연료비가 오르면 자동차를 굴리는 사람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까운 거리를 출퇴근하는 사람들이야 불편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겠지만, 차를 생계수단으로 쓰는 사람들이나 운수사업자들은 연료비가 오르내리는 것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1970~1980년대의 석유파동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더라도, IMF 경제위기를 겪었던 사람이라면 비슷한 충격파를 온몸으로 받았을 테니까. 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휘발유 소비를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연료비에 원가보다 많은 세금을 붙이면서 자동차용 연료 값 상승은 석유파동 때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게다가 중동의 정세불안, 중국 등 신흥경제대국의 연료소비 급증 등 새로운 이슈들이 줄줄이 생기면서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연료 값이 높아졌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저개발국에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연료 값이 싼 편이지만 다른 물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는 꽤 비싸고, 실질적으로 자동차가 주는 혜택을 누리는 국민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가 보편화된 나라들은 끝 모르고 오르는 연료 값의 압박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자원이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국민 개개인은 가계부담을 덜 수 있는 경제적인 연료가 절실한 때다.

요즘 택시들은 거의 모두 LPG를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싸니까. ©서울특별시

석유파동 때만 해도 경유나 LPG 같은 휘발유 대체연료들은 그래도 부족하지 않게 쓸 수 있었지만, 사실 이들 모두 휘발유와 마찬가지로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원유 값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이들의 값도 오르게 된다. 게다가 석유파동 때도 ‘앞으로 캐낼 수 있는 원유는 몇 십 년 어치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지금도 정확히 얼마만큼 원유가 남아있는 지는 아무도 뚜렷하게 얘기하지 못한다. 이미 한 번 겪은 불안을 다시 겪기는 싫은 것이 사람들의 심리라, 여러 나라 정부와 과학자들은 아예 원유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연료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원유고갈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체연료 연구는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친환경’이라는 또 다른 목적이 따라붙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흔히 화석연료라고 불리는 휘발유, 경유, LPG 등 주요 자동차용 연료는 엔진에서 타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남은 찌꺼기들을 공기 중으로 뿜어낸다. 자동차 배기가스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람의 건강은 물론 지구의 환경도 위협하는 성분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정부차원에서 환경과 관련된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자 자동차 메이커들이 발 벗고 나서 이런 유해물질을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자동차가 화석연료를 쓰는 한 유해 배기가스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친환경 대체연료’가 요즘 자동차 세계의 큰 관심거리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친환경 대체연료는 미래의 동력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 연료전지처럼 낯선 개념이나 기술과는 별개의 것이다. 그냥 지금 내 차에 휘발유나 경유를 주유하듯이 대체연료로 차의 연료탱크를 채우고, 지금 내 차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구조와 작동방식의 엔진이 거의 그대로 쓰이는 것이다. 다만 원료에서 연료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물론 엔진에서 타고 나오는 찌꺼기도 화석연료만큼 환경에 해롭지 않다는 것이 다르다. 이런 친환경 대체연료는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험적으로, 또는 본격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들도 많다.

국내의 디젤은 대부분 일반 경유 95퍼센트에 바이오디젤 5퍼센트를 섞은 BD5이지만, 시험적으로 일반 경유 80퍼센트에 바이오디젤 20퍼센트를 섞은 BD20도 쓰이고 있다. 물론 아직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디젤 생산량도 적은데다… 배경은 참 복잡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내에서도 부분적으로 쓰이고 있는 바이오디젤이다. 바이오디젤은 연료로서의 특성은 디젤 엔진에 쓰이는 경유와 비슷하지만, 연료의 원료가 되는 기름을 원유가 아닌 식물에서 뽑아낸다는 것이 특징이다. 바이오디젤의 원료는 사람이 먹어도 되는 기름, 예를 들어 유채기름이나 콩기름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식용기름들이 정제와 처리과정을 거치고 나면 일반 디젤 엔진의 연료로 쓸 수 있게 된다.

또한 식물에서 추출한 알코올도 자동차용 연료로 각광받고 있다. 바이오디젤이 디젤 엔진에 적합하다면, 알코올은 휘발유와 비슷한 특성을 갖기 때문에 현재의 휘발유 엔진을 개조하면 곧바로 연료로 쓸 수 있다. 사탕수수 등 알코올을 얻기 쉬운 식물 원료가 많이 재배되는 브라질에서는 100% 알코올을 연료로 쓰는 차들도 이미 많이 쓰이고 있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휘발유에 알코올을 일정비율 섞은 연료의 보급이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미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E85 연료. 식물성 에탄올 85퍼센트에 휘발유 15퍼센트를 섞은 연료다. Photo by J. Emilio Flores for General Motors

바이오 디젤과 알코올 혼합연료는 식물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화석연료 엔진에서 나오는 유해한 성분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배기가스에 섞여 지구온난화의 주범 취급을 받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만들어내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자동차의 유해 배기가스를 모두 없앨 수는 없지만 꽤 많이 줄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는 바이오매스 연료라는 것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바이오매스 연료란 각종 식물과 폐기물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연료를 말한다. 바이오디젤은 주 원료가 식용식물이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면 식량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바이오매스 연료는 발효과정을 통해 음식물 쓰레기나 사람 및 동물의 배설물, 심지어는 나무나 풀 등 썩을 수 있는 모든 것들에서 연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미래에는 연료를 태워 배기가스를 내놓는 차가 사라지고 전기차가 보편화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전기차가 폭넓게 쓰이기까지는 아직도 수십 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 전까지는 석유에서 나오는 연료를 대신하면서 환경오염이 적은 친환경 대체연료를 쓰는 차들이 우리의 발이 되어줄 것이다.

식물에서 원료를 얻는 연료가 널리 쓰이게 되면 세상은 화려한 색깔의 꽃과 푸른 잎으로 덮이고, 자동차의 배기구에서는 향기롭고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바이오매스 연료가 사랑받게 되면, 쓰레기조차도 귀한 자원으로 소중하게 다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집 주변 텃밭에 심어둔 고구마가 당신의 차를 굴릴 연료로 탈바꿈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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