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에 힘을 불어넣는 바람개비, 터보

 [ GM대우 사보 ‘New Ways, Always’ 2008년 5/6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

요즘은 자동차의 성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그런 차들이 많이 줄었지만, 20년 쯤 전만 해도 우리나라 자동차들 가운데에는 실속보다 외형에만 신경 쓴 차들이 많았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남들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중형차의 차체에 소형차에 들어가는 작은 엔진을 얹은 차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자동차 메이커들은 그런 차들을 ‘실속 있는 차’라며 소비자들을 꼬드겼고,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많은 소비자들은 그런 꼬드김에 곧잘 넘어가곤 했다. 

물론 오래지 않아 소비자들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비교적 싼 값에 실내공간이 넉넉하고 편의장비가 많은 차를 살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운전자들과 함께 언덕이 많은 우리나라의 복잡한 지형은 작은 엔진을 얹은 큰 차의 폐단을 쉽게 드러내 주었다. 신호대기로 정지선에 서 있다가 출발할 때나 오르막길을 만났을 때, 그런 차들은 운전자들의 울화통을 치밀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차가 충분히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을수록 소음과 진동은 심해지고, 그만큼 엔진에 무리를 주어 차의 수명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엔진은 차의 크기에 맞는 적당한 힘을 내어야 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신진-GMK-새한-대우는 알게모르게 여러 의미로 참 많은 일을 했다

그러면서 차의 크기에 따라 기준이 되는 엔진 배기량도 나뉘어지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소형차는 1.2~1.4L, 준중형차는 1.6L, 중형차는 2.0~2.5L 정도로 거의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의 지속으로 커지는 유류비 부담에 따르는 소비자들의 딜레마가 만만치 않다. 예를 들자면 마음은 유류비 적게 드는 소형차가 당기지만, 중형차의 넉넉함과 편안함을 포기할 수는 없는 심정 같은 것 말이다. 게다가 한창 타고 다니는 차를 쉽게 팔수도 없는 일.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배기량이 작은 엔진으로 큰 차에 알맞은 넉넉한 힘을 낼 수는 없나?’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배기량이 작은 엔진이라면 자동차세도 적게 낼 수 있고, 아무래도 큰 엔진보다 연료도 적게 소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떠오를 것이다.

엔진이 큰 힘을 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엔진으로(정확히 말하면 엔진의 실린더로) 들어가는 공기와 연료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즉, 엔진은 공기와 연료를 더 많이 태울수록 더 큰 힘을 낸다. 배기량이 큰 엔진이 작은 엔진보다 더 큰 힘을 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배기량의 엔진으로도 큰 힘을 내는 방법이 있다. 흔히 ‘터보’라고도 부르는 터보차저(turbocharger)를 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터보차저는 고성능 차를 위한 기술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 운전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터보차저의 모습. 실제 모 국내 브랜드 차에 쓰인 터보차저다. ©General Motors

터보차저는 사실 자동차보다 비행기에 먼저 쓰인 기술이다. 20세기 전반에 널리 쓰인 프로펠러 비행기의 엔진 구조는 자동차용 엔진과 비슷한데, 비행기가 점점 높이 날게 되면서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권의 공기 밀도가 낮아져서, 낮은 고도에서 날 때보다 엔진의 성능이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자들이 찾아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낸 장치가 바로 터보차저였다. 터보차저를 쓰면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의 밀도가 높아져, 높은 고도에서도 낮은 고도를 날 때와 비슷한 성능을 얻을 수 있었다.

터보차저는 쉽게 얘기하면 엔진의 배기가스를 이용하는 바람개비다. 배기가스는 배기 파이프를 통해 엔진 밖으로 나오는데, 배기가스가 나오는 길목에 바람개비를 달아 배기가스가 나오는 힘으로 바람개비를 돌린다. 그리고 바람개비의 반대편에는 비슷한 모양의 바람개비가 하나 더 달려 있는데, 이 두 개의 바람개비는 회전축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배기가스의 힘으로 돌아가는 바람개비는 반대편 바람개비를 같은 속도로 회전시킨다. 이때 반대편 바람개비는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의 길목(흡기구)에서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빨아들이는 펌프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엔진에서 배기가스가 빨리 나올수록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의 양은 더 많아진다.

터보차저를 옆에서 본 그림. 왼쪽이 배기가스가 돌리는 바람개비, 오른쪽이 흡기를 압축시키는 바람개비다. © General Motors

일반적인 엔진은 실린더 안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피스톤이 아래로 내려갈 때 실린더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자연적으로 바깥에 있는 공기를 끌어당긴다. 그래서 엔진이 빨아들이는 공기의 양은 엔진의 실린더 크기보다 커질 수 없다. 그런데 터보차저의 흡기구 쪽에 달린 펌프는 엔진이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는 공기보다 더 많은 공기를 엔진으로 우겨 넣는다. 일반적으로 터보차저는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1.5~2배 정도로 압축시켜준다. 두 명이 들어가기도 벅찬 크기의 방에 서너 명의 사람을 우겨넣으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열 받기 마련. 그 사람들의 짜증이 폭발하는 힘은 아마도 터보차저로 압축된 공기와 연료가 폭발하는 힘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기가 압축되기 때문에 실린더 안의 공기 밀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엔진의 실린더로 들어가는 공기와 연료의 양이 일정한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실린더로 들어가는 공기가 많아지면 이에 비례해서 공기와 섞이는 연료의 양도 늘어난다. 터보차저를 단 엔진이 대부분 일반 엔진보다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터보차저의 흡기/배기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배기가스,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흡기다. 배기가스가 바람개비를 돌리면 흡기쪽 펌프가 작동되고, 여기에서 흡기가 압축되어 엔진으로 들어가게 된다. ©General Motors

그러나 같은 힘을 내는 엔진이라면 일반적으로 배기량이 큰 엔진보다 터보차저를 더한 작은 엔진이 소비하는 연료가 더 적다. 그리고 터보차저가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엔진 회전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빨라져 배기가스가 빠르게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일반 엔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연료만 소비한다. 또한 배기가스는 에너지가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터보차저는 엔진의 효율을 높이는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엔진이 천천히 돌 때, 즉 공회전 때나 정지상태에서 출발해 막 가속을 시작할 무렵에는 배기가스가 터보차저를 충분히 회전시킬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도 엔진 힘을 높일 수 있을 정도로 압축되지 않는다. 그래서 터보차저가 공기를 충분히 압축시키는 시점에 이를 때까지는 상대적으로 엔진의 힘이 약하게 느껴지기 쉽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터보 랙(turbo lag)라고 부른다. 풀어서 말하자면 터보차저의 반응 지체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터보 랙이 터보차저가 달린 차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터보 랙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들이 등장해, 더 이상 터보 랙을 느끼기 힘든 차들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보닛 후드를 열어 보면 이 엔진(2.0L 에코텍 직접분사 터보)이 들어있는 차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중고차 시장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General Motors

터보차저는 배기가스의 높은 온도에도 견뎌야 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1분에 10만 번 이상) 돌기 때문에 정밀도와 내구성이 매우 중요한 정밀부품이다. 그만큼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여러 모로 쓸모 있고 고마운 바람개비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몇몇 해외 메이커에서는 일정한 성능을 유지하면서 연료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배기량이 큰 엔진 대신 배기량이 작은 엔진에 터보차저를 더한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고유가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성능을 얻기 위해 주로 쓰였던 자동차의 터보차저가 이제는 고효율을 위해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