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GM대우 사내보 ‘고객사랑’에 실린 글입니다]

어느 나라든 큰 전쟁이 끝나면 대부분 출산율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은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1946년부터 1957년 사이에 무려 7,600만 명의 아이들이 새로 태어났다.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로 불리는 이 아이들 덕분에 미국의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은 마치 물결처럼 온 미국을 뒤덮어 나가기 시작했다.

베이비 붐 세대가 가져온 변화에 가장 주목한 것은 역시 기업가들이었다. 그들에게 베이비 붐 세대는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였고, 그들의 지갑을 여는 것이 곧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소비자들은 특별한 이유가 생기지 않으면 새로 차를 살 때에 이전에 샀던 브랜드의 차를 계속해서 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처음 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브랜드의 차에 만족한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그 브랜드의 차를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새차를 살 시기가 된 베이비 붐 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다면 앞으로 그들에게 꾸준히 차를 팔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자동차 메이커들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차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했다.

1955 Ford Thunderbird, convertible.
1955년형 포드 선더버드 ©Ford Motor Company

베이비 붐 세대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 1950년대에는 크고, 빠르고, 멋진 차들이 미국 거리를 가득 메웠다. 제트 전투기와 로켓의 영향을 받은 날렵한 디자인에 크고 높은 출력을 내는 엔진을 얹은 빠른 차들은 미국의 경제호황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이 시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로 자리 잡은 시보레 콜벳(Corvette)과 포드 선더버드(Thunderbird)가 등장했고, 크라이슬러는 300 시리즈를 내놓아 미국식 대형 고성능차의 대명사인 머슬카(muscle car)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이런 차들의 탄생을 보며 자연스럽게 속도와 고성능에 친숙해진 이들은 자신들의 첫 차 역시 멋지고 빠른 차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이거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의 주머니 형편이 그들의 욕구만큼 넉넉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된 스포츠카들은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나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자동차 메이커들이 젊은 소비자들을 노리고 만든 차들은 거의 평범한 승용차를 조금 스포티하게 꾸민 데 지나지 않았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정말 만족시킬 만한 차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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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포드가 만든 콘셉트 카에 머스탱이라는 이름이 먼저 붙었다 ©Ford Motor Company

이런 와중에 포드는 베이비 붐 세대가 좋아할 만한 차를 다른 메이커들보다 일찍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준비과정은 리 아이어코카(Lee Iaccoca)라는 인물이 이끌어 나갔다. 1924년생인 그가 포드의 부사장이 된 것은 1960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중역에 오른 그는 포드의 어느 중역들보다 베이비 붐 세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고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내 새로운 차를 개발하기 위해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시장과 소비자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들이 만들어낼 차의 틀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어코카의 팀은 젊은 소비자들이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그래서 ‘디자인은 멋있고, 성능은 뛰어나고, 값은 싼 차’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결론을 얻어냈다. 멋진 디자인에 뛰어난 성능을 가진 차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값 싼 차를 만드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값 싼 차를 만들려면 개발에 드는 비용을 줄이거나 생산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두 가지 방법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몇 해 전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차가 판매에 실패해 큰 손실을 본 포드는 자금여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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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 모델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포드 디자이너들 ©Ford Motor Company

아이어코카의 프로젝트 팀은 두 가지 해결방법을 찾아냈다. 우선 생산비를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고객층을 넓게 고려했다. 차가 많이 팔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산비용은 낮아지게 되는데, 그렇게 하려면 소비자를 젊은 층으로 한정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프로젝트 팀은 기본 차체는 스포티한 한 가지 스타일만 만드는 대신, 추가할 수 있는 선택장비를 다양하게 마련해 폭넓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음으로 개발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미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는 소형차 팰컨(Falcon)의 설계와 부품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덕분에 일반적인 새차 개발비의 1/4 정도의 비용만 들여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준비가 착실히 진행되었지만, 포드의 경영진은 쉽게 새차의 생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과연 젊은 세대가 회사에 수익을 안겨줄 만큼 충분히 많은 차를 사줄 것인가’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회사의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경영진 내의 의견은 부정적이었지만, 아이어코카의 끊임없는 설득에 회장인 헨리 포드 2세와 경영진들은 결국 새차 생산을 허락하고 말았다. 이내 멋진 디자인이 완성되었고,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차의 이름은 머스탱(Mustang)으로 결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맹활약한 전투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이 이름은 당시 사람들의 기억에 살아있던 멋진 전투기의 이미지와 함께 미국 서부개척시대 황야를 달리던 야생마의 느낌이 함께 담긴 매우 미국적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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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머스탱은 1964년에 등장했다. 사진은 컨버터블 ©Ford Motor Company

1964년 4월 16일, 포드는 미국의 3대 공중파 TV에 동시에 머스탱 광고를 내보냈고, 그 다음날 뉴욕 세계박람회장에서 차를 공개하는 것과 동시에 전국 전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대대적인 광고에 힘입어 판매를 시작한 뒤 1주일 동안 400만 명이 머스탱을 보기 위해 미국 각지의 포드 전시장을 찾았고, 차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대기목록은 점점 길어졌다. 포드는 머스탱이 1년에 10만 대 정도 팔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불과 네 달 만에 1년 판매 예상대수를 넘어섰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포드는 머스탱 생산공장을 세 곳으로 늘려야 했다. 판매가 시작된 지 1년 뒤인 1965년 4월 16일까지 팔린 머스탱은 41만8,812대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네 배 이상 팔린 것은 물론 뿌리가 된 팰컨이 기록한 포드의 연간 최대판매기록을 깨뜨리기까지 했다. 포드나 아이어코카도 그만큼 머스탱이 인기를 끌줄은 몰랐다. 2세대 모델이 나온 1967년까지 팔린 머스탱은 128만8,557대에 이르렀다.

머스탱의 인기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스포츠카 팬들이 좋아할 만한 멋진 스타일도 그 가운데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4개의 엔진과 7개의 변속기를 포함해 모두 80가지 이상의 선택장비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도록 해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고루 충족시켜준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기본 모델의 값은 사회 초년병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쌌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차 값의 1/3 정도 되는 비용을 선택장비에 투자했다. 또한 2인승 스포츠카처럼 생겼으면서도 작지만 제대로 된 뒷좌석을 갖춰 4명이 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머스탱은 주말 드라이브용 차를 원하는 여성이나 어린아이가 둘 딸린 젊은 부부에서부터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는 스포츠카 매니아들까지 폭넓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1965 Ford Mustang K-Code
© Ford Motor Company

이후로 머스탱과 비슷한 개념의 차들에는 머스탱의 조랑말 엠블럼에서 유래한 ‘포니 카'(pony car), 1960년대 중반에 젊은 시절을 보낸 미국인들에게는 ‘머스탱 세대’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머스탱은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고, 모든 세대를 통틀어 900만 대가 넘게 팔린 장수 인기 모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