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가 SUV 붐을 배경으로 단종된 지 25년 된 소형 오프로더 브롱코를 부활시켰죠. 그리고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브롱코는 사다리꼴 프레임 위에 차체를 얹은, 전통적 네바퀴굴림 오프로더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1996년에 오리지널 브롱코가 단종된 뒤로 미국에서 이런 개념의 차는 지프 랭글러 하나 뿐이었죠. SUV가 시장의 대세가 되고, 폭넓은 소비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4도어 모델이 나온 뒤로 독특한 개성을 지닌 랭글러가 불티나게 팔리는 걸 본 포드가 작심하고 만든 차가 새 브롱코입니다.

새 브롱코는 2도어와 4도어로 나오는데요. 포드 코리아가 우리나라에 들여온 모델은 4도어고, 일상용과 오프로드 주행 특성을 고루 고려한 아우터 뱅크스(Outer Banks) 트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지프 랭글러 라인업 중에서는 오버랜드(Overland) 트림과 성격이 비슷합니다. 굳이 따지면 사하라(Sahara) 트림쪽에 더 가깝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 팔리지 않고 있으니까요.

완전히 같은 시장을 노린 모델은 아니지만 성격이 비슷한 만큼 브롱코와 랭글러를 비교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래서 브롱코 4도어 아우터 뱅크스와 지프 랭글러 4도어 오버랜드를 주요 제원 중심으로 비교해 보기로 했습니다.
[ 차체 및 동력계/구동계 ]

우선 주요 수치를 놓고 비교해 보죠. 차체는 길이와 휠베이스는 랭글러가, 너비와 높이는 브롱코가 더 큽니다. 좌우 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 트랙은 브롱코가 더 넓고요. 차체 길이에 비하면 휠베이스 차이는 작은데요. 겉에서 보기에는 브롱코의 앞뒤 오버행(차체 끝부분과 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이 더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랭글러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차중량은 모두 2톤이 넘고, 그러면서도 브롱코가 185kg 더 무겁습니다. 너비와 높이가 차 무게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지는 않은 만큼, 더 나가는 무게는 더 큰 엔진을 얹은 영향이 있어 보입니다. 랭글러의 직렬 4기통 엔진에 비하면 브롱코의 V6 엔진이 배기량도 더 크고 터보차저도 하나 더 들어가는 만큼 크고 무거울 수밖에 없죠.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모두 브롱코가 우위를 차지합니다. 연비 때문에라도 효율 좋은 변속기를 얹어야 하니, 포드는 10단 자동변속기를 씁니다. 그렇지만 역시 무게와 엔진 배기량의 한계를 넘어서기는 어렵겠죠. 그래서 공인 연비는 랭글러 쪽이 10% 정도 더 뛰어납니다.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은 것치고 연비가 썩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브롱코와 비교하니 낫다는 느낌이 드네요. 역시 비교는 기준이 중요합니다.
굴림방식은 두 모델 모두 파트타임 4WD 시스템을 바탕으로 4륜 고속(4H) 모드에서 앞뒤 차축으로 전달되는 구동력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4H 오토)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주행 조건에서는 2H 즉 뒷바퀴굴림 방식으로 달리고, 필요할 때 4륜구동 상태로 전환해 달릴 수 있는 거죠. 당연히 험로 주행 때 돌파력을 높이는 4륜 저속(4L) 모드도 갖추고 있습니다.
[ 오프로드 주행 관련 ]

오프로드 주행과 관련해 참고할 수 있는 제원도 함께 살펴봅니다. 국내 웹사이트에도 해당 수치가 공개되어 있는 랭글러와 달리 브롱코는 국내 판매 모델 기준의 정확한 수치가 나와있지 않지만, 공개된 자료 중 가장 비슷한 것을 가져와 봤습니다.
오버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접근각과 이탈각은 랭글러 쪽이 더 큽니다. 접근각은 앞 범퍼 아래부분과 앞바퀴를 직선으로 이었을 때 지면과 이루는 각도고, 이탈각은 뒤 범퍼 아래부분과 뒷바퀴를 직선으로 이었을 때 지면과 이루는 각도인데요. 오버행이 비슷한데도 접근각과 이탈각 차이가 큰 이유는 랭글러의 지상고가 43mm나 더 높기 때문입니다. 앞뒤 바퀴와 차체 바닥의 가장 낮은 부분이 이루는 각도인 여각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회전직경은 휠베이스가 더 긴 랭글러가 브롱코보다 작은데요. 이는 스티어링 휠을 돌렸을 때 앞바퀴가 꺾이는 각도가 랭글러쪽이 더 크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모로 살펴보면, 차에 오르내리기에는 브롱코가 덜 불편하겠지만 험로 주파에는 랭글러가 더 유리하겠죠.
[ 네바퀴굴림 시스템 ]


한편 두 차의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기계적 작동 방식은 비슷하지만 조작하는 부분은 뚜렷하게 다릅니다. 어찌 보면 브랜드의 기술적 철학이나 노하우,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는 방향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사진 왼쪽은 브롱코의 G.O.A.T 시스템 조작장치고, 오른쪽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둥근 뭉치는 랭글러의 셀렉트랙(Selec-Trac) 시스템 조작장치입니다. G.O.A.T.는 ‘Goes Over Any type of Terrain’ 즉 지형에 관계없이 달린다는 표현의 머리글자입니다. 뭔가 되게 거창한 느낌을 주지만 영어 ‘Goat’는 염소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말장난이죠.
두 조작장치는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조작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G.O.A.T. 시스템은 다이얼식 조절장치를 돌려서 모드를 바꾸고, 셀렉트랙은 레버를 정해진 위치로 옮겨 모드를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즉 모드 전환에 따른 기계적 변화가 G.O.A.T. 시스템은 전동/전자식으로 이루어지고 셀렉트랙은 (약간의 전자장치가 더해진) 기계식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실제 조작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셀렉트랙 레버 조작은 꽤 큰 힘을 주어야 합니다. 대신 어느 모드가 작동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죠. 상대적으로 G.O.A.T. 시스템은 훨씬 더 쉽고 편리하게 모드를 선택할 수 있어 보입니다. 물론 어느쪽이든 4H에서 4L, 4L에서 4H 모드로 전환할 때에는 트랜스퍼 케이스 내에서 저속과 고속 기어가 바뀌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기어를 중립으로 놓은 뒤에 조작해야 할 겁니다. 랭글러는 확실히 그런 방식인데, 브롱코는 직접 해보지 않았지만 거의 확실합니다.
[ 실내 크기 관련 제원 ]

실내공간 관련 수치는 미국에서 발표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브롱코는 랭글러보다 차체가 넓고 오버 펜더가 돌출된 정도도 랭글러보다 작아서 실내 너비도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어깨 공간은 18~33mm, 엉덩이 공간은 48~50mm 더 넓습니다.
하지만 머리와 무릎 공간은 랭글러가 더 넉넉합니다. 지상고는 높고 지붕은 낮은 랭글러의 머리와 무릎 공간이 더 넉넉하다는 것은 좌석의 앉는 부분이 더 낮다는 뜻이죠. 숫자상 공간 이상으로 중요한 건 앉았을 때 편안한 자세가 나오느냐 여부인데, 이 부분 역시 직접 앉아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
한편 적재공간은 확실히 브롱코쪽이 우월합니다. 넓은 실내 폭과 높이 덕분이겠죠. 100~150L 정도 차이면 캠핑갈 때 장비 하나 더 실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좋고 나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실내 특징 ]


대시보드 구성은 두 차가 비슷하지만, 디자인 주제는 달라 보입니다. 브롱코는 직선과 평면, 사각형을 주로 썼지만 랭글러는 공기 배출구를 비롯해 둥근 요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넣었죠. 특히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이 실내 분위기를 크게 좌우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크린 크기는 브롱코가 12인치, 랭글러가 8.4인치입니다. 디자인의 균형은 랭글러쪽이 나아 보이지만, 표시되는 정보 면에서는 브롱코가 좀 더 유리하겠죠.
계기판도 랭글러는 두 개의 원형 계기 사이에 세로형 7인치 다기능 디스플레이를 넣은 형태인데 비해 브롱코는 왼쪽에 원형 속도계를 놓고 오른쪽에 가로형 8인치 다기능 디스플레이를 배치했습니다. 주변 카메라 영상을 비롯해 각종 정보를 크게 표시하기에는 브롱코 쪽이 더 좋아 보입니다.
두 차 모두 도어를 떼어낼 수 있기 때문에, 파워 윈도우 스위치는 모두 실내 안쪽에 배치했습니다. 랭글러는 기어 레버 앞 센터 페시아쪽에 있고, 브롱코는 기어 레버 뒤 센터 콘솔의 앞쪽을 향해 기울어진 면에 있습니다.
[ 탈착식 톱 ]


두 모델 모두 하드톱은 영역별로 나누어 떼어낼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요. 탈착 구조는 거의 비슷합니다. 1열 좌석 윗부분은 좌우를 나누어 뗄 수 있고, 2열 좌석 윗부분은 지붕이 한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1열과 2열 좌석 위의 지붕은 공구 없이 실내에서 고정장치만 풀면 떼어낼 수 있고요. 적재공간 위쪽은 두 차 모두 차에 있는 공구로 볼트를 풀고 전기장치 연결 커넥터를 분리해야 합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분리하고 설치하려면 최소 두 사람이 달라붙어야 하는 것도 두 차의 공통점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지붕을 떼어냈을 때 1열과 2열 좌석 사이의 윗부분을 지나는 가로 바가 브롱코에는 없고 랭글러에는 있다는 점입니다. 지붕을 떼어냈을 때 개방감은 브롱코가 더 뛰어나겠지만 심리적 안정감은 랭글러가 더 크죠. 그리고 랭글러는 천장을 가로지르는 가로 바에 오디오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도 다릅니다.


위 사진은 지붕은 모두 떼어내고 도어는 달아놓은 상태의 모습입니다. 어느쪽이든 지붕을 모두 떼어내면 전복 때 탑승자를 보호하는 롤 바가 2열 좌석 뒤쪽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두 차 모두 차를 사면 떼어낸 지붕을 보관할 수 있는 가방도 줍니다.
덧붙이자면, 포드 브롱코는 원래부터 ‘픽업트럭의 길이를 줄이고 지붕을 씌운 차’ 개념으로 만들어진 반면 지프 랭글러는 윌리스 MB의 특징을 이어받은 독특한 모습이었죠. 오리지널 모델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만큼 레트로 디자인 흐름을 따랐다는 공통점을 빼면 외모에서는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랭글러 쪽이 좀 더 고전적이고 직설적인 분위기가 난다는 점에서 브롱코와는 색깔이 다른 것이 사실이고요.
[ 가격 및 기타 ]
2022년 3월 기준으로 국내 판매 기본값은 포드 브롱코 4도어 아우터 뱅크스가 6,900만 원이고, 랭글러 4도어 오버랜드는 6,590만 원입니다. 다만 4도어 하드톱 한 가지 차체에 아우터 뱅크스 한 가지 트림만 판매되는 브롱코와 달리 랭글러는 선택의 폭이 더 넓습니다. 4도어 모델만 해도 오프로드 주행능력을 강화한 루비콘(Rubicon) 트림을 선택할 수 있고, 오버랜드와 루비콘 모두 스카이 원터치 파워톱(Sky One-Touch Power Top)이라는 이름의 전동 소프트톱도 선택할 수 있죠.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두 차의 장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브롱코는 정통 오프로더를 지향하면서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조작하기 쉬운 네바퀴굴림 시스템 등 현대적 편의성을 고루 고려해 반영했고 상대적으로 강력한 힘을 내는 V6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다는 점이 좋아 보입니다. 랭글러는 개성 있는 스타일과 험로 주파에 유리한 물리적 차체 특성, 근소하게나마 나은 경제성, 풍부한 액세서리, 오랫동안 쌓여 든든한 브랜드 이미지 등이 돋보이고요.
머지 않아 브롱코를 시승할 기회가 있을 듯한데요. 시승하고 나서 좀 더 꼼꼼히 비교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