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Kia_Pride-1

[오토카 한국판 2008년 9월호에 쓴 글입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부탁컨대, 부디 이 글은 필자의 아내에게 보이지 않기 바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아내 몰래 마련한 비상금으로 작은(?)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남편의 심정을 아는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하리라 믿는다. 결혼 후 거의 1년 만에, 통장에 지금까지 모아온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의 돈이 쌓였다. 넉넉지는 않아도 가정생활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생활비를 쓰고 남는 짜투리 돈만 챙겼는데도 적지 않은 금액이 되었다. ‘남자는 장가를 가야 돈이 모인다’는 옛말, 옳은 얘기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런 비자금이 차와 관련된 쪽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아니, 거의 100퍼센트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라고 다를까? 십 수 년 전 초보운전 시절에 갖고 싶었던 차를 중고로나마 살 수 있는 여력이 되고 나니, 짬짬이 인터넷 중고차 사이트에서 매물 찾아보는 재미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평범한 차’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탓에, 그리고 나 혼자 즐기기 위한 차를 마련하자는 생각에 수리도 비교적 편하면서 유지비 걱정도 적은,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성격이 강한 십 수 년 전의 1.3L급 소형 3도어 해치백이 유난히 관심을 끈다. 옛날 우리 가족 첫 차였던 기아 프라이드 3도어나 초보시절 가장 갖고 싶었던 기아 아벨라 3도어 말이다. 물론 변속기는 내 차라면 반드시 수동.

그런데 이런 식으로 차를 한정하고 나니 매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차들은 새차로 나와 팔릴 때부터 ‘희소 모델’ 자리를 차지했다. 같은 모델 사이에서도 5도어에 비하면 3도어 모델은 거들떠보는 사람 자체가 적었다. 그 때만 해도 소형차를 퍼스트 카로, 패밀리카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았고, 아무리 소형차라도 3도어 해치백은 불편한, 아니면 사치스러운 차 취급을 받았다. 마니아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그런 핸디캡 때문에 판매는 바닥을 기었다.

악조건 속에서 운 좋게 주인 잘 만나 세상구경하는 소형 3도어 해치백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팽팽하게 잘 살아있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법. 나이든 소형차들은 값싸고, 수리비와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 때문에 운전 경험이 거의 없거나 경제적인 탈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하기 일쑤다. 이런 주인들의 손에 맡겨진 차들은 대개 어디 한 곳 부러지거나 주저앉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울한 소형차들의 운명이 희소성은 있어도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3도어 모델에게도 이어졌음은 뻔하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아무리 값 싸고 별 볼일 없는 낡은 소형차라지만, 멀쩡한 겉모습과 쌩쌩한 달리기 실력이 살아 있는 1등급 중고차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필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차들이 처음 나왔던 그 때나 모터리제이션이 성숙기에 들어서고 있어야 할 지금이나 차들이 상대하는 ‘오너들’이라는 환경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별 볼 일없는 차라도 아끼며 잘 보존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찾기 힘들다.

세월이 흐르면서, 필자처럼 지극히 소박하지만 구하기 힘든 차들을 드림카 목록에 올리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마니아들 가운데에는 동네 뒷산처럼 보잘 것 없는 차나, 아무나 욕심낼 수 없는 에베레스트 산처럼 대단한 차 모두 드림카로 삼을 수 있는 이들도 있다. 이런 마니아까지 즐거운 자동차 생활을 즐기려면 자동차를 아끼는 사람의 폭이 훨씬 넓어져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고 앞으로도 별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필자는 아주 드물겠지만 쓸만한 ‘물건’을 찾아 인터넷 중고차 매물의 바다를 헤엄치며 여름 휴가를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