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넘긴 쌍용차, 진심 어린 자동차 만들기 보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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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카 한국판 2009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자동차만큼은 아니지만, 필자는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새로운 먹을거리에 대한 거부감도 적고, 입맛이 까다롭기는 해도 특이한 음식이라 해서 거부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한창 해외 출장을 다닐 때, 난생 처음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겪은 일이다. 초청자가 마련한 만찬 자리에 올라온 음식들은 현지 분위기가 물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색다른 재료와 향료가 쓰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함께 자리한 일행 가운데에는 강한 향과 자극적인 맛 때문에 맛만 보고 마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독특하다’, ‘색다르다’며 계속해서 나오는 코스 음식들을 빼놓지 않고 먹는 필자를 보고 일행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하지만 음식이 입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하는 것을 떠나,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 눈 앞에 놓인 음식, 내 입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에서 만든 이의 ‘진심’이 얼마나 느껴지느냐 하는 것이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재료,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조리해 내놓는 요리사의 정성이다. 잘 만든 음식은 재료가 잘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재료들의 어우러짐을 혀끝으로 느껴보면, 요리사가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느낄 수 있다.

좋은 음식을 만들려는 요리사의 ‘진심’이 느껴지는 음식은 무엇이든 맛있다. 아무리 낯설고 생소한 음식이라도, 대충 만든 음식과 정성들여 만든 음식은 분명 차이가 있다. 솔직히 아무리 음식에 대한 편견이 없다 해도, 처음 맛본 동남아시아 음식이 첫 입에 맛있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공들인 음식은 천천히 재료 하나하나의 느낌과 각 재료들이 어우러졌을 때의 조화를 느끼면서 천천히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 씹을 때마다 입 안에 퍼지는 향과 촉감, 혀끝으로 전해오는 맛의 변화 같은 것은 두고두고 머리를 즐겁게 한다. 이런 맛의 깊이야말로 요리사의 정성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다. 깊이 없는 음식은 배를 부르게 할 뿐, 아무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이의 흐뭇함에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내 음식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은 요리사의 ‘진심’이 없다면 음식은 가치 없는 것이고, 죽은 것이다. 배만 채우면 되는 사람이나 상황이 아닌 이상, 그런 음식을 다시 찾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랜 어려움, 우여곡절 끝에 쌍용자동차가 다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폭이 넓지는 않아도 쌍용에서 만든 자동차는 다른 메이커의 차들보다 열성 팬들이 많다. 쌍용차만의 색깔이 뚜렷했던 때문이고, 쌍용차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유행이 지났음에도 프레임 방식 SUV를 고집하고, 디자인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색다른 시도를 지속해온 메이커도 드물다. 이런 모습에서 소비자들은 고집과 열정을 읽었고, 그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했기에 부족한 점들이 있음에도 쌍용차를 사랑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쌍용차의 파업종료와 생산재개를 반기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아직 쌍용차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쌍용차가 계속해서 움직여 나가기를 바라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쌍용차는 되살아나야 한다. 소비자들이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차를 구입하던, 필요만 충족시킬 수 있는 차를 사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쌍용차는 소비자들이 다시 사고 싶은 차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이나 경영진들이 따로 고민하고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어렵사리 회생의 계기가 마련된 만큼, 더 많은 이들이 두고두고 쌍용차의 진가를 느끼며 흐뭇해할 수 있는 진심어린 차를 만들어내도록 최선을 다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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