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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카 한국판 200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요즘 가요계는 이른바 ‘걸 그룹’(girl group)이 휩쓸고 있다. 10년 넘게 가요에는 등을 돌리고 살아온 필자의 차에도 얼마 전부터 2NE1,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카라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두어달 전만 해도 차의 USB 포트에 연결된 휴대용 메모리에는 지난 10여년 동안 푹 빠져 살았던 헤비메탈과 신스 팝(synth pop)만 가득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물론 필자가 처음부터 걸 그룹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젊었던 때, 한창 핑클과 SES, 베이비복스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도 그들의 노래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걸 그룹 노래들에 관심을 갖고 듣게 된 것은 최근 얼마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반적으로 음악의 질이 높아진 때문이다. 젊고 예쁘고 깜찍한 가수들에 혹해서 관심이 간 것은 절대(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아니다. 창법이나 목소리의 음색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아쉬울 뿐, 전통의 록 그룹 백두산의 ‘반말마’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가 모두 듣기 좋아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래를 한 번 들어보고 괜찮으면 계속 듣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고집 부리지 않는다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변화를 맞닥뜨리는 그 순간만 어색할 뿐,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관념의 틀을 깨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듯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어지간히 마음이 열린 사람이 아닌 이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바라고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한 번 만들어진 ‘대세’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변화가 자신에게 뚜렷하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때다. 제품시장의 변화는 그런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중의 하나는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의 좋고 나쁨은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무작정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발전적이지 못하다. 국내 자동차 시장을 봐도 그렇다. 최근 현대차가 내놓은 신형 쏘나타(개발명 YF)의 값이 크게 올랐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새차를 내놓을 때마다 현대/기아차가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가격인상 횡포를 부린다는 불평도 있다. 모르긴 해도 현대/기아차에 대한 불평과 불만의 강도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커지는 듯하다.

그런데도 현대/기아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신기하다. 달리 말하자면 사람들이 욕을 하면서도 현대차를 산다는 뜻이다. 물론 현대/기아차가 차를 잘 만들긴 한다. 하지만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메이커가 어디 현대/기아차 뿐이겠는가. 모르긴 해도 자금력이 부족해서 투자가 힘들 뿐, 다른 메이커들은 현대/기아차보다 더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쟁은 대부분 더 좋은 제품을 낳기 마련이다.

최근 나오는 국내 다른 메이커의 새 모델 중에는 필사적인 노력이 엿보이는데도 판매가 신통치 않아 안타까운 모델들도 있다. 제품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지만, 관념에 사로잡혀 변화가 주는 메리트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까지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대나 기아 차가 아니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한 번 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그것이 GM대우 차이든, 르노삼성 차이든, 쌍용 차이든 상관은 없다. 앞으로의 자동차 선택기준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면, 그 때 가서는 마음껏 현대/기아차를 욕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