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토카 한국판 2009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일반적이고 관념적인 승용차의 분류기준은 차의 크기다. 이를테면 경차, 소형차, 준중형차, 중형차, 준대형차, 대형차와 같이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세금, 특히 자동차세의 과세기준은 엔진 배기량이다. 계산방법은 간단하다. 과세 기준금액을 엔진 배기량에 곱한 금액이 자동차세로 결정되고, 과세 기준금액은 다시 배기량에 따라 다섯 단계로 달라진다. 배기량이 낮으면 과세 기준금액도 낮고, 높으면 과세 기준금액도 높다.
이 자동차세 과세기준은 관념적 승용차 분류기준과 맞물려 1,600cc급 준중형차와 2,000cc급 중형차에 수요가 집중되는 독특한 형태의 승용차 시장을 만들어 냈다. 과세 기준금액이 1,600cc와 2,000cc를 기준으로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준중형차라도 1.6L급 엔진 모델과 1.8L급 엔진 모델의 자동차세 차이는 14만 원 정도다. 중형차의 경우에도 2.0L급과 2.4L급의 차이는 13만 원 남짓. 1.6L급 모델의 자동차세가 22만 원 안팎이고 2.0L급은 40만 원 선인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차이이고, 1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에 나누어 목돈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그래서 준중형차는 1,600cc를 약간 밑도는 1.6L급 차가, 중형차는 2,000cc가 넘지 않는 2.0L급 차가 많이 팔린다.
그런데 승용차는 새 모델이 나오면서 조금씩 차가 커지고 무거워진다. 기술개발로 엔진 출력도 높아지고는 있지만, 연비와 성능의 균형을 생각하면 차가 커질수록 적당히 큰 엔진이 올라가야 맞다. 관념적 차급이나 세금 기준의 차급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최근 GM대우가 관념적인 기준으로 준중형급에 해당되는 라세티 프리미어에 1.8L 휘발유 엔진 모델을 더했다. 이미 국산 준중형차 크기는 두어 세대 전 중형차 크기에 육박할 정도로 커진 마당에,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먼저 내놓은 1.6L 모델에 ‘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던 것이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사실 1.6L 휘발유 엔진에 이어 2.0L 디젤 엔진 모델도 내놓았던 GM대우다. 여기에 1.8L 엔진을 더해 1.6L 엔진으로는 역부족임을 기정사실화 한 셈이다. 그래도 SM3에 1.6L 엔진만을 얹어 승부를 걸고 있는 르노삼성보다는 적극적으로 시장을 뚫고 나가려는 의지를 높게 살만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GM대우 엔진 포트폴리오의 한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현대 기아는 1.6L 휘발유 엔진 외에도 같은 과세기준에 속하는 1.5L와 1.6L 디젤 엔진을 갖추고 있다. 나아가 디젤 엔진 모델 수요가 적은 세단 모델에는 1.6L LPG 엔진에 전기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어 내놓고 있다.
현대 엔진 포트폴리오의 내수 시장 대응능력은 주력 SUV인 싼타페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GM대우는 5인승에 특화된 윈스톰 맥스와 7인승이 주력인 윈스톰이라는 두 차종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엔진은 공히 2.0L 디젤 하나 뿐이다. 상대적으로 르노삼성은 2.0L 디젤과 2.5L 휘발유의 2종을 갖춰 조금이나마 선택의 폭이 넓다. 물론 이것도 현대 싼타페의 엔진 포트폴리오에 비할 바 아니다. 싼타페에는 2.0L와 2.2L 디젤, 2.4L 휘발유와 2.7L LPG까지 모두 4종의 엔진을 고를 수 있다. 국내 소비자의 성향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도록 내수 시장에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운용하는 것이다.
GM대우는 이에 대한 대안이 부족하다. 물론 준중형급인 라세티 프리미어만 놓고 본다면 한미 FTA라는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자동차세 과세기준이 두 단계로 단순해지면서 2,000cc 아래 배기량의 과세기준이 단일화될 예정이다. 그러면 1.6L급과 1.8L급 엔진 모델의 자동차세 격차는 훨씬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힘 부족도 덜하고 연비도 나은 1.8L급 엔진 모델의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한미 FTA의 발효시기는 아직 미지수다. 선수를 둔 것은 좋지만, 당장에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힘은 부족하다. 게다가 현대 기아는 당장 내수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있을 뿐, 언제든 여차 하면 발빠르게 아반떼나 포르테에 1.8L 휘발유 엔진을 얹을 수 있다.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시장여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GM대우든 르노삼성이든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내수 시장에 맞는 엔진 포트폴리오다.
두 메이커 모두 모기업이 필요한 엔진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필요한 것은 국내 경영진의 의지다. 수출로 먹고 살 수는 있어도 국내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수출은 그 지지기반을 잃게 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청공장’ 논란을 벗기 위해서라도 내수 시장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