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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카 한국판 2011년 9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국산차는 역사가 짧은데도 빠른 시간 사이에 참 많이 좋아졌다. 우리 소비자들이 국내 자동차 메이커에게 끊임없이 채찍과 당근을 던진 덕분에 이만큼 성장한 거라면 참 좋겠지만, 국산차의 품질과 안전도가 개선된 계기를 전적으로 우리나라 안에서만 찾기는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지금 우리가 좋아진 국산차를 탈 수 있게 된 데에는 미국의 공이 크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국산차 뿐 아니라 세계 각국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품질과 안전도를 갖추게 된 것이 대부분 미국 덕분이다. 

미국은 자동차가 가장 먼저 대중화된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대중화의 부작용도 가장 먼저, 가장 큰 규모로 겪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자동차와 관련된 각종 제도와 기준에 대한 고민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했고 그 결과로 세상에서 가장 철저하고 엄격한 틀을 갖추게 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게다가 미국은 소비자의 권리도 폭넓게 보장되어 소비자 운동이 매우 활발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에 차를 팔려면 그런 틀과 환경에 맞게 차를 만들어야 하니 당연히 차의 수준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굳이 각종 제도와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도,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차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국산차도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좋아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자동차 관련 제도와 기준 가운데에는 미국의 것을 거의 그대로 들여온 것이 많다. 사람의 생명과 연결되는 안전관련 기준 같은 것은 좋은 사례이니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공인연비 측정방식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쓰여 온 연비 측정방식은 오래전 미국에서 만들어진 방식을 거의 그대로 써 왔다. 규격화된 측정방식을 도입한 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그런 측정방식이 만들어진 과정이 우리나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의 일반적인 자동차 주행패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준이 우리나라 도로사정과 맞아 떨어질리 만무하다. 그러니 늘 소비자들은 공인연비와 실제 주행연비 사이에 차이가 많이 나 믿을 수 없다는 불평을 하게 된다. 필자만 해도 여러 번 차를 바꾸었지만 단 한 번도 실제 주행연비가 공인연비와 맞아 떨어진 적은 없었으니 사람들 사이에서 ‘공인연비는 뻥 연비’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를 조금 심각하게 파악했는지, 얼마 전 지식경제부에서 공인연비 측정방식을 개선하고 새로운 연비표시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기껏 개선한다고 제시한 연비 측정방식 역시 그 출처는 미국이다. 새 방식은 주행환경과 조건을 세분화해 더 현실적인 연비측정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어쨌든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주행여건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측정방식이라는 얘기다.

같은 차라도 우리나라 도로를 달릴 때의 연비가 미국 도로를 달릴 때와 같을 수는 없다. 도로구조와 신호체계도 다를 뿐 아니라 운전자들의 주행성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진짜 현실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싶다면 국내 도로에서 국내 운전자가 모는 차들의 주행패턴을 분석해 그것을 바탕으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옳지 않을까? 유럽과 일본이 각각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든 독자적인 연비 측정방식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외국 기준을 빌려온다면 왜 더 가혹한, 그래서 오히려 더 국내 여건에 가까울 수 있는 유럽 방식이 배제된 이유는 뭘까?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차들이 국내에 들어오는 절차를 더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