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2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람보르기니 미우라는 페라리를 넘어서기 위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의지가 이어져 만들어진 차다. 당대 보기 드문 미드십 구성의 양산 스포츠카로, 마르첼로 간디니가 베르토네 시절에 디자인한 아름다운 차체와 강력한 성능으로 호평을 받았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사이에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수퍼카 대전의 시발점이 바로 미우라다. 

페라리를 능가하는 GT카를 만들겠다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의지는 1964년 350 GT로 승용차 시장에 발을 내디디면서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350 GT의 뒤를 이은 350 GTV와 400 GT로 람보르기니는 고유의 입지를 다져나갔지만, 페라리의 명성을 위협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람보르기니에게는 더 강력하고 카리스마 있는 차가 필요했다. 그런 차를 만들기 위해 기술 책임자인 잔파올로 달라라는 동료인 파올로 스탄자니, 밥 월레스와 함께 경주차 기술을 접목한 스포츠카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달라라와 스탄자니가 주도해 설계한 섀시는 철제 모노코크 구조의 탑승 공간을 중심으로 앞뒤에 서브 프레임을 결합한 형태였다. 그리고 파워트레인은 엔진이 탑승 공간 뒤쪽에 놓이는 미드십 구성을 택했다. 특히 달라라는 차체가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도록 엔진을 세로가 아닌 가로로 배치하고 5단 수동변속기를 엔진 크랭크 케이스 아래쪽과 일체형으로 설계해 엔진 뒤에 놓이도록 했다.

V12 4.0ℓ 엔진은 페라리 출신 엔진 설계자인 지오토 비자리니가 설계했다. 이 엔진은 400 GT에 쓰인 것을 바탕으로 압축비를 높이고 카뷰레터를 개선해 최고출력이 350마력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경쟁 모델이었던 페라리 275 GTB의 출력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1년여 만에 만들어진 섀시는 보디 없이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 공개되었다. 당시만 해도 미드십 엔진 배치는 경주차에서나 볼 수 있어서 포드 GT40, 페라리 250LM과 같은 GT 경주차용 섀시로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페루치오는 경주에 출전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포드와 페라리가 GT 경주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엄청난 비용을 소모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페루치오는 이 차를 일반 도로용 승용차로만 개발해 람보르기니의 최상위 모델로 한정 생산하고자 했다.

모터쇼가 끝난 후, 페루치오는 이 차의 차체 디자인을 베르토네에게 맡겼다.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후임으로 베르토네에서 일하고 있던 마르첼로 간디니가 주지아로의 초안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완성했고, 페루치오는 그의 디자인으로 차체를 만들기로 했다. 이에 따라 차체는 베르토네에서, 실내는 마르첼시(Marchersi)에서 제작해 산타가타의 람보르기니 공장에서 섀시에 결합되었다. 그리고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 미우라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미우라라는 이름은 스페인 세비야에서 활동했던 투우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미우라의 차체는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느낌을 주었다. 원형 헤드램프는 피아트 850 스파이더의 것을 사용했지만 독특한 눈썹 모양의 테두리 부분이 색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탑승공간과 도어는 철제였지만, 보닛과 차체 뒤쪽을 덮는 보디 패널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람보르기니는 실제 주행시험에서 최고시속 275km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당시 양산차 가운데 가장 빠른 차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페라리가 선보인 새로운 GT카 330 GTC가 빛을 보지 못할 정도로 미우라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페루치오는 미우라를 한정 생산할 생각이었지만, 주문이 밀려들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미처 대응하지도 못했고, 섀시가 충분히 견고하지 못하고 타이어 접지력이 충분치 않다는 불평이 나왔다. 또한, 고속에서는 차체가 떠오르며 핸들링이 불안정해지는 현상도 일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산 과정에서 조금씩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작은 개선만으로는 부족해, 섀시를 개량하고 접지력을 높인 미우라 S를 개발해 1968년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공개했다. 엔진의 출력도 370마력으로 높아졌고 핸들링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미우라에 자극을 받은 페라리가 1969년에 365 GTB/4 데이토나를 내놓자 람보르기니는 한층 혁신적인 모델인 쿤타치의 개발을 시작했지만, 이때까지 미우라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람보르기니는 이에 미우라 S를 더욱 발전시킨 SV를 만들어 1971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공개했다. GT 경주에 내보내기 위해 개발하고 있던 요타(Jota)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미우라 SV는 차체 앞쪽을 약간 낮추고 뒤 서스펜션을 높여 고속주행 안정성 향상을 꾀했고, 섀시를 한층 더 강화하면서 뒤 트레드도 넓어졌다. 엔진 출력도 다시 15마력 높아진 385마력이 되었지만 섀시가 강화되어 무게가 늘어나면서 가속성능은 약간 손해를 보았다.

디자인도 손질되었다. 헤드램프 주변의 눈썹이 사라졌고, 앞 범퍼는 방향지시등이 포함되며 형태가 달라졌다. 섀시 보강과 함께 뒤 서스펜션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뒤 트레드가 넓어졌고, 이에 따라 뒤 펜더도 함께 넓어져 더 안정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다. 테일램프는 후진등이 추가되면서 더 커졌다.

1973년 1월에 마지막 미우라 SV가 고객에게 인도될 때까지 미우라는 모두 764대가 생산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핸들링이 뛰어난 미우라라는 평가를 받는 미우라 SV는 약 150대가 만들어졌다. 미우라는 미드십 엔진과 화려한 디자인, 그리고 강력한 성능으로 람보르기니를 본격적인 수퍼카 브랜드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페라리의 맞수 자리를 확실하게 다져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