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3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혼다가 야심차게 개발한 소형차 1300이 실패한 후,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해 개발한 모델이 시빅이다. 당시 일본 소형차의 주류를 이루던 설계방식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성능과 효율이 모두 뛰어나도록 만든 시빅은 미국의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를 처음으로 통과한 CVCC 엔진으로 유명세를 탔다. 판매도 성공적이어서 자동차 메이커로서 혼다의 입지를 다졌다.

1970년은 일본의 고도성장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를 위해 교통 기반시설이 확충되고 있었고, 도시화에 알맞은 자동차 보급이 늘어났다. 당시 일본은 세계 제2의 자동차 생산 국가가 되었다. 빠르게 성장한 경제와 도시화에 따라 교통문제와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해졌다. 당시 스포티한 성격의 차에 집중하고 있던 혼다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인 승용차를 개발하기로 하고 소형차 시빅을 만들었다.

1963년부터 승용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혼다의 이전 모델들은 고성능 엔진을 얹었지만 크기는 경자동차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 일반 소비자의 생활에 밀접한 부분들이 부족했다. 특히 소형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야심차게 개발한 1300이 실패하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해졌다. 1300은 F1 경주차 설계의 경험으로 만든 DDAC 이중강제공랭 엔진으로 앞바퀴를 굴린다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지만, 무거운 앞쪽 차체와 부드러운 서스펜션 때문에 위험한 주행 특성을 보이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1300의 실패로 일본에서는 혼다가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혼다는 기술적인 해법을 찾아 나갔다. 혼다 소이치로가 고집했던 공랭식 엔진을 포기하고 수랭식 엔진으로 돌아선 것도 해법 중 하나였다. 수랭식 엔진을 얹은 혼다의 첫 승용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혼다는 세계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기계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가치를 극대화해 민첩한 소형차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시빅은 전통적인 혼다의 개발 과정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뜻에 바탕을 두는 대신, 세계 여러 시장을 개발 팀이 돌아다니며 현지의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 후 당시 시장에 가장 알맞은 차를 만드는 데 반영했다.

새로운 관점에서 색다르게 접근해 만든 승용차

당시 일반적인 승용차의 구조는 앞 엔진 뒷바퀴 굴림 3박스 형태였지만, 혼다는 새 차의 구조로 앞 엔진 앞바퀴 굴림 2박스 형태를 택했다. 이에 따라 개발팀은 여러 부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신기술이 만들어졌다. 비용 절감과 연비 향상을 모두 이룰 수 있도록 차체를 경량화했고, 당시 일본 승용차 대부분이 사용했던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 대신 독립식 스트럿 서스펜션을 썼다. 이로써 충분한 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승차감과 핸들링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네 바퀴를 최대한 차체 바깥쪽으로 밀고 엔진을 가로로 배치한 설계 덕분에, 시빅은 당시 한 차급 위인 모델들보다도 실내 공간이 넓었다.

이 차는 당시로서는 매우 짧은 2년 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1972년 7월에 시빅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시빅이 처음 출시될 때에는 2도어 세단만 출시되었으나 곧 3도어 해치백이 추가되었다. 두 차는 기본적인 디자인은 같았지만 트렁크가 열리는 부분이 달랐다. 세단 선호도가 높았던 당시 일본에서는 매우 낯설었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소형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시빅은 경쾌한 주행감각과 신선한 디자인에 힘입어 일본에서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었고, 여러 참신한 기술과 특징에 힘입어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년 연속으로 일본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 출시와 더불어 미국 수출도 시작되어 시빅의 이름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시빅에 쓰인 CVCC 엔진은 미국의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를 처음으로 충족함으로써 주목받았다.

1970년에 제정된 미국 대기 청정법은 발의자의 이름을 따 ‘머스키 법(Muskie Law)’이라고도 불렸는데, 미국에서 판매되는 1975년 및 1976년형 모델 승용차의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수준을 1970년 및 1971년형 모델보다 90퍼센트 이상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현실적으로 당시 가장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였기 때문에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해법을 찾는 데 고민을 했고, 혼다는 이를 CVCC 엔진으로 극복한 것이다. 특히 무연휘발유나 촉매변환기 등 배기가스 정화를 위한 요소 없이도 우수한 효율을 입증할  수 있어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혼다는 이후 도요타 등 다른 회사에도 이 기술을 제공했다.

데뷔 직후에는 1.2리터 60마력 휘발유 엔진이 올라갔고, 출시 직후 최고출력을 69마력으로 높인 버전도 출시되었다. 그리고 1973년에는 친환경 엔진인 1.5리터 78마력 CVCC 엔진이 추가되면서 2박스 4도어 모델이 추가되었다. 이후 1975년에는 모든 엔진에 CVCC 기술이 반영되었고 차체도 5도어 해치백이 추가되는 등 변화를 겪었다.

CVCC 엔진은 미국 배기가스 규제를 완전히 통과한 것은 물론 뛰어난 연비 덕분에 1973년에 일어난 제1차 석유파동 여파로 경제적 차를 찾는 소비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어 판매가 급증했고,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시빅의 성공으로 혼다는 철수설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승용차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