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4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스바루 360은 일본 후지중공업이 정부의 ‘국민차 구상’을 바탕으로 독자 개발한 경차로, 여러 제약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항공기 개발 경험을 살리고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해 만들어졌다. 스바루 브랜드의 첫 양산 승용차일뿐 아니라 일본의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한 모델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이 한국전쟁 특수로 회생의 발판을 다진 직후인 1955년. 지금의 경제산업성에 해당하는 통상산업성은 자동차 보급 확대를 위한 이른바 ‘국민차 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일본은 버스와 트럭, 택시 등 영업용 차 이외의 승용차는 일부 부유층만 사용하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기술과 생산능력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붕괴된 상태였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던 승용차 시장도 대부분 수입 차가 점령하고 있었다.

국민차 구상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정부 차원에서 자동차 업계에 서민도 구입할 수 있는 작고 저렴하면서 경제적인 차를 만들도록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투명한 시장성과 경험 부족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국민차 구상에 적극 호응하지는 않았다.

‘국민차 구상’ 바탕으로 한 경차로 승부해

그런 가운데 국민차 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회사가 나타났다. 2차대전 중 군용기를 만들던 나카지마 비행기가 전후 연합군에 의해 해체되어 만들어진 여러 회사가 다시 모여 만들어진 후지중공업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항공기 생산이 금지되어 다른 분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던 후지중공업은 자동차 시장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후지중공업은 자동차에 앞서 래빗이라는 스쿠터를 내놓아 전환점을 마련했고, 본격 승용차인 P-1을 개발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이미 자동차 업계의 거물이었던 토요타와 닛산이 버티고 있는 시장에 뛰어들어봐야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P-1의 양산을 포기했다. 대신 국민차 구상에 따른 경차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K-10이라는 코드명으로 개발이 시작된 경차는 후지중공업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양산 승용차 개발이 처음이었을 뿐 아니라, 엔진 배기량 360cc, 길이 3m, 너비 1.3m 이내의 차체에 성인 4명이 편안히 탈 수 있는 실내 공간을 갖추어야 한다는 제약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발 책임자인 모모세 신로쿠(百瀬晋六)는 과거 항공기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주어진 조건에 맞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그는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하나는 차체를 경량화하면서 충분한 강성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험로에서도 쾌적한 승차감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충분한 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첫 번째 목표는 당시 기술로는 배기량 360cc인 작은 엔진으로 큰 힘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두 번째 목표는 도로 포장률이 낮았던 일본의 당시 사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마지막 목표는 새 차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실용성에 관한 기준이었다.

모모세는 이런 목표에 이를 수 있는 기술적 해법을 제시했다. 우선 항공기 설계 경험을 살려 기본 구조를 모노코크 방식으로 만들었다.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는 모노코크 구조는 가벼우면서도 강성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자동차에 흔하게 쓰인 구조는 아니었지만, 이미 P-1을 개발하면서 모노코크 구조 설계를 구체화한 적이 있었던 덕분에 설계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또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일반 승용차보다 얇은 강판을 사용했고, 지붕과 창은 각각 FRP와 아크릴을 사용했다. 나아가 볼트와 너트 단위까지 철저하게 가벼운 것을 써서 공차중량을 약 380kg까지 줄일 수 있었다. 승차감 확보를 위해서는 토션 바 방식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을 사용했다. 독립 서스펜션은 당대 윗급 승용차에서도 보기 드물었는데, K-10에 쓰이니 것은 구조가 비교적 간단해 험로 주행 때에도 부담이 적고 승차감도 비교적 우수했다. 또한 타이어 업체인 브리지스톤에 의뢰해 개발한 전용 10인치 타이어를 사용해 타이어가 차지하는 공간도 최소화했다.

실내 공간 확보 위해 RR 방식 선택해

개발 중에 논란이 있었던 부분은 굴림방식이었다. 실내 공간 확보가 주요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프로펠러 샤프트가 실내 가운데를 지나는 앞 엔진 뒷바퀴 굴림 방식은 처음부터 배제되었다. 선택은 앞 엔진 앞바퀴 굴림과 뒤 엔진 뒷바퀴 굴림 중 하나가 되어야 했다. 여러 면에서 앞바퀴 굴림 방식의 장점이 돋보였지만, 당시 일본에는 앞바퀴 굴림 차의 필수 부품 중 하나인 등속 조인트를 제대로 생산하는 업체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뒤 엔진 뒷바퀴 굴림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엔진은 수평대향 2기통 공랭식으로 뒤 차축 뒤에 얹었는데, 실내 공간을 넓히고 부품 수를 줄이기 위해 가로 방향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었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16마력에 불과했지만, 가벼운 차체에 힘입어 어른 4명을 태우고도 최고 시속 83km까지 낼 수 있었다.

1958년 3월 3일에 도쿄 본사에서 공식 발표된 후지중공업의 경차에는 스바루 360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바루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뜻하는 일본어로, 후지중공업이 처음 개발한 P-1에 처음 쓰인 바 있고, 6개의 별이 원 안에 담겨 있는 스바루 상표가 스바루 360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여섯 개의 별은 나카지마 비행기가 해체되어 분할된 회사 가운데 여섯 개가 모여 후지중공업을 만든 것을 상징했다. 스바루 360을 처음 구입한 사람은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였다. 데뷔 당시의 값은 42만 5,000엔으로 당시 일본 대졸 직장인 첫 월급의 약 30배였다.

스바루 360은 일본 내에서 큰 반향을 만들었다. 당시 경차 규격에 맞는 변변한 차는 스즈키의 스즈라이트 SF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상용차였고 성능이 뒷받침하지 못해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스바루 360은 작으면서도 기본적인 성능과 실용성이 충실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첫 해에는 판매 및 서비스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해 실적은 385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국 판매망을 갖추면서 판매가 빠르게 늘었다. 스바루 360의 인기를 본 경쟁 업체들이 경차를 잇따라 내놓을 때까지 독주는 이어졌고, 1960년대 중반까지 아성을 깨는 차는 나오지 않았다.

스바루 360은 1969년에 후속 모델인 R2에 자리를 넘겨주고도 1970년까지 생산되었다. 12년 동안판매된 숫자는 약 39만 2,000대에 이르렀다. 이 차의 성공으로 후지중공업은 새롭게 진출한 자동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일본에서는 스바루 360과 더불어 마이카 시대가 열리며 자동차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