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콜로 파산 위기 겪은 크라이슬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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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2014년 11월 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2014년 세계 자동차 업계는 대량 리콜로 떠들썩했다. 10월 말까지 미국에서만 540여 차례에 걸쳐 약 5,300만 대가 리콜 대상이 되었고 남은 두 달동안 더 많은 차가 리콜될 전망이다. 같은 차가 다른 이유로 리콜된 것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보다 적은 수가 되겠지만, 그렇다 해도 한 해동안 이처럼 많은 종류의 많은 차가 리콜된 과거의 예는 찾기 어렵다.

물론 리콜은 자동차 업체가 소비자의 안전과 편리함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기도 한다. 그런 리콜이라면 바람직하고 긍정적이다. 그러나 리콜은 대부분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입해 사용하는 도중에 발생한 문제를 계기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은 대개 리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한편 리콜은 자동차 업계가 꺼리는 일이기도 하다. 작은 리콜 한 두 번으로 자동차 회사가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크건 작건 자동차 업체가 돈을 들여 해결해야 하므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많은 수의 차가 한꺼번에 리콜을 해야 거나 해결에 비용이 많이든다면 얼마든지 회사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

리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사건이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있었다. 1976년에 크라이슬러가 내놓은 닷지 애스펀과 플리머스 볼라레가 당시까지 최악으로 기록된 리콜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갓 새로 나온 대중차로 크라이슬러의 여러 모델 중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두 차종은 미국의 한 자동차 전문지가 ‘올해의 차’로 뽑을 정도로 상품성이 뛰어났지만 완성도가 낮아 품질이 형편없었다. 점화장치, 연료공급장치, 브레이크, 스티어링, 서스펜션 등 다양한 부분의 문제로 리콜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차체 부식이 가장 심각했다. 녹방지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차체가 너무 빨리 녹슬었던 것이다.

차체 부식 관련 리콜은 차가 나온 지 2년 정도 흐른 뒤에 이루어진 탓에 수리 대상이 40만 대가 넘었다. 그럼에도 크라이슬러는 출고된 모든 차를 모두 회수해 검사한 후 정상적인 차체부품으로 교체하거나 녹방지 처리를 하고 다시 칠한 뒤에 출고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크라이슬러가 치른 비용은 당시 금액으로 1억 달러가 넘었다. 리콜 비용도 컸지만, 더 큰 문제는 소비자의 외면이었다. 품질 최악으로 낙인찍힌 차가 잘 팔릴 리가 없었다. 크라이슬러가 부랴부랴 품질 개선에 나섰지만, 리콜 후 2년 만에 판매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리콜 비용과 판매 부진으로 엄청난 적자에 시달린 크라이슬러는 곧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런 난국 속에 크라이슬러의 CEO로 영입된 리 아이어코카는 경영과 품질개선에 힘을 쏟는 한편 혁신적 신제품을 기획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아이디어에 따라 리콜로 회사를 어려움에 빠뜨린 두 차종의 후속 모델을 완전히 새로운 설계로 만들고, 그 설계를 응용해 개발한 세계 최초의 미니밴이 성공을 거두면서 크라이슬러는 겨우 다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회생하기는 했지만, 탁월한 경영자와 회생의 밑거름이 될 정부보증자금이 아니었다면 크라이슬러는 리콜 때문에 망한 회사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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